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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과 모든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요한에게로 나아왔다고 적고 있습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요한에게로 나아와 그가 선포하는 말씀을 들으며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고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의 압제 아래 있었고 매우 고통을 당하며 억압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요한이 외치는 메시야의 도래를 알리는 메시지는 그들에게 큰 희망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고대하는 메시야를 뵈오려면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요한의 말에 적극 반응하고 있었습니다.

 

‘죄를 자복하고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죄를 고백했습니다. 연일 수많은 사람들이 죄를 고백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행위는 속히 메시야를 만나기 위한 열망의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이들이 모두 진정으로 중생한 자들이 되었다면 주께서 공생애의 사역을 시작하실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주께서 그 같은 수난을 당하시며 십자가를 지실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토록 많은 자들이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았어도 그들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모두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아 죽이라고 외치는 폭도들로 돌변하지 않았습니까.. 메시야를 만나게 되고 자신들의 삶이 변화될 것이라는 기대와 소망은 수많은 자들이 형식적으로라도 죄를 자백하며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요한이 사람들을 일깨워 메시야를 간절히 바라고 소망하게 한 것에는 분명 일조한 것이 틀림이 없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물로 세례를 줄 뿐이며 뒤에 주께서 오심으로 성령과 불로 진정한 세례를 베풀게 될 것을 그들에게 말한 것에 주목해 보십시오.

 

