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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는 말씀만으로도 병을 고치셨지만 특별한 경우에는 환자들을 손으로 만지셨던 모습이 복음서의 곳곳에서 발견이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들로 간주되었던 병자들에게 손을 대는 것은 유대주의자들에게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들이었습니다. 병자들에게 손을 대면 자신들도 부정하게 되는 것이라 그들은 여겼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영혼은 온갖 죄악으로 부정하고 부패했던 유대주의자들이 육신의 질병을 가진 자들에 대해서 도리어 그들을 부정하다 여기는 이 위선과 파렴치함을 보십시오. 인간이 인간을 하나님의 은혜 밖에서 사랑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그저 한순간 그 대상을 동정하고 불쌍히 여기는 정도 일뿐입니다. 오직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을 때 그 사랑은 멈추지 않고 흘러갈 수 있는 것이고 그 사랑이 우리 안에 진정으로 차고 넘친다면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또다시 예수께서 소경을 고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주님께서는 이제 벳세대에서 마지막 이적을 행하시게 됩니다. 가이사랴 빌립보 와 함께 분봉왕 빌립에 의해서 건설된 벳새다는 갈릴리 동쪽 국영 너머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이곳은 예수님의 제자 빌립과 안드레의 고향으로 고라신과 함께 벳새다라는 도시는 예수의 사역에 대해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대표적인 완악하고 강퍅한 도시로 결국 예수님의 저주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곳입니다. 그토록 많은 이적을 행하셨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고 있었던 벳새다에서 또다시 소경이 주님께로 나아왔다는 사실은 아마도 벳새다의 주민들이 바로 영적으로 소경과 다름없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상징이 되기도 한 것입니다.

 

가장 불쌍한 영혼들이 바로 이 같은 자들입니다. 올바른 진리와 교리를 평생을 듣고 배웠어도 믿음으로 반응하지 않는 영혼들, 예수님의 시대에도 칼빈의 시대에도 청교도의 시대 속에서도, 그 진리의 황금기의 한복판에 살아서 그 귀한 진리를 수없이 들을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어도 영적으로 소경이고 귀머거리가 되어서 그 참된 복음을 듣고도 영혼의 아무런 반응이 없었던 자들, 그들이 바로 유기된 자들입니다. 오늘도 참된 복음과 진리를 듣고도 영혼의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더욱 진지하게 자신의 영혼을 낮추어 주의 긍휼과 자비가 내게 임하기를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더욱 간절히 겸비한 마음으로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이 지엄한 주의 말씀을 들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화가 있을찐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찐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주께서는 마태복음 11 21~22절에서 이같이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소망을 가지고 감사해야 하는 것은 여러분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가운데 오늘도 참된 진리가 선포되는 자리에 나아와 있고 마음을 다해서 진리에 귀를 기울일 때 반드시 우리에게 영혼의 깨달음과 은혜를 부어주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때에도 회심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일행이 벳새다에 이르자 사람들이 소경 한 사람을 주님께로 데리고 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짜고짜 예수께서 이 소경을 만져 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 ‘손 대시기를’이라고 번역된 원문의 의미는 예수께서 병을 고치시기 위해 사람들과 접촉을 하실 때 주로 사용된 동사입니다. 그냥 만지는 것이 아니라 치료의 목적으로 터치를 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이렇게 주의 만져 주심을 구하는 것은 상당히 무례한 요청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앞서 밝힌 바대로 부정한 병자를 만져 달라는 요구 자체가 유대인들의 사고 속에서는 결코 용인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절박하고 간절함으로 사람들은 그런 유대주의 율법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언제나 예수님을 필요로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무례한 요청들을 언제나 기꺼이 용납하신 이유는 주께서는 그 영혼들을 사랑하셨고 그러한 그들의 요청에 담긴 간절한 마음과 그리고 주님을 향한 그 순수한 믿음을 항상 귀하게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주께 나아와 주님 저의 이 고단하고 지친 영혼을 어루만져 주십시오. 저에게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위로와 평강을 허락하여 주십시오.’라고 영혼을 낮추어 주께 구하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찾고 계시고 그렇게 주께 나아오는 자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심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우리 모두의 상하고 지친 영혼을 오늘도 어루만져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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