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26 08:20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보라’라는 말을 정확히 번역하면 ‘계속해서 가서 확인하고 또 확인하라’라는 반복의 의미가 담겨 있는 명령문입니다. 그러니까 무리 중에 먹을 것을 가진 자를 계속해서 가서 찾고 또 찾아 보라는 말씀입니다.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빵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고 물어보시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같은 질문을 하신 이유는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지금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주님께서 무엇을 어떻게 하시겠다는 것인지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마음으로 썩 내키지 않은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제자들의 마음을 보시고 강권하여 명령하고 계셨습니다. 머릿속으로 생각하지 말고 내 말을 듣고 순종하여 움직이라고 주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때로는 생각하지 말고 오직 주의 말씀을 의지하여 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순종할 때 유약하고 믿음이 적은 우리를 밀어붙이시는 하나님이시기에 결국 하나님에 의해서 어떤 일들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을 봅니다.
주님은 분명히 기회를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믿음으로 반응하기를 기대하셨습니다. 전도여행까지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는 여전히 믿음이 부족했습니다. 그러자 이제 주님은 생각하지 말고 고민하고만 있지 말고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즉각 시행하기를 명하셨습니다. 믿음이 부족하면 순종하기라도 해야 합니다. 의심하지 말고 회의하지 말고 명하신 대로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병행 구절인 요한복음 6장 8~9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니까’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마침내 한 아이가 가지고 있던 도시락, 보릿가루로 만든 작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구해 예수께로 가져왔습니다. 보리빵은 당시 제일 가난한 노동자들이 먹는 주식이었습니다. 빵이라고 하기보다는 과자에 가까웠습니다. 이 아이의 어머니는 예수님을 만나러 간다고 이 아이에게 도시락을 싸주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러 간다고 도시락을 싸준 어머니에 의해서 준비된 이 가난한 자의 음식은 오늘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기적 가운데 하나가 일어나게 되는 재료가 되었습니다.
이 또한 벳새다 들녘의 배고픈 수많은 무리들을 먹이기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예비하신 여호와 이래의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여온 무리들의 규모에 비해 이 도시락의 양은 지극히 적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결코 수의 많고 적음에, 양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음을 우리는 다시 한번 이 사건을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어머니가 싸준 아이의 도시락, 오늘 예수께서는 우리의 가진 능력은 심히 적고 보잘것없으나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복음을 들고 이를 전할 때 수많은 영혼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능력의 역사가 일어나게 됨을 상징하고 예표하는 위대한 예수 그리스도가 행하신 이적을 보게 됩니다.
한 사람에게 전해진 복음이 그 마을과 그 도시와 그 나라 전체에 퍼져 수많은 영혼들을 복음으로 인도하는 역사가 모든 시대, 모든 나라와 민족 가운데 일어났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된 것도 누군가가 우리에게 우리의 가정과 가문에 복음의 씨를 심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도 우리 자신은 보잘것없는 존재에 지나지 않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오병이어로 수만 명을 먹이신 위대한 일을 행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도 동일하신 방법으로 그 능력으로 택하심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믿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명하사 무질서하게 늘어서 있는 군중들을 질서 있게 잔디 위에 떼를 지어 백 명씩 오십 명씩 앉게 하셨습니다. 놀라운 이적이 일어나는 장소는 푸른 잔디 위였습니다. 마가는 의도적으로 35절에서 절망적인 장소로 저물어 가는 빈들을 표현하고 이제 위대한 사건이 일어나는 희망의 장소로 푸른 잔디를 시각적으로 대조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빈들과 같이 공허하고 외롭고 고단한 인생일지라도 그리스도께서 부르셔서 그 앞에 서게 하시면 푸른 잔디처럼 생명으로 가득한 인생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오늘의 여러분의 상황이 빈들처럼 황량하고 처량해 보인다 할지라도 잊지 마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반드시 여러분을, 여러분의 영혼을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고야 마는 주님이 되십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푸른 잔디는 시편 23편에서 우리를 푸른 초원으로 인도하시는 그리스도를 떠올리게 합니다. 언제나 주께서는 우리가 빈들 같은 황량함뿐인 인생을 쉴만한 물가와 푸른 초원으로 인도하시는 우리의 선하신 목자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주께서는 사람들을 50명, 100명 단위로 앉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떼로 혹 백씩, 혹 오십씩 앉은지라’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떼로’라고 번역된 ‘프라시아’의 원문의 뜻은 풀밭, 정원이라는 의미인데 이는 정원에 나무들이 줄을 지어 가지런히 심어진 것처럼 매우 질서 있게 열을 맞추어 앉아 있는 모습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질서와 조화의 하나님이십니다. 결코 무질서하거나 혼란을 용인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줄을 지어 오십 명씩, 백 명씩 앉아 있는 가운데 주님께서 이제 행하실 이적을 누구든 계속해서 이 장면을 잘 볼 수 있도록 자리를 배치하시고 이제 주님은 이적을 행하고자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께서는 이제 그들에게 나누어 줄 음식을 개개인에게 주시기보다는 공동체로 구분하여 주고자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에서도 주님은 나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기를 기도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라고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함께 먹는 자들입니다. 함께 예수의 피로 씻김을 받았고 언제나 함께 주의 빵과 잔을 받으며 언제나 함께 주의 말씀을 공적인 예배를 통해서 받는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지체이며 공동체로 부름을 받은 자들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나 자신만을 위해 기도하는 자들이 아니라 항상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고 우리 모두를 주의 사랑으로 살피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나만 먹는 것을 즐거워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주의 빵과 잔을, 생명의 말씀을 잘 받아먹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