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7 08:04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제 매우 중요한 말씀을 전하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주의 뒤를 좇음에 있어서 반드시 각오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매우 무게 있는 교훈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자도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주께서는 세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첫 번째는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인하다’의 원어적인 의미는 ‘~과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공언하다’, ‘~을 부정하다’, ‘거부하다’라는 뜻인데 이 단어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때 동일하게 사용된 단어로 예수와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상종한 바가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라는 말의 의미는 예수를 좇는 일에 있어서 절대로 고려하거나 연관 지어 생각하거나 절대로 상종하지 말아야 하고 부정해야 할 대상은 바로 다름 아닌 나 자신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길은 나 자신과 나 자신을 위하는 모든 것들과 결별을 의미하는 것임을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 자신의 일을 일체 생각하지 않는 것,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이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여기라는 의미가 바로 자기 부인의 정의입니다. 즉, 우리의 주어진 삶을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되 그 삶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하고 나의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고 우리는 우리가 존재하는 본질적인 목적을 따라 살아가야 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께서 말씀하시는 성도가 걸어가야 할 진정한 길이라면 정말 구원받은 믿음을 가진 자들이 다수일까요.. 단언하건대 오늘도 우리가 지향하며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이 자기 부인의 목적을 따르지 않고 그 반대로 철저하게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자기를 악착같이 사랑하며 그렇게 자신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너무 늦기 전에 내가 정말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내게 속한 모든 것, 나의 자존심, 자기 사랑, 이기심, 자기 혈기와 욕심과 야망과 게으름과 쾌락을 추구하려는 모든 마음들을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여겨야 한다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 부인의 삶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타락하고 부패한 우리에게는 현저히 부족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필사적으로 우리가 구해야 하는 것은 자기 부인을 실현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이고 그 은혜를 얻기 위한 소중한 방편들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빌립보서 3장 7~8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의 고백일 뿐, 나와는 무관하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를 진정으로 발견한 구원받은 성도의 영혼에서 공통적으로 고백 되어야 할 진리가 무엇인지를 이 빌립보서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정확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까지도 예수를 만나고 난 이후에 모두 다 해로 여기게 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 모든 것들을 다 잃어버리고 배설물과 같이 여기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음을 보십시오. 그리스도 외에 모든 이 세상의 가치들을 우리의 몸에서 배출되는 우리가 가장 더럽게 여기는 배설물처럼 여긴다고 바울은 고백했습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내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나에게 매우 유익하게 여겨지던 모든 가치들조차도 예수를 믿고 믿음이 들어오게 되고 진리가 하나둘씩 깨달아지면서부터는 내게 유익하던 모든 것들조차도 때로는 결별하고 뒤돌려 세우는 그것이 진정한 믿음의 가치임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는 일들이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주일마다 골프에 미쳐 있던 사람이 그것을 자연스럽게 끊게 되고 많은 세상의 친구를 가졌던 사람의 인간관계가 모두 정리가 되어 버리고 술과 담배가 없이는 낙이 없었던 사람들이 그것에 의존되었던 마음들이 모두 사라짐으로 수십 년 동안 버리지 못하던 습관마저 다 끊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강요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비교할 수없이 탁월한 가치를 깨닫게 됨으로, 빛이 내 안에 들어오게 됨으로 어두움이 그렇게 물러가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악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예수를 더 사랑하는 일에 방해가 되기에 모두 내 삶에서 떨어져 나가도록 결단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도 끔찍하리만큼 나를 생각하고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을 날마다 지워 버리며 그렇게 매일매일 우리 자신을 부인하는 일에 우리의 삶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지를 돌아 보십시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움켜쥐고 너무나 나 자신을 악착같이 사랑하면서 주님을 좇아가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나 힘겨운 것입니다. 