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27 22:53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나 돌이키지 않는 악에 대해서는 반드시 징계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성품을 성경이 우리에게 이처럼 선명하게 보이시는 것은 그 선하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시험치 말고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악에서 돌이켜 회개함으로 멸망을 당하지 않고 영원히 살 길을 찾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끝없으신 사랑을 아들을 통해서 보이심과 동시에, 죄에 대해서 그토록 진노하시며 모든 악에 대해서 반드시 공의로 심판하고야 마시는, 하나님은 그런 아버지가 되심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수없이 강조한 바대로 하나님을 올바로, 그리고 온전히 알고 믿는 것은 신앙에서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안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오직 한 번뿐인 우리의 인생은 무의미한 가치가 될 뿐입니다.
하나님에 관해서 내가 알고 싶고 보고 싶은 것 만을 알고 보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관해서 성경이 말씀하는 모든 것을 우리가 자세히 알고 진리가 말씀하고 있는 그 하나님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을 성경을 통해서 보여 주신 대로 우리는 그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우리의 하나님으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것을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스바냐를 통해서 심판하시는 하나님, 진노하시며 징계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날이 마침내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이스라엘을 향해서 오래 참으시고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서 그들의 회개와 돌이킴을 촉구해 오셨는지를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래 참고 기다리시며 돌아오기를 말씀하고 또 말씀하신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침내 우리는 공의 가운데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결코 원망할 수 없습니다. 끝까지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으며 하나님을 찾지 않은 우리의 모습 속에서, 좀처럼 변화되지 않는 게으름과 나태한 우리를 바라보며 우리 자신에게 절망할 수밖에 없고 그러하기에 오직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그 은혜에 기댈 수밖에 없음을 날마다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는 이 진리의 깨달음이 얼마 남지 않은 스바냐 서의 강해가 다 끝나기 전까지 부디 우리 모두의 마음 깊이 스며들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거듭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돌이키지 않으며 악으로 달려간 유다를 비롯한 모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방의 나라들을 향해서 이제 하나님께서는 맹렬한 심판을 예언하십니다. 순결한 처녀 같던 예루살렘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쾌락에 몸을 던진 창녀와 같은 완전히 타락해 버린 예루살렘 만이 존재할 따름이었습니다. 고쳐질 수도 바로잡을 수도 없는 심판과 멸망을 당해야 할 타락한 성읍 예루살렘만 남아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 당할 유다의 운명을 스바냐는 이렇게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유다는 결국 바벨론에 멸망을 당하게 되고 바벨론 포로기를 거쳐 다시 페르시아가 바벨론을 함락하게 됨으로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고 고레스가 이스라엘의 귀환을 허락하게 됨으로 페르시아의 속국으로 종교적 자유를 허락받게 되지만 이후 알렉산더에 의해 페르시아가 멸망하게 되고 유다는 다시 분열된 제국의 통치를 받게 됩니다. 프톨레마이우스와 셀레우코스 왕조를 통해 이스라엘은 헬라의 깊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후 마카비 시대가 시작되고 유대교는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에 의해 핍박과 탄압을 당하게 되고 마카비 혁명으로 하스몬 왕조가 세워지게 됨으로 유대의 독립이 쟁취되는 듯했지만 그 기간은 100년에 지나지 않았고 다시 로마의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을 점령하게 됨으로 유다는 로마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됩니다. 마침내 예루살렘은 로마의 디도스 의해서 완전히 멸망 당하게 되고 결국 전 세계로 디아스포라 되는 이것이 유대의 600년간의 수난의 역사임을 성경과 역사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로마에 의해 결국 완전히 멸망 당하게 될 예루살렘의 미래를 바라보시면서 마태복음 23장 37절에서 이렇게 절규하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게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이 아니하였도다’ 멸망 당할 모든 나라와 민족들을 향한 주님의 마음과 시선이 그때와 결코 다르지 않음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 가운데서도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은 그 가운데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소수의 경건한 자들을 항상 향하고 계신다는 것을 오늘의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