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2 08:35
귀신은 말합니다.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라고 절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사탄 마귀의 세력들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귀신들린 자는 극도의 두려움에 떨면서 주님과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서둘러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지존하신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귀신 따위인 자신에게는 신경을 쓰실 이유가 없고 하고자 하시는 일에만 열중하시면 된다는 의미로 자신을 제발 해하지 말아 줄 것을 간청하는 말이었습니다.
귀신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하실 수만 있으면 당장에 자기를 무저갱 밑바닥에 처넣으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이 귀신은 하나님께 맹세하고 자신을 괴롭게 하지 말아 달라고 예수께 빌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병행 구절인 마태복음 8장 29절을 보면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오셨나이까’라고 구체적으로 귀신들린 자가 주님께 한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로 보건대 지금 귀신들린 자는 종말론적인 심판 날에 있게 될 모든 사탄 마귀들에 대한 징계, 곧 영원히 무저갱에 던져지게 되는 그때가 아직 도래하지도 않았는데 왜 지금 벌써 자신 앞에 나타나셔서 자기에게 그 일을 행하려 하시는 것인지에 대한 불만과 두려움을 표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귀신은 이렇게 예수님 앞에 완전히 굴복하며 자신을 해하지 말아 주시기를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귀신이나 악령의 활동에 대한 기록이 거의 발견되지 않습니다. 신약 성경에서도 예수님 당시와 이후 사도 시대 이후로부터는 귀신이나 악령의 기록들이 사라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후 종교 개혁 시대나 청교도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귀신의 역사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귀신이나 악령의 역사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더 이상 예수님께서 계셨던 시대처럼 드러내 놓고 역사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귀신이나 악령의 역사는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그리스도의 메시아적 권능을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일시적으로 두드러지게 역사한 것일 뿐임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귀신들린 자들의 출현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이며 주께서 모든 사탄에게 매인 자들을 풀어 해방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오셨음을 예표적으로 보여주시기 위해 다만 일시적으로 나타났던 것일 뿐이지 그것은 복음이 말씀하고자 하는 본질이 아니었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8~13절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축출하기 위해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의 영혼과 육체를 장악하여 오늘까지 주인 노릇을 해 오던 귀신에 대해서 주님은 즉시 퇴거를 명령을 하셨습니다. 진정한 영혼의 주인 되신 그리스도께서 불법 점거 중이던 귀신을 쫓아 내시고 그 영혼을 다시 회복시키시며 자신의 소유로 삼으시는 이 장면은 모든 택하신 백성들을 그 사탄의 권세 아래서 해방시키시는 위대한 그리스도의 구령 사역의 그 의미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성령을 통해서 예수께서 찾아오셔서 우리를 사탄의 권세 아래서 해방시켜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사탄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마귀의 자식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마침내 우리에게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믿음을 선물로 주시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게 하심으로 사탄의 지배 아래서 우리를 영원히 구출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성 삼위 하나님의 구속하신 은혜로 사탄 마귀로부터 영원히 해방된 자들입니다. 그것이 신자의 정체입니다.
에베소서 2장 2~3절은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받은 자를 따랐으며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그리스도 밖에 있었던 우리의 실존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5장 10절은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원수 되었던 자들이었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사탄의 지배 아래서 하나님을 대적하던 우리들을 위해 주님은 우리와 하나님을 화목케 하기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고 진리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와 원수된 자들이었고 사탄의 종이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과 멀어져 있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사 아들을 보내어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하셨음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보여주는 것입니까.. 디모데후서 1장 9절은 우리가 받은 이 구원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받을 수 없는 자에게,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아무 조건 없이 임하신 그 하나님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혜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하신 것임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원수된 자와는 말도 하지 않고 보지도 않으려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면, 주님은 우리가 사탄의 자식이 되어 그리스도의 원수가 되어 있을 때 우리를 위해 자신을 버리신 분이십니다. 사랑받을 만한 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자를 그러나 일방적으로 사랑하셔서 그 사망과 저주에서 건져 내신, 그것이 바로 무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우리를 향하신 사랑이셨습니다.
이사야 53장 6절은 그 사랑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고집스러운 양처럼 하나님을 등지고 모두 제 길로, 멸망의 길로 행하고 있었던 우리들을 위해 아들을 대속의 제물 삼으셨음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귀신 들린 흉악한 자를 아무런 조건 없이 불쌍히 여기심으로 그를 지배하고 있는 귀신을 쫓아내시고 그를 구원하심 같이 우리 모두를 주께서 그렇게 불쌍히 여기심으로 마귀의 종노릇 하던 가운데서 건지셔서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로 다시 돌아오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임한 구원이며 우리가 영원히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사랑을 기리고 찬양해야 할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