, 요한의 세례는 메시야께서 베푸실 성령과 불 세례를 예비하는 의미가 되었던 것입니다. 진정한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복음을 듣고 성령을 통해서 믿음을 얻게 될 때 얻게 되는 것입니다. 물세례는 구원을 결정지을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세례 만이 그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증명할 따름입니다. 최종적인 구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하신 죽음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그 영광된 부활을 믿는 자가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 같은 죄의 고백과 물로 씻는 정결 규례는 그들이 오랜 율법적인 전통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제사장은 제사를 지내기 전에 목욕을 해야 했습니다. 이방인이 유대인이 되고자 할 때에도 물에 잠기는 정결 규례를 행해야 했습니다. 유대의 분파 가운데 에세네파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정결을 위해 목욕을 했습니다. 그들이 지금 요단 강가로 몰려와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것은 메시야를 대망하며 기다리기 위한 그들의 열심히 빚어낸 모습들이었습니다. 참된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신앙의 모든 모양과 형식을 따라 행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형식적으로 예배에 나아오고 찬송을 부르고 눈을 감고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설교를 듣고 성찬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행위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정한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 모든 행위는 구원과 무관한 것이 될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이 베푸는 세례를 베푸는 장소에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 ‘파리사이온분리된 사람들혹은구별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이들은 주전 2세기경 헬라 문화에 동화되려는 움직임에 반대하며 유대인의 신앙 정체성을 지키려는 경건 운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유대교를 대표하는 집단으로 이들은 구약 성경만을 인정했고 더불어 율법과 세부적인 규정들을 만들어 엄격하게 이를 지키는 자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죽은 자의 부활과 천사의 존재 영의 존재를 믿었습니다. 이들은 유대인들에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었는데 이 유대인들의 대중적 지지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이동하는 것에 대해서 매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신앙은 철저하게 자신들의 의를 드러내기 위함이었기에 주께서는 공생애 내내 이러한 그들의 추악함에 대해서 매우 강하게 질타하시며 그들과 부딪히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두개인, ‘삳두카이온은 대제사장이었던사독에서 유래된 이름입니다. 이들은 제사장 귀족 계층으로 구성된 집단이었습니다. 사독은 다윗 시대의 대제사장으로 다윗 왕과 그 가문에 충성을 다했고 그 제사장의 후손들과 그 모든 추종자들을 후에 사두개인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모세 오경만을 성경으로 인정했습니다. 이들은 부활을 부정했고 영혼의 불멸성과 천사들의 존재를 부정한 자들로 이들도 바리새인들처럼 예수님께 크게 책망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갈등하게 된 원인은 이들은 제사장 가만의 귀족들로 성전의 운영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로마와 정치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특권을 누리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시는 개혁을 단행하시며 성전을 허물겠다는 이러한 발언들이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는데 상당한 부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이유에서 그들은 바리새인들과 손을 잡고 예수님을 제거하는 일에 적극 동참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외식과 율법주의 그리고 세속주의와 거짓된 믿음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거듭 당부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유대교를 구성하고 있는 양대 기둥과 같은 세력들과 정면으로 부딪히시며 그들의 거짓되고 가식된 위선적인 신앙에 대해서 공격하셨고 그들에게 장악 당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혼들에 대해서 매우 큰 연민을 가지고 계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의 한 사람으로 제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여러분이 개혁주의 교회를 다니면서도 끊임없이 그릇된 신앙에 대해서 기웃거리며 목사의 설교와 강론에 귀 기울이지 않고 다른 복음을 들으며 그런 것에 심취함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유대주의자들과 대립하시며 그들을 끊임없이 공격하신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왜곡하며 그 모든 율법을 자신들의 이익의 재료로 악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현세 기복주의나 그릇된 은사주의, 형통과 번영신학을 불신앙보다도 더 미워하고 혐오합니다. 복음을 왜곡시키고 변질시켜 수많은 영혼들이 교회를 다녔어도 결국 구원과 영생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거짓 복음과 거짓 진리에 미혹 당하는 영혼들에 대해서 말할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참된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임을 알기에 부디 참된 복음을 듣고 올바른 신앙의 길을 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에게로 나아온 이들을 결코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유화적인 화법 대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오는 것을 보고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보다라는 말은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는 의미입니다. 즉 그들의 저의를 꿰뚫어 보면서 그들이 이곳에 온 이유를 통찰하고 이제 그는 그들을 향해 입을 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요한이 이렇게 말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은 매우 냉소적이고 오만한 태도를 가지고 요한에게 집중되고 있던 대중들의 관심을 파악하고 동태를 살피기 위해 그곳에 나아온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막강한 세력을 가진 유대교의 양대 분파를 향해서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매우 강한 어조로 도발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누구도 이들을 이렇게 부를 수 있는 자들은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요한은 주저 없이 그들을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불렀습니다. 누가 너희들에게 임박한 진노를 피하기 위해 세례를 받으라고 말해 주더냐, 요한은 빈정거리는 말투로 진리를 전혀 받아들일 마음이 없는 그들을 향해서 이렇게 강력한 말로 그들의 폐부를 찌르고 있었습니다.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요한도 주님도 결코 평화적으로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복음을 듣고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영혼들을 향해서 우리는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시는 주님의 마음으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돌이킬 것을 촉구해야 합니다만 그러나 복음을 대적하며 하나님을 경멸하고 진리를 부정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성도는 단호해야 합니다. 이단이나 혹은 기독교를 박해하는 공산주의를 비롯한 그 어떤 인본주의적인 사상이나 이념에 대해서도 기독교인들은 분명하게 이를 배척하며 대항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상은 반 기독적이며 반 성경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악한 세력들을 옹호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죄라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세례 요한을 보십시오. 그는 이 유대주의자들을 용납하거나 그들과 좋은 말로 대화를 하고자 하는 의도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냥 악일뿐입니다. 악은 대화의 상대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과 우리가 어떻게 벗이 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평화로울 수 있습니까.. 진리와 비 진리가 어떻게 섞일 수 있습니까.. 그 악에 돌이키라고 소리를 지르며 우리는 그들을 향해서 진리의 사자후를 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가로막는 자들에 대해서 거침없이 그들의 악을 지적하며 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평화의 종교가 아닙니다. 진리가 부정되고 왜곡될 때 우리는 분연히 일어나서 그것은 진리가 아니며 복음이 아니라고 외치는 자들이 되어야 하고 비 진리와 치열하게 싸워 진리를 지켜내야 할 자들입니다. 그것이 이 땅 가운데서 교회와 성도들이 감당해야 할 영적인 싸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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