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13 21:16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 가운데 행하신 이적과 기적을 통틀어서 가장 영광스러운 장면 가운데 하나는 바로 해지는 빈 들녘에서의 수만 명을 먹이신 오병이어의 사건이었습니다. 이 이적은 병을 치유하고 귀신을 쫓는 것과는 다른 창조의 이적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땅에서 자라지 않은 보리로 만든 빵과 그리고 갈릴리 호수에서 잡지 않은 생선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셔서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먹고도 12광주리에 남을 만큼 풍성했던 보리빵과 물고기처럼, 하나님께서 택하신 모든 자녀들을 구원으로 인도하기에 충분한 이 위대한 생명의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을 주님은 이 위대한 이적을 통해서 그렇게 나타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님의 뜻을 아는 이는 그들 중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보이신 그 놀라운 능력을 보며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왕으로 삼고자 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를 왕으로 삼으면 자신들의 모든 필요가 채워질 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물리적으로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인간의 생각은 그렇게 이 땅에 물질적인 것에 육체적인 것에 머물 뿐인 것을, 그것이 타락한 인간들의 본성이라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여주는 그 모든 어리석음을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이 자신들의 영혼의 구원으로 향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현실적인 필요와 욕망을 향해서만 흘러가는 것을 보셨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수많은 무리들의 이기적인 목적에 의해 추앙을 받게 된 상황 속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염려하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된 이후로 오늘만큼 어깨에 힘이 들어간 때가 없을 만큼 한껏 고무되어 있었고 대단히 그들의 스승님을 자랑스러워하며 그 곁에서 그들 자신도 높아지려 하는 헛된 공명심에 사로잡히고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주님께서 의도하신 것과 다른 방향으로 무리들과 제자들의 마음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신 주님께서는 즉시 어떤 명령과 행동을 나타내 보이신 것을 오늘의 본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45~46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재촉하셨습니다. ‘재촉하다’라고 번역된 원문의 의미는 ~하도록 강요하다, 억지로 ~시키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의 마음과 상관없이 예수님께서는 강제로, 억지로 속히 그들로 하여금 그 현장을 벗어나게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을 보내시는 동안에 주님은 속히 제자들의 등을 떠밀어 배를 타고 건너편 벳새다로 향하도록 지시를 하신 것입니다. 왜 이 일을 강제로 해야만 했을까요.. 지금 제자들은 그 자리에서 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주목을 그들은 더 누리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속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길 잘했어, 역시 우리 스승님이 보통 분이 아니라는 것을 난 이미 알고 있었지..’
모든 사람들은 예외 없이 대중들 앞에서 자신이 주목받기를 좋아합니다. 자기가 드러나고 인정을 받고 높임을 받으며 그 명예와 명성이 높아지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러나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러한 중생하지 않은 자연인의 타락한 욕구와 욕망과 항상 싸우는 자들입니다. 언제나 내가 아닌, 그리스도께서 높임을 받으시는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을 삶의 목표와 존재의 이유로 여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당위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 안에서 더 깊이 우리 자신의 죄악됨을, 그 전적인 무능과 부패의 실존과 대면하며 그러한 벌레보다 못한 나를 위해 주께서 자신을 버려 대속하여 주시고 구원하여 주심을 언제나 마음에 둘 때에 우리는 결코 우리를 드러내고 높이는 삶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만을 높이고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그 삶의 고상함의 가치를 지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의 은혜로 올 한 해도 우리 자신을 부인하며 오직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해 드러나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일에 진력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풍성한 은혜를 구하기를 소원합니다. 내가 드러나기를 원하는 욕구와 욕망은 날마다 지워지고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그 아름다움이 우리를 통해서 교회 안에서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삶에서 아름답게 드러나기를 기도하기 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서둘러 제자들을 배에 태워 보내시고 우리의 죄를 위해 이 땅에 오신 메시야를 알아보지 못하며 단지 그리스도를 왕으로 삼아 자신들의 욕망을 해소하고자 하는 어리석고 무지한 무리들을 모두 흩으셨고 그들을 보내셨습니다. 메시야로 이 땅에 오신 주님께서 자신이 온 세상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고자 하심이 근본적인 목적이셨다면 주님께서는 어렵지 않게 그것을 달성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목적은 세상의 인기와 명예와 영광을 얻으시고 그것을 누림이 아니셨기에 주님은 이러한 상황을 속히 정리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목적하신 바를 이루시기 위해서 한 번도 그 뜻하신 것에서 벗어나지 않으셨고 줄곧 시종여일하게 그 길을 가셨습니다.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는 일에만 모든 것을 집중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주님의 제자 된 우리들도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오늘도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이 세상에서 번영과 형통과 물질적인 축복을 통해 우리가 높아질 것 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목적을 따라 우리를 온전히 낮추고 하나님만을 높이는 삶이 바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삶을, 하나님의 명령과 법과 계명을 지키며 세상과 구별된 삶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모든 것을 비웃으며 오직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그 거룩하신 뜻과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빛과 소금의 가치와 사명을 생각하며 이 세상을 지나가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 순종하며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는 일에 힘쓰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우리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된 궁극의 목적과 이유입니다. 복음서를 통해서 이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결국 현세 기복주의와 자기만족에 도취된 그릇된 신앙에 치우치게 될 뿐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떠나보내고 기도를 하시기 위해 산으로 가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사역을 위해서도 기도하셨겠지 만 특별히 이 상황에서는 제자들을 위해 그리고 여전히 메시야를 알아보지 못하고 복음을 깨닫지 못하는 무지한 많은 영혼들을 위해 중보하며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여전히 믿음이 부족하고 그들이 어떤 사명을 감당해야 할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무지한 제자들과 육신의 필요에 의해서만 주님을 좇을 뿐, 복음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의 무지한 영혼을 위해 주님께서는 간절히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필요로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서가 아닌 그들의 임금으로 모시고자 했지만 주께서는 그것들을 모두 물리치시고 기도하는 자리로 나아가셨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받은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잊지 마십시오. 그것은 돈도 명예도 인기도 죽일 듯이 서로 물고 뜯으며 쟁취하고자 하는 세상에서의 권력도 아닌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가치는 예수 안에 있는 영원한 삶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것을 위해 언제나 주 앞에 나아가 우리의 마음을 쏟아 기도하며 부디 이 한 번뿐인 인생을 하나님 앞에서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의 삶을 온전히 인도해 주시기를 우리는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로 갑니다. 그러나 그 마음과 영혼에 그리스도가 거하는 자는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언제나 하나님께로 조용히 홀로 나아갑니다. 고요한 시간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시간을 올 한 해도 그 무엇보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