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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이제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계셨을 때 한 사람이 예수께로 달려와서 무릎을 꿇고 예수님께 질문을 하는 상황이 펼쳐지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라고 마가복음은 기록하고 있는데 마태복음에서는 청년으로 누가복음에서는 어떤 관원이라고 각각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기록들을 종합해서 볼 때 이 사람은 청년이었으며 유대의 관원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는 재산이 많은 부자였다고 오늘의 본문은 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청년에 대한 기록이 세 복음서에 모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서 예수께서 그와 나눈 대와의 내용이 구원 얻는 믿음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청년은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여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을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자마자 주님께로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함부로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공적인 장소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그 마음이 얼마나 다급했는지 예수님을 보자 그에게로 달려왔고 그리고 그 앞에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체면이나 위신 따위를 개의치 않으며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이 청년에게 절박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예수께서 능히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자로 이 청년이 의심 없이 믿고 있음을 보여주는 행위였습니다. 그의 심각한 근심과 두려움의 문제는 바로 자신의 구원의 문제, 영생의 문제였습니다. 그는 지금 예수께 자신이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을지를 질문하고 있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이룬 유대의 관원이라는 사회적인 지위도, 그리고 많은 재산도, 그가 오늘까지 엄격하게 지켰던 율법과 계명으로도 이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는 지금 죽음 이후의 영생에 문제에 관해서 깊은 고뇌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는 철저한 유대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 같은 영생의 문제에 대해서 근심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요.. 그것은 그가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여라고 부른 말속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왜 선한 선생님이라고 불렀을까요.. 그는 예수께 대해서 소문을 익히 들었을 것입니다. 주께서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자들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여러 놀라운 이적을 행하심으로 사람들에게 인자와 자비와 선을 행하심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하였기에 그는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이는 그가 가진 선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의 정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선 이란 막연히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도우며 치료하며 고쳐 주는 긍휼함과 자애로움, 박애적인 것 정도였습니다. 율법을 준수하고 할례를 행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으로 그는 그것이 의롭고 선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청년은 오늘까지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보기에 예수 그리스도는 훌륭한 랍비나 선지자 정도로 보여졌을 것입니다.

 

질문을 받으신 주님께서는 그에 답하시지 않고 그가 한 표현을 먼저 문제 삼으셨습니다. 주님의 대답은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이 청년이 생각하는 선과 주께서 말씀하시는 선의 개념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 이었습니다. 이 청년이 생각하는 선은 인간의 행위로서 드러내는 선 이었습니다. 인간이 경험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선이었습니다. 유대주의자들이 흔히 생각하는 수준의 인간의 선과 인간의 의를 의미하는 것으로 인간의 공로와 업적으로 나타나는 선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이 청년이 가지고 있는 선의 개념의 한계였습니다. 그는 유대주의, 율법주의 사상을 철저하게 신봉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선을 말할 자격이 없고 선하지도 않습니다. 인간이 주장하는 어떤 선도 절대적으로 선하신 하나님 앞에서 선이 될 수 없습니다. 로마서 3 16절은 분명히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결론 내리고 있고 같은 장 12절은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탄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유대주의자들이 스스로 자랑하는 자신들의 선에 대한 인식을 한마디로 부정하시면서 인간은 모두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존재로 어떤 행위나 공로도 선해 질 수 없고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이 완전한 선, 그 자체이실 뿐임을 그에게 깨닫게 하셨습니다.

 

인간은 인간이 선하고 정의로우며 도덕적이고 박애적이라고 믿고 싶어하고 그런 인간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강한 자부심을 갖고자 하는 사악한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본주의입니다. 인본주의는 인간이 절대 악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진보하고 발전하며 스스로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도덕과 정의와 평등과 자유의 위대한 가치들을 지켜 나아갈 수 있는 존재라고 믿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물어보겠습니다. 인간이 지금까지 만들어 온 세상은 그래서 과연 이 모든 가치들을 잘 실현해 왔습니까.. 그래서 지금 이 세상이 얼마나 자유롭고 정의로워졌습니까.. 인간이 말하는 평등은 과연 성경이 말씀하는 가치에 부합한 것입니까.. 인간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세상을 만들었습니까.. 이 사회가 이처럼 양극화되어 서로를 혐오하고 증오하는 모습들을 보십시오. 인간이 옳다면 왜 이 세상이 이렇게 몰락해 가고 있습니까.. 왜 여전히 전쟁은 끊이지 않고 이 세상은 더욱 죄와 타락으로 넘쳐나며 더욱 혼란스러워하고 있습니까.. 인간은 왜 더욱 추악해 가고 부패와 타락은 극에 달하고 있는 것입니까.. 왜 세상은 더욱 정의와 법과 도덕과 선의 가치로부터 멀어지고 있습니까.. 인본주의 사상은 얼마나 어리석은 망상에 불과한 것이지를 부디 깨달아야 합니다.

 

주께서 이 청년에게 왜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라고 하시며 오직 하나님만 홀로 선하심을 단호하게 말씀하신 의미는 단순히 예수님을 스스로 겸손하게 표현하신 것이 아니라 바로 이와 같은 교훈의 뜻이 담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무엇보다 인간의 존재는 절대로 선할 수 없다는 것을 일갈하신 것입니다. 청년은 지금 영생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그에게는 선에 대한 올바른 성경적 개념조차도 제대로 세워져 있지 않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 구원과 영생은 마음으로 원한다고 얻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단지 막연한 불안감만으로 교회를 나온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나 자신이 도덕적으로 올바르고 선하며 나름대로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해서 영생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결국 죄인에게 복음을 듣고 깨닫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이심을 믿어지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통해서 비로소 구원과 영생은 값없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청년은 영생에 대해서 진지하게 갈망하는 한편 영생을 얻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가지고 있었지만 전혀 구원의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자신 앞에 있는 분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이심도 알지 못했고 그는 인간이 스스로 얼마든지 선해질 수 있고 선한 존재라 여기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공로와 행위가 얼마든지 선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던 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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