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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레스와 세라는 유다가 그의 자부다말을 통해서 낳은 아들들입니다. 다말은 가나안 여인으로 유다의 첫 아들 엘의 아내였습니다. 일반적으로 히브리인의 족보에서 여인의 이름이 포함되는 것은 전무한 일입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의 족보에는 예수의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비롯해서 다말, 5절의 라합과 룻, 그리고 6절에 밧세바 등 여러 여성들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이 가운데 다말과 라합과 룻은 이방 여인이었습니다. 라합은 기생이었고 다말은 창녀로 변장하여 시아버지를 속여 관계를 가짐으로 베레스와 세라를 낳게 됩니다. 룻이 밤에 술을 마시고 타작마당에 누워있는 보아스에게로 나아간 것 역시 윤리적으로 올바른 행실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밧세바는 남편 우리야가 있음에도 다윗과 불의한 관계를 가진 여인이었고 마리아는 그녀의 잘못이 아닐지라도 처녀로 아이를 잉태한 것은 유대인들의 율법적인 관점으로 볼 때 정죄 받아야 할 부도덕한 죄로 여겨질 일이었습니다.

 

이방의 여인, 그리고 기생과 창녀, 윤리적으로 부도덕한 여인들이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있어 충격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무엇인가 중대한 의도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의 족보는 사회적으로 대단한 명성과 명예가 있는, 찬란히 빛나는 인물들로 구성이 되어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후손으로 죄 있는 인간의 모양으로 오셨고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분 이심을 예수님의 족보는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의 어떤 죄악과 부정을 통해서 성취되고 이루어집니다. 그리스도는 죄인을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심을 이보다 더 명확하게 보여줄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의 역사는 결코 혈통적 유대인들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이방의 민족들까지 포함하여 누구나 구원의 대상이 됨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우리들에게 그것을 분명하게 강조하며 드러내고 있습니다.

 

솔로몬을 보십시오. 그 또한 다윗의 장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가 왕위를 물려받게 됩니다. 이를 보아서도 역사를 주관하시며 왕들을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시는 분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그 어떤 것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을 예수의 계보는 우리들에게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는 이 같은 구원의 섭리의 비밀들이 숨겨져 있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2 8~9절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우리는 이 진리를 마태복음의 진리 안에서도 깨닫게 됩니다.

 

솔로몬 시대의 부와 영광은 그 아들 르호보함에 이르러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나뉘면서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르호보암은백성이 많아지다라는 의미이지만 그 이름의 뜻 과는 달리 북 이스라엘 열 지파를 여로보암에게 뻬앗기게 되고 유다와 베냐민 지파만을 다스리게 됩니다. 그러나 북 이스라엘은 결국 멸망하고 남 유다를 통해서 계속 메시야의 계보는 이어짐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강자가 아니라 약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분 이심을 이스라엘의 역사는 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람이 웃시야를 낳았다고 했는데 사실 이 둘 사이에는 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샤 등 세 왕의 이름이 누락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메시야 족보에는 모든 조상들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연대기적으로 족보가 기록된 것이 아니고 기독론적이며 구속사적으로 중요한 핵심 인물들의 이름들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것은 족보에 대한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신학적 메시지를 담고자 했던 것입니다.

 

마태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주할 때까지 14대의 구조를 맞추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그 이름들을 생략한 것으로 보입니다. 14, 14, 14, 42대로 이어지는 족보에 나오는 이름 가운데는 상당수가 중간에 누락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목할 부분은 14는 완전 수 7의 배수라는 점입니다. 유대인들에게 7은 하나님의 영의 수를 상징합니다. 또한 7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완성된 날의 수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죽으심과 부활을 통한 둘째 창조의 완성의 숫자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또한 마태는 숫자 이 14의 숫자가 3주기로 구성 되도록 함으로써 삼위의 하나님을 의도했을 것으로 보여지는데, 이렇게 이 모든 숫자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다분히 유대인들이 숫자를 통해서 상징을 나타냈던게마트리아해석법을 의식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게마트리아’는 히브리어의 자음에 숫자를 부여하여 값을 메기는 방식을 뜻합니다. 따라서 다윗은 4+6+4의 구조가 됨으로 그 합은 14가 됩니다. 14, 14, 14대라는 숫자는 게마트리아 해석법에 의하면 다윗, 다윗, 다윗이 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윗 왕의 후손으로 오신 참되신 메시야 이심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세 번이나 강조한 것은 예수께서 진정한 다윗의 후손이며 구약이 예언하고 있는 바로 그 메시야 이심을 강조하기 위함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는 유대인들을 주 독자로 삼았기 때문에 그들이 잘 아는 게마트리아 해석법에 따른 숫자의 배열을 통해서 더욱 설득력 있게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혈통으로 오신 메시야가 분명하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의도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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