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8 09:03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자 그곳에 있었던 자들의 반응은 주님의 말씀을 비웃는 것이었습니다. ‘비웃다’라는 원문의 의미는 조롱하며 야유하며 비웃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속으로 비웃은 것이 아니라 대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경멸하는 말과 행동을 보인 것을 뜻합니다. 이 어리석은 자들의 무례함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을 비웃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복음은 언제나 조롱과 멸시와 비웃음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은 경멸과 혐오, 그 이상의 가치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들을 귀가 있는 자에게만 들려지고 그 외에 다른 이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참 복음의 가치입니다. 오늘도 세상에 속한 자들은 이 생명의 복음을 비웃고 조롱합니다. 그래서 그 결국은 바깥 어두운 곳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비웃고 조롱하고 멸시하는 자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셨습니다. 그들은 이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더 이상 그들의 훼방을, 그들의 비웃음과 조롱을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주께서 이제 행하실 위대한 일에 그들은 방해꾼일 뿐이며 이 위대한 기적을 볼 자격조차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신자라는 이유로 때때로 세상으로부터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조롱을 당하십니까.. 여러분의 마음속에서부터 그들을 몰아내십시오. 그들의 존재에 주눅이 들거나 그들을 의식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가 그런 자들로 인해서 우리의 신앙이 위축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우리에게 주어진 길과 사명만 생각하면서 잠잠히 믿음의 길을 걸어갈 뿐입니다.
주님은 모두 그 집에서 내보내신 이후에 세 명의 제자들과 그 부모만을 그곳에 남겨 두셨습니다. 그리고 이내 주님께서는 그 죽은 아이의 손을 잡고 아람어로 ‘달리다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던 그 소녀의 육신에 손을 대시며 그 생명의 주인이 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생명을 힘차게 불어넣고 계셨습니다. ‘너에게 내가 말한다 일어나라’라는 의미입니다. 생명의 호출입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생명을 주신 분이, 생명을 거두시는 분이, 모든 생명의 소유주께서 죽음에 대해서 호령하시며 다시 살아나라고 일어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죽음에서 내 딸을 내놓으라고 명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강력한 생명의 호령을 받고 사망의 잠에서 깨어난 자들입니다. 여러분은 이 진리를 믿어야 합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모든 잠들어 있는 영혼들에게, 모든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깊이 잠든 자들에게 오늘도 내게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고 우리의 구주께서 외쳐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오늘도 찾아가셔 이제 그만 그 깊은 잠에서 깨어나 영원한 생명을 향해서 벌떡 일어나라고 말씀하시는 그 생명의 호령을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듣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침내 여러분은 그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 피 묻은 손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당신이 영벌에서, 영원한 죽음에서 영원한 저주에서 건짐을 받아 구원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복음입니다. 구원입니다. 영생입니다.
주님은 이 야이로의 딸뿐만 아니라 나인 성 과부의 아들도 베다니의 나사로를 그렇게 살리셨습니다. 모두 주님의 이 생명의 호령을 통해서 그들은 다시 살아난 자들이었습니다. 복음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을, 사망 선고를 받은 자들을, 지옥의 영원한 형벌 아래 있는 자들을 다시 살려 내는 유일한 능력입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분께서 죽은 자에게 다시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바로 그 순간이 천국의 복음이 선포되는 이 시간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우리의 위치가 바뀌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죽은 자가 영원히 살게 된 자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 생명의 역사가 오늘도 우리 안에서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오늘 이 시대 가운데서도 부디 자기 백성들에게 행하심을 믿습니다. 부디 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성도의 가정과 주님의 교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