주님의 뒤를 좇아가는 것이 너무도 힘겹고 지치고 포기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포기할 수는 없고 그저 먼발치에서 힘없이 겨우 끌려가다시피 그렇게 종교적 관성만을 겨우 유지할 따름인 형식적인 신앙의 모습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주님을 좇아가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니라 주님과 더불어 이 세상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야망과 욕망을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 그 지식의 고상함에 심취하면 심취할수록 하나 둘 우리 자신에게 속한 것들과 우리는 결별하게 됩니다. 그토록 교만하고 자존심이 강하던 사람이 지극히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그렇게 세상을 좋아하고 오직 자신의 행복과 즐거움만을 추구하던 사람이 점점 더 진리에 매료되고 빠져들게 됩니다. 세상에서 성공에 대한 목표를 따라 정신없이 물질적인 가치만을 좇던 마음을 하나 둘 내려놓게 되고 그것보다 더 본질적인 가치, 영원한 가치, 비 물질적인 영적이고 거룩한 가치들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되고 그것을 사모하게 되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를 부인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쫓아가는 신자에게서 확인되는 믿음의 모습이라고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그리스도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괴로움과 고통과 갈등의 원인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너희는 지금 너희 자신과 매일 결별하고 있느냐, 너희 육신에 속한 모든 것들과 상종하지 않고자 마음을 먹고 뜻을 세우고 나를 쫓고 있느냐, 주님은 그것을 제자들에게 확인해 보도록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나의 것을 철저하게 움켜쥐고 주님의 뒤를 따르는 것은 제자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성경이 말씀하는 구원에 이르는 믿음과 무관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세상에서 무위 도식하며 열심히 교회만 다니면 되는 것일까요..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씀은 염세주의자나 운명론자가 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되 그 목적과 뜻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하고 그 무엇도 이 가치보다 우선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성도는 돌아갈 본향을 언제나 생각하며 마치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에 집착하여 살아가는 삶을 모두 포기해야 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자기 부인은 진리 안에서 더 위대한 가치를 발견하고 깨닫게 될 때 우리가 지금 움켜쥐고 있는 것들을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을 그래서 감추어진 보화로 비유하지 않으셨습니까. 밭에 감추어진 보화가 있다는 것을 알면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그 밭을 사려고 하듯이 구원과 영생의 가치는 바로 그러한 것임을 주께서는 우리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신앙이란 진리 안에서, 예수 안에서 지금 내가 붙들고 있는 것들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더 탁월한 가치들을 매일매일 발견해 나아가는 긴 여정입니다. 이것은 그렇게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문제가 아니라 주께서 택하신 자들 안에서 성령이 반드시 그렇게 되어지도록 우리를 지도하시고 그렇게 이끄시는 필연적인 일들입니다.
예수 안에서 여러분은 진정으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화를 발견하셨습니까.. 그런데 왜 아직 그렇게 머뭇거리고 있고 자기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이 자기 부인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는 사람, 자기와 결별하는 과정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여전히 이기적이고 여전히 다혈질일 것이고 여전히 자기만을 사랑하고 여전히 자존심 하나로 살아가고 여전히 물질을 탐하고 여전히 탐욕적이고 시기하고 질투하며 용서하지 않으며 자기 야망과 물욕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교회 안에 있는 불신자일 뿐입니다. 주님을 뒤따르고 있는 제자라는 이름과는, 세상을 등진 성도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나의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완전히 단절되어 내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다는 절망을 소스라치듯 느낀 자라야 그는 그것이 너무나 두려워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자신과 결벌하고 단절하기 위해 몸부림을 칠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죽도록 미워하지 않는 한 자기 자신과 자신을 사랑하는 일과 계속 상종하게 됩니다. 자기에게 절망하지 않는 한 오직 예수 안에 유일한 희망이 있다는 진리는 영원히 깨닫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인간은 머리를 숙이게 되어있습니다.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허무하며 미천한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진리의 바다에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게 될수록 나 자신이 얼마나 무지하고 어리석은 존재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믿음이 자라고 있는, 영혼이 변화되어가는 모습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보십시오. 성령 안에서 진정으로 자신을 부인하고 있는 모습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습니까.. 타인을 보지 말고 당신 자신을 보십시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겸손해 지지 않은 자신 때문에 울어 보셨습니까.. 그런 자신의 영혼을 오늘도 진정으로 부끄러워하고 있습니까.. 여전히 자신이 부인되기는커녕 철저하게 자신을 움켜쥐고 자신을 사랑하는 일을 포기하지 못한 모습들이 때로 어떤 거친 언어와 행동과 표정으로 드러나는지를 스스로 알지 못한다면 그가 바로 어린아이 같은 미숙한 그리스도인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부디 나 자신을 깨뜨려 주시고 온전히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 있도록 나를 변화시켜 주시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자기 부인의 과업을 이루어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