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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리뷰 516 (스바냐 1장 1~6절)

2026.02.27 22:23

hc 조회 수:25

 

하나님의 심판은 패역한 유다와 예루살렘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백성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바알의 남아 있는 것과 그리고 그마림이라는 이름과 그 제사장들 또한 멸절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유다와 모든 예루살렘의 모든 거민 위에 손을 펴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손을 펴서라는 말은 신인동형 동성론적인 표현으로 하나님께서 직접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의미를 강화하기 위해서 손을 펴서라고 묘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그들을 심판하시고자 하시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매우 크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진노의 대상은 그런데 다름 아닌 유대와 예루살렘, 하나님의 선민들이었다는 점을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루살렘,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할 터전으로 주셨습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은 그 땅을 우상숭배로 더럽혔고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바알의 남아 있는 것의 의미는 바알의 남아 있는 흔적, 자취를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여전히 잔존해 있던 바알 숭배자들과 그들의 숭배 행위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바알은 당시 가나안 원주민들의 주 신으로 농경을 관장하며 다산을 주관하는 풍요의 신이었습니다. 이 죄를 하나님께서 무엇보다 악하게 여기시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신앙하고 있다고 스스로 여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 안에 바알을 숭배하며 그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사악함 때문이었습니다. 언약 백성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죄와 패역과 하나님을 향한 이 같은 영적인 간음과 배반은 하나님의 두려운 징계로 이어질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더 많이 받은 자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십니다. 여러분이 남다른 말씀의 깊이와 교리의 정교한 지식의 깨달음을 얻게 되셨다면 그것은 결코 여러분의 자랑일 수 없습니다. 더 많은 책을 읽고 신앙에 대해 더 탁월한 지식을 접했다면 하나님은 그에게 더 특별한 신앙을 드러내는 더 간절한 삶을 원하십니다. 수많은 책을 읽고 개혁 신앙에 대해서 누구보다 탁월한 지식을 가졌지만 그의 인격과 신앙이 드러나는 삶의 모습은 이기적이고 교만하기 이를 데 없으며 세속적이고 오만하며 율법적일 때, 그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징벌은 더 크고 두려울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짐승, 새와 고기, 그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악인들을 모두 심판하시고 다음으로는 그 범위를 더 좁혀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거민들까지 모두 멸절하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두려운 멸망의 심판에서 언약의 백성들, 하나님의 자녀라 해서 결코 빗겨 설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자녀들이 자기들의 구별된 거룩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짝하며 자신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가치들에 집착하여 살아가는 것은 명백한 죄악이며 이는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죄악이 창궐할 때, 그 가운데서 거룩한 순결을 지키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보존될 것이지만 그 죄악의 홍수 속에서 성별 됨을 잃어버린 채로 세상에 휩쓸려 죄 가운데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개인적인 심판, 즉 죽음에 이르게 될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거룩과 순결의 가치를 버리고 세속의 죄와 동화되어 버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취하실 수 있습니다. 더 세상에서 죄를 지으며 살지 못하도록 그를 일찍 불러 드리실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이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 바알의 남아 있는 것을 숭배하고 있다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 명백한 죄가 됨을 알아야 합니다. 그 죄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풍요와 다산의 신 바알, 왜 유다 백성들은 그런 우상을 숭배한 것일까요.. 모두 나를 즐겁게 해 주고 나를 기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우상은 모두 나에게 좋은 것들입니다.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가치들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참 신앙을 버리고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하나님과 겸하여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쉽게 포기하지 못합니다. 그러한 삶 그 자체로 우리가 하나님이 아닌 우리 자신을 우상으로 숭배하고 있음의 증거가 되는 것임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보다, 성도가 함께 모여 말씀을 들으며 기도하는 일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으로 교제하며 교통하는 일보다 성도에게 더 중요한 일은 없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바알의 남아 있는 것들, 아직도 세상에 속한 우리가 좋아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없는지를 살펴보십시오. 이것은 명백히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우상 숭배입니다.

 

유다의 백성들은 요시야의 신앙 개혁으로 많은 우상들을 제거했지만 여전히 오랜 시간 동안 바알을 향한 우상숭배를 남겨두었습니다. 이것이 화근이 되는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 안에 남겨진 죄악의 씨앗들, 여전히 우리 마음에 우상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대상들, 이것은 명백하게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겸하여 섬기는 것은 명백한 우상숭배입니다. 그마림, 케마림은 이방 우상을 숭배하던 제사장들을 가리킵니다. 바알을 숭배하는 일을 맡았던 제사장들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유다 백성들을 우상숭배의 잔재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었던 악의 원흉들을 하나님께서 제거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바알을 숭배하고 바알을 제사하는 제사장들을 추종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신앙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이러한 신앙의 혼합주의입니다. 하나님도 신앙하고 바알도 숭배하는 거짓 믿음입니다. 신자가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악인들을 숭배하고 지지하고 악한 가치와 사상과 이념을 따른다면 그는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아직 자기의 마음 깊은 곳에 버리지 못하는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악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도 다니고 세상의 모든 것들을, 나를 즐겁고 행복하게 해 주는 모든 가치들을 여전히 사랑하는, 이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악에서 떠나십시오. 나의 영혼을 부패하게 하는 모든 것들을 버리십시오.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으로 오해한 나머지 일주일에 단 한 시간만 예배를 하고 온갖 좋은 것을 먹으러 다니고 좋은 곳을 여행 다니면서 아주 자유롭게 하나님을 신앙하고 싶은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성경은 어디에서도 그러한 혼합주의를, 세상과 신앙의 양다리를 참된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기본적으로 자기 생각 안에서 해야 할 도리만을 행하고 그 나머지는 나의 행복과 즐거움을 위해서 적당히 세상에서 타협하고 즐기며 살아가는 삶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닙니다. 그러한 그릇된 신앙에서 돌이켜 회개하지 않을 때, 그와 그의 자녀들까지 하나님의 징계를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다니면서도 성경과 다른 세계관, 경제관, 자녀 교육관, 정치관, 문화관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고자 합니다. 절대로 혼합될 수 없는 진리와 비진리를 같이 혼합해서 추구하면서 하나님을 믿겠다고 합니다. 주일에는 한 시간 교회 가서 예배를 드리지만 그 나머지 시간은 거의 불신자와 방불한 삶을 살아갑니다. 세속적인의 방식으로 살아가면서도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 믿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전혀 거룩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법과 계명을 우습게 여기고 이를 범하는 죄를 지으면서, 자기의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가짜 그리스도인들, 그들이 모두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자들임을 정작 그 자신들은 모를 것입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전부를 소유하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내 생각과 내 마음을 따라 하나님을 잘못 알고 믿는 것은 하나님을 절반만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안 믿는 것입니다. 부디 올바른 믿음을 갖기를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결단하십시오. 이 말씀들이 나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심판의 날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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