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9 23:43
왕은 마침내 결정을 내렸고 양심의 소리를 묵살한 채 명령을 내렸습니다. 왕의 근위병은 왕의 명을 받들어 요한을 참수했고 그 위대한 하나님의 종은 그렇게 쟁반에 그 머리가 놓여 살로메의 손에 들려져 그 어미에게로 보내졌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신자의 삶에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조차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완전하신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 불가피한 일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앞길을 예비하며 광야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던 광야의 소리 세례 요한이 이렇게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과 뜻의 일부였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가나안 땅을 눈앞에 굽어보면서도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너는 그 땅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출애굽의 그 긴 여정을 이끌어 왔던 위대한 지도자 모세, 누구보다 그 약속의 땅에 발을 들여놓고 싶었을 터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여기 까지다. 이제 하나님은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를 통해서 가나안 정복을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지만 모세는 그 하나님의 뜻을 받들었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올라갈 때가 있으면 이제 내려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주권과 계획에 순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십시오.
요한은 아무런 저항도 어떤 말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때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는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가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고 이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그 남겨진 메시야로서의 가장 위대한 대속의 사역을 잘 감당하시기를 응원하며 요한은 자신의 사명을 다 완수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든 것이 집중되어 그가 죄인들을 위해 행하신 모든 일들이 온전히 드러나야 하기에 요한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조금 더 살고 조금 더 영광을 누리고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시간표는 우리에 의해서 움직여지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오늘도 움직여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과 죽음이 오직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삶에 관해서 모든 것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우리가 바라는 행복을 누리며 살기를 소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는 인생을 우리의 관점에서만 바라볼 때 가능한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고 높임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란 나의 모든 소원이 성취되는 삶이 아닙니다. 나를 통해, 나의 모든 희비애락을 통해서 오직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1장 20~21절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 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한 여아의 소원에 의해 참수 당한 채 쟁반에 올려져 간악한 왕비의 기쁨이 되는 것이 인간적으로 보기에는 비참한 세례 요한의 최후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모든 계획과 뜻을 이루셨고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무엇이든 가장 좋은 그림만을 생각지 마십시오. 우리가 이보다 더 나빠지고 더 어려워질지라도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그 이름의 영광을 받으신다면 기꺼이 우리의 모든 삶을 드릴 수 있는, 나의 불행과 고통까지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기를 바라는 그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인정하는 믿음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