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22 08:13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빵을 먹은 것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그들을 일컬어 ‘외식하는 자’라고 직격탄을 날리시며 그 예언된 말씀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이사야 29장 13절의 말씀이었습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유대주의자들이 하나님을 신앙하는 종교적 행위는 형식적인 것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의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었고 그들의 마음은 온통 자기 자신들의 의를 드러내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자기들의 특권을 누리는데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마음으로부터 깊이 사랑한 적이 없었음에도 그들의 말과 그들이 만든 형식과 행위는 모두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이처럼 마음에는 전혀 하나님이 없어도 행위와 말의 열심으로 그것이 신앙인 듯 드러내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단순히 사람이 지켜야 할 계명으로 여기고 지식을 담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진실된 사랑까지 그 형식과 그 지식에 담겨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지식과 형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에게 아로새겨지고 그 영혼을 관통해야 진정으로 뜨겁게 나를 구원해 주신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과 지체들과 교회를 사랑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유대주의자들의 신앙 속에는 이것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었기에 주님은 그들을 향해서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거침없이 일갈하신 것입니다. 몸은 하나님을 향하는듯하지만 마음은 온통 자기 자신들을 향하고 있는 자들, 주님께서는 이사야를 인용하시며 그들이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한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있다고 그들의 위선과 가식을 질타하셨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그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지 않은 자들의 공통점이 바로 언제나 옳고 그름의 문제만으로 트집을 잡아 항상 자신들의 의를 드러내는 것임을 유대주의 종교지도자들의 모습 속에서 보게 됩니다. 입만 열면 규율과 규범을 강조하지만 그들의 영혼 속에는 전혀 하나님에 대한, 그리스도에 대한 진실된 경외감이나 사랑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기형적인 신앙의 모습은 오늘 이 시대에도 어렵지 않게 드러납니다. 복음에 대한 깊은 이해와 그리스도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나 교회와 지체들에 대한 깊은 애정 없이 언제나 신앙적 원칙과 엄밀성 만을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자기 의에 사로잡힌 위선과 가식적인 모습들로 교회 안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한 신앙에 빠지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담긴 본 뜻이 아닌 사람이 만들어낸 여러 규칙과 규범들에만 집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유대주의 종교지도자들은 전혀 하나님의 의도와 뜻도 아닌 것들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가르치고 지킬 것을 강요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하셨습니다. 개혁주의를 오해하게 되면 하나님을 향한 진실된 경외와 사랑도 없이 개혁주의의 교리적인 지식과 외형적 형식과 청교도들의 그 삶의 엄격성만을 강조하면서 무엇을 지켰는지, 혹은 지키지 않았는지에 관한 문제에만 고착되어 버립니다. 그것으로 언제나 공동체를 교회를 정죄하고 비난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두 헛된 신앙입니다. 그런 식의 율법적이고 위선적인 신앙 안에 결코 하나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자신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하나님의 법을 말하는 것 같지만 정작은 자기를 드러내고 싶어 안달인 그 마음이 바로 위선과 가식입니다. 전혀 교회와 지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서도 언제나 규범과 전통과 규칙을 지키는 것 만을 강조하는 그 모습이 유대주의 종교지도자들이 가졌던 외식적인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심장과 폐부를 감찰하십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주장이 진정으로 진리를 위한 것인지 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함 인지를 모두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유대주의자들에 대한 주님의 평가는 이사야를 인용하여 말씀하신 그대로였습니다. 입술로는 존경하지만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지도 사랑하지도 않는 텅 빈 형식주의 종교적 관성만으로 신앙을 유지할 뿐인 자들이었다는 것이 주님의 평가였습니다. 우리는 오늘 주님께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는 이 같은 위선적이고 가식적이며 자기의 의에 치우친 유대주의자들의 신앙에 대해서 8절에서 이렇게 확언하셨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정확하신 표현입니다. 정작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과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신 이 복된 새 언약의 비밀에 대해서는 일체 관심도 없으면서 장로들의 헛된 유전에만 집착하면서 그것으로 자신들을 자랑하며 자기들의 의로 삼고 있는 한심한 작태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그들을 꾸짖고 계셨습니다. 장로들의 유전을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유대주의나, 교회의 모든 결정을 성경 위에 두는 교권주의의 본체인 로마 카톨릭이나 모두 부패하고 타락한 인본주의에 기반한 거짓된 종교라는 것을 우리는 올바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개혁파 정통주의를 추구하는 목회를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교리적으로 옳고 그름 만을, 보다 엄밀함 만을 추구하는 확증 편향적인 사람들을 종종 경험했습니다. 정작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경험하지도 않았으면서 언제나 옳고 그름에만 집착하며 그것으로 자기 의를 드러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신앙은 유대주의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에 존재했던 기형적 교인들의 공통된 모습입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아도 법, 원칙, 전통만 잘 지키면 된다고 생각하는 신앙은 결코 성경이 말씀하는 신앙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열등감에 대한 반대급부로 오히려 더욱 열심과 행위만을 강조함으로 자기 의를 드러내고자 하는 그릇된 자기 교만에 의한 지식주의일 뿐입니다. 행위나 원칙만을 강조하는 신앙의 위험성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외식의 위험성을 경계하고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 보다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자기 의를 걷어내는 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결코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