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0 20:47
호세아 선지자는 ‘이틀 후에’, ‘제 삼일에’ 우리를 살리시고 우리를 일으키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이스라엘의 회복이 매우 급속하게 이루어질 것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틀과 삼일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결국 이스라엘의 회개와 그리고 뒤이은 하나님의 즉각적인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며 나아가 멋 훗날 메시야를 통한 영원한 부활의 생명을 약속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찢으시고 치시는 분도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살리시고 일으키시는 분도 여호와 하나님이 되심을 성경은 우리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욥기 5장 18절에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라고 기록하고 있고 시편 147편 3절에는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30장 26절에서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회복은 우리가 하나님 그분 앞에서 다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낯을 피해 풀숲에 숨었습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고 하나님을 피하게 만듭니다. 다윗은 간음의 죄를 범한 이후에 회개하며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말아 주시기를 절규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외면하시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습니다.
신자에게는 하나님 앞에서, 그 친밀하심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행복입니다.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해 같이 빛나는 하나님의 존전에서 살아가는 것은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가장 큰 영광입니다. 그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은 자녀 삼아 주신 모든 자들의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맛보며 거룩한 예배 가운데 그리고 우리의 모든 삶의 현장에서 우리와 동행하시는 그 하나님을 친밀하게 느끼고 경험하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며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낯을 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그 무엇도 우리에게 이보다 가치 있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코람데오’의 삶이 참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가장 큰 우리의 열망과 기대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정결한 자와 교통하시며 그에게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죄를 미워하고 거룩과 순결을 사모하며 경건에 진력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친밀하심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이, 그 앞에서 깨끗한 양심과 평온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신자에게는 가장 큰 축복이며 행복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지럽고 절망이 우리에게 엄습해도 우리의 마음에 떠 오른 의의 태양이 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매일 뵈올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날도 능히 넉넉하게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낯을 구해야 할 일이고 죄와 싸우며 올 한 해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살아가야 할 이유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의 창궐한 죄악과 하나님을 향한 배도로 인해서 우리를 향해서, 성도와 교회를 향해서 하나님께서 그 낯을 감추신다면 그러한 날들은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재앙이 될 것입니다. 진정한 절망은 하나님의 얼굴을 우리에게서 가리시는 것입니다. 더 이상 너희와 함께 동행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는 날벼락 같은 선언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그리고 이 땅의 교회를 바라보며 우리가 깊이 우려하고 염려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이가봇’ 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이가봇,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의미입니다. 때가 이러함에도 기도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을 찾지 않으신다면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에게 두려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