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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상 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인간의 공로나 구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약속해 주시는 상은 이 땅에서 받는 보상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에서 받는 상입니다. 이 진리를 주목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세상적인 물질적인 보상에 결코 제한되지 않습니다. 도리어 이 세상에서는 믿음의 대가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 상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자 하지 마십시오. 어떤 상이냐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분명히 여러분에게 상을 약속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클 것이라고 분명하게 우리의 구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소망해야 합니다. 우리는 박해의 시대에 이러한 팔 복의 말씀을 따라서 좁은 길을 걸어간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왜 그들이 그런 길을 걸어갔는지, 어떻게 그 길을 기꺼이 걸어갈 수 있었는지. 적어도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것을 궁금해해야 합니다. 동일한 하나님을 믿으면서 그 시대의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떻게 그렇게 사자처럼 담대할 수 있었는지를 깊이 사유해 보아야 합니다.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의를 위해 박해받는 모든 자들을 구약의 선지자들과 연결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복음으로 인해서 세상에서 핍박과 박해를 당하는 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음을 강조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지만 그들 또한 거의 항상 자칭 하나님의 자녀들이라 하는 자들에게 핍박과 박해를 받았던 것을 상기시키십니다. 신약의 사도들은 어떻습니까.. 바울은 고린도전서 4장 9절에서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라고 고백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참된 진리를 전한 대가였습니다. 이 모든 넘치는 고난은 바로 선지자와 사도들처럼, 그리고 우리의 구주 이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우리가 분명한 복음과 진리의 편에 서서 참된 믿음의 길을 걸어간 증거가 됨을 주께서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왜 예수를 믿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를 무엇을 바라고 기대하며 교회에 나오고 있는 것입니까.. 모든 시대에서 참된 진리를 지키며 복음을 위해 살았던 그리스도인들은 한결같이 핍박과 박해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온 이후에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피 냄새 진동하는 박해와 핍박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오늘의 우리의 믿음은 그 선조들의 피 땀 위에 세워진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어쩌면 지극히 예외적이고 이례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자들일지 모릅니다. 이토록 평안하고 태평하며 부요하고 여유로움 속에서 하나님을 믿고 있었던 자들이 기독교 역사 속에 또 있었을까요.. 핍박과 무관한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어떤 길을 걸었는지를 보십시오. 250년에 걸친 로마의 박해가 끝이 나고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자유를 얻은 기독교는 급격히 세속의 권력과 유착되었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교회가 세속의 권력에 빌붙어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빠르게 세속화되었으며 교회 안에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 이름뿐인 교인들로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박해의 시대에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어버림을 감수하는 일이었지만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에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더 이상 사회적인 불이익과 핍박의 대상자가 됨을 의미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황제의 후원을 받는 교회에 소속됨으로 사회적 지위와 특권을 부여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참된 신앙의 진실성과 관련 없이 교회에 접근하는 다수의 무리들이 교회에 유입되게 된 것입니다. 큰 예배당이 지어졌고 교인의 수는 급격히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풍요와 자유가 넘치는 시대의 교회는 다를까요.. 종교적인 마음의 평안과 위로를 위해, 좋은 사람들과의 교제를 위해 사업적인 관계 때문에 교회를 다니는 이들이 교회 안에 적지 않습니다. 그렇게 교회는 하나의 종교적 위안을 삼고자 하는 이들에게 다양한 종교적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곳으로 전락된 것입니다. 평안과 풍요와 번영과 자유는 과연 교회에게 독일까요 약일까요.. 축복일까요 아니면 재앙일까요.. 무엇이 우리의 신앙의 야성을 잃어버리게 만든 것입니까.. 무엇이 동물원의 사자처럼 이빨은 무디어지고 발톱은 모두 빠져 버리고 시간마다 던져주는 고깃 덩어리를 기다리고 있는 한낱 구경거리에 불과한 초라한 맹수 같은 모습으로 교회를 무너뜨린 것입니까..

 

‘복이 있나니..’ 여덟 가지로 말씀하신 이 ‘복’의 정의를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그것은 이 땅에서 잘되고 형통한 물질적, 현세적 복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복음을 인간의 생각대로 오해했기 때문에 여전히 현세기복주의가 교회 안에서 사라지지 않고 이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복은 하나님 앞에서 복된 상태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지극히 복된 신자의 모습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며 살아가는 바로 그 삶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께서 말씀하신 바로 그 복을 받은 자이십니까.. 오늘도 성경은 우리에게 이것을 질문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복을 받은 자, 행복한 자, 언제나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그 복이 아니라, 예수를 구주로 믿어 영원한 나라를 받은 자들로서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며 나의 영광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 로서의 그 복, 그 복을 누리고 있고 지키고 있는 자들인지를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주께서 무엇을 진정한 복이라고 말씀하셨는지조차도 전혀 모르는 수많은 성도라 이름하는 자들이 오늘도 복을 받기 위해 교회를 나옵니다. 왜 주님께선 내가 다시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라는 어두운 말씀을 하신 것일까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오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왜 주께서는 이 같은 경고를 우리에게 남기신 것일까요..

 

가장 두려운 일은 평생을 교회에 다녔지만 결국 그가 지옥에 가게 되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들었어도 결국 진리를, 복음을 깨닫지 못해서 영원히 버려지게 되는 일입니다. 팔복의 설교를 또 듣고 또 들으십시오. 그리고 나의 믿음이, 이 땅에서의 나의 삶이 오직 이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삶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하십시오. 팔복의 대미는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그리스도의 위대한 선언이셨음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다시 이 진리를 기억하고 그리고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결국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 성경과 교회의 역사를 통해서 드러나고 증명된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의 그것과 동일 것이냐 그렇지 않은 것이냐에 따라서 오늘 우리의 신앙의 진위는 가려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왜 예수를 믿으십니까.. 이 평안의 시대에 무엇을 각오하시고 교회를 다니고 계시는 것입니까.. 우리의 마음속에 주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나라에 대한 흔들림 없는 소망이 자리 잡고 있습니까.. 그 소망과 믿음 때문에 우리는 결코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와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기꺼이 주를 위해 좁은 길을 걸어갔던 믿음의 사람들처럼 그 길을 떠날 채비가 되어 있으십니까.. 이제 팔복의 말씀을 우리는 떠납니다. 그러나 주께서 말씀하신 이 참된 믿음의 대 헌장은 영원히 우리의 영혼에 각인되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지워지거나 희미해지는 순간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잊어버리게 될 것이고 천국 문으로부터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끝까지 이 믿음을 지키고 이 위대한 신앙의 가치를 가슴에 새기며 주께서 말씀하신 참 믿음의 길을 부지런히 오늘도 달려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는 우리를 붙들어 그 믿음의 길을 완주하도록 끝까지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부디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팔복의 신앙으로, 그 믿음의 길로 행하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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