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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이로의 집으로 향하실 때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제외하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여기서부터 예수님과 주로 중요한 자리에 함께 한 자들이 이름들이 구분되어 기록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소수의 증인들만 대동하시고 불필요한 구경꾼들을 모두 물리셨습니다. 이후의 장면에서 보겠지만 믿음이 없는 다수의 무리와 군중들은 이제 예수께서 행하실 놀라운 일들에 대해서 방해만 될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장례의 문화는 우리와 흡사한 점이 있습니다. 서양의 장례식은 매우 엄숙하고 슬픔이 절제되어 있다면 우리의 장례식은 곡을 하는 문화입니다. 유교 문화의 영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도 장례식에도 마찬가지로 곡을 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돈을 주고 곡을 하는 사람이나 피리와 같은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까지 동원하기도 했습니다. 병행 구절인 마태복음 9 23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 직원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훤화하는 무리를 보시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이로의 딸의 장례식의 분위기를 보십시오. ‘훤화함’이란 어지러울 정도로 시끄럽게 떠드는 것을 가리킵니다.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셨다고 했습니다. ‘통곡하다’라고 번역된 원문의 의미는 울부짖다, 큰 소리를 지르다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이 악을 쓰며 울부짖는 소리와 피리 같은 악기 소리까지 그야말로 정신이 없는 그런 분위기가 야이로의 집에서 연출되고 있었습니다. 야이로의 집안으로 들어가셔서 이 모든 소란한 모습을 보신 주님은 그들을 책망하시면서 너희가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관점과 인간들의 관점의 이 극명한 차이를 보십시오. 야이로의 집은 순식간에 장례식장으로 변해 사람들이 집이 떠나갈 듯이 소리를 지르며 울부짖고 악기를 연주하며 지극히 큰 소동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큰 슬픔이 찾아왔을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함께 소리를 지르며 울든지 시끄러운 악기 소리를 통해서 그 슬픔을 달래거나 잊기 위해 몸부림치는 일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다 의미 없는 일들입니다. 어리석은 행동들뿐입니다. 그렇게 한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지도 않을텐데 왜 울부짖고 괴성을 지르며 악기까지 동원해서 시끄럽게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유대인들의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불신앙적이고 형식적이며 인간 중심적인지를 그들의 장례 문화는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꾸짖으시면서 이제 주님께서 바라보시는, 주님께서 통제하고 계시는 이 모든 상황에 대해서 한마디로 짧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아기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모든 죄인들을 향한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소망 없는 인생들은 향한 주님의 관점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죽은 것이 아니라 지금은 잠시 잠이 든 것뿐이다.’

 

우리의 눈에 여러분의 눈에 소망이 없어 보이는 어떤 사람이 있으십니까.. 그 사람이 여러분 자신입니까.. 여러분의 영혼이 죽은 듯 느껴지십니까.. 그렇게 완전히 죽은 자를, 아무런 소망 없는 죄인들을 오늘도 살리시는 이가 바로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제는 모든 희망이 사라진 곳에서 다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시는 분이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의 관점에서 완전한 죽음, 완전한 절망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다시 살아날, 다시 소생할 생명일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불어넣으시며 불가능이라고 우리의 이성이 결론 내린 그곳에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실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영벌의 지옥을 향해 내리 달리던 자들을 가로막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분이 우리의 구주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망의 현장에서 부활과 생명을 명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그 깊은 사망의 잠에서 깨우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허락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신뢰하십시오. 인생은 죽음을 뛰어넘을 수 없는 명백한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 사망의 두려움과 슬픔을 능가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안에서만, 그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우리는 죽음으로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삶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절대적인 절망도 죽음도 예수 안에서는 생명과 희망이 됩니다. 오직 예수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의 구주이십니다. 우리 모두가 이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한 우리의 구주로 믿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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