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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는 즉시 말씀하셨습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두려움과 절망 속에서 우리가 주께로부터 가장 듣고 싶은 말씀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주께서는 두려움과 그리고 기진맥진한 상태의 제자들에게 서둘러 다가오셔서 안심하라고 너희들의 스승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을 안심시키시는 자상한 말씀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인생을 지나가는 동안 두려움과 슬픔과 절망과 고통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그것으로부터 도망쳐 보려 몸부림을 치지만 인간은 모두 원치 않는 종류의 괴로움과 두려움, 염려에 붙잡혀 살아갑니다. 그것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뿐입니다. 오직 주께서 우리의 마음과 영혼 가운데 거하시게 될 때 모든 인생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비로소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안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배 안에 주님께서 계실 때와 그렇지 않을 때가 이렇게 분명하게 다를 수밖에 없듯이 그리스도를 알고 그 안에 거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영혼은 천국과 지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께서 배에 오르시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바람이 그치게 되었고 이에 제자들은 또다시 놀라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더 이상 그들을 괴롭히던 바람이 또다시 침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할 때 어두운 밤바다에서 괴로이 노를 젓는 것 같은 인생이나 우리는 비로소 그 모든 두려움과 괴로움으로부터 자유와 평안과 안식을 얻을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성경은 이 모든 일들이 왜 일어났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저희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물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과 배 위에 주께서 오르시자 바람이 잔잔해지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란 사실에 대해서 이 모든 일들이 그들에게 일어난 이유는 그들이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이신 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오병이어의 현장에서 이 위대한 이적을 행하신 분이 곧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참 생명을 주기 위해 오신 메시야 되심을 올바로 깨달았다면 그들은 결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할 이유가 없었겠지만 그들은 여전히 마음이 둔하여져 있는 상태였을 뿐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둔하여졌다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 돌처럼 굳어져 버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엇 때문에 그들의 마음이 돌처럼 굳어져 버린 것일까요.. 그것은 먼저 그들은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주님에 관해서 제자였던 그들도 예수님을 단지 대단한 능력을 가지신 존재로만 생각했고 그런 주님의 제자인 것이 무척 자랑스럽게만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들 역시 주님을 올바로 알지 못했습니다. 주께서는 여러 번 제자들에게 자신은 이 세상에 오신 메시야이심을 밝히셨습니다. 그가 어떤 죽임을 당하게 되실 것이고 그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런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고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듣습니다. 그러나 신자 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이시며 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이 진리에 집중하지 못하고 예수를 믿음으로 어떻게 나의 삶이 나아질지에 관해서만, 나의 안정과 행복에 대해서만 마음을 둔다면 우리는 여전히 예수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며 예수를 참되게 믿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주님을 올바로 알지 못하였기에 예수의 제자들은 그들에게 닥친 위기 앞에서 그들은 번번이 두려워하고 염려하며 근심했습니다. 또한 주님을 보고도 공포에 떨었고 여전히 주께서 행하시는 이적을 보며 놀라고 있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그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결코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성경이 왜 이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믿어서 내 삶이 어떻게 변하게 되고 어떤 복을 받게 되고 어떤 형통한 삶을 살아가게 될지에 대해서만 생각합니다. 이러한 신앙은 오병이어의 기적의 현장의 수많은 사람들과 제자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진정한 나의 구주가 되심에 대해서 올바로 알고 경험하는 것을 뒤로하고 예수를 믿어서 어떤 복을 받고 우리의 삶이 얼마나 더 평안하고 행복할 것인가에만 마음을 두게 되면 뜻밖의 고난과 역경과 위기가 닥치게 될 때 우리도 예외 없이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돌처럼 굳어 버리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 마음 가운데 함께 하시며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지 못할 때, 왜 주께서 우리와 동행하시는지 그 근본적인 이유를 알지 못하게 되면 때로 우리의 삶에 불행과 고통과 위기와 절망과 슬픔이 찾아오게 될 때 영혼이 두려움과 근심과 절망으로 돌처럼 굳어 버리는 일들이 우리들에게도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도 하기 싫고 성경도 보기 싫고 교회도 나가기 싫은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었는데 교회를 다녔는데 왜 나의 인생은 이렇게 불행하고 고통스럽고 왜 나는 이런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인가..’ 이런 한숨과 원망,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누구라 여기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도 그저 나를 편안하게 해 주시는 분으로, 모든 걱정과 근심과 염려를 다 가져가 주시는 분으로만 여기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시련의 바람과 파도를 일으키시고 기진맥진하도록 우리를 힘겹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나의 구주로 그리스도를 올바로 인식하고 그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어떤 대가를 지불하시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셨는지를 올바로 깨닫지 못한다면, 그 끝없는 나를 향하신 사랑과 인내와 기다리심을 올바로 이해함으로 그 사랑에 감화되고 감동받으며 그 십자가의 위대함을 매일 새롭게 발견하고 또 발견하는 은혜를 우리가 누리고 있지 못하다면, 우리의 마음은 언제든 우리의 어려운 환경과 갈등의 상황으로 인해 돌처럼 굳어지고 또 굳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스도를 깊이 발견하고 그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는 그 위대한 사랑과 긍휼과 자비에 관해 더 깊이 깨닫고 경험하고 이것을 맛보지 못하면, 신앙을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일관하게 된다면 그 결과 언제든 우리의 영혼은 우리의 상황과 형편에 따라서 둔하여질 수 있고 뒤로 물러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가 진정으로 우리의 신앙의 중심인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께서 중심이 아니라 여전히 나 자신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돌아보십시오. 우리 자신을 부인하지 못할 때 우리는 결국 나 자신에 대한 사랑과 집착에 가로막혀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삶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한계에 갇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온대 간대 없고 자신의 불행과 고통에만 함몰되어서 괴로움과 슬픔과 고통에 치이는 삶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우리는 무엇을 믿고 있는 것입니까.. 나를 향하신 그 사랑이 진정한 삶의 원동력이 되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될 때 우리는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고 이겨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의 이유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되지 못하면 우리는 언제든 지치고 힘겨워하며 결국은 뒤로 물러가게 되고 낙심과 절망에 짓눌리게 될 것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진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더 온전히 알아가고 경험하는 삶이 우리에게 지속되지 못한다면 우리의 영혼은 붕괴될 것이고 우리의 마음은 둔하여질 것입니다. 마음이 둔하여지면 우리는 또다시 나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내가 즐겁고 내가 평안하면 예수도 믿을 만한 것이고 내가 괴롭고 힘들고 고통스러우면 신앙의 모든 가치들이 뒷전이 되고야 마는 어리석은 일들이 반복될 것입니다.

 

부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표면적으로 지식적으로 관념적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나 같은 죄인을 얼마나 사랑하셨고 얼마나 오래 참아 주셨으며 궁극적으로 나에게 한 번뿐인 인생을 허락하신 궁극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인생은 그 모든 것을 깨달아가고 배워가기 위한 긴 여정입니다. 그것이 신자의 인생 속에서 때때로 마주하게 되는 바람과 파도와 칠흑 같은 어두움의 의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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