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그들이 집으로 들어왔을 때 예수께서는 갈릴리를 지나 가버나움으로 가는 여정 가운데 제자들이 서로 토론한 내용에 대해서 주목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참된 제자도에 대해서 계속해서 그들을 가르쳐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길을 걸으며 전혀 다른 주제를 가지고 그들끼리 열띤 논쟁을 하고 있었던 것을 주님께서는 보셨습니다. 그들이 무슨 말을 나누는지 다 듣고 계셨던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오늘도 여러분이 교회에서 나누는 모든 대화를 듣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가정에서 자녀와 나누는 모든 대화를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 모든 대화에 믿음이 들어 있는지, 주께서 기뻐하시는 복음의 주제들이 담겨 있는지를 말없이 듣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직장에서 학교에서 사람들과 나누는 모든 대화의 내용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 모든 우리의 언어로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신앙의 고백이 모두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토론한 것이라고 번역된 원문의 의미는 논쟁하다, 따지다라는 뜻으로 단순히 토론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들과 동행하고 계시는 가운데서도 그들은 서로 격렬하게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단어가 미완료 시제를 취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그들의 논쟁은 잠시 동안만이 아닌 길을 걸어가는 내내 계속해서 지속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께서는 지금 참된 믿음과 구원의 길을, 참복음의 의미와 주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가치를 논하고 계셨는데 제자들의 마음은 전혀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노중에서 무슨 주제로 논쟁을 했는지를 물으셨지만 제자들은 누구도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들이 생각해 보아도 추악할 정도로 서로 누가 더 중요한 자리에 앉을 것인가를 두고 말다툼을 벌였기 때문이고 주님의 질문에 그들은 자기들이 한 행동을 돌아보며 깊이 수치심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가 크냐라는 의미는 누가 가장 크냐, 가장 높으냐, 가장 중요하냐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병행을 이루고 있는 마태복음에 따르면 그들이 벌인 논쟁의 주제는 구체적으로 천국에서 누가 큰가하는 문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에서 차지할 자신들의 지위의 문제를 두고 서로 높은 자리, 중요한 자리에 앉기를 갈망하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로 보아 제자들은 이 땅에서도 그리고 아직 정확한 이해와 믿음과 개념도 없었지만 장차 그들이 거하게 될 하늘나라에서도 그들은 더 높은 자리, 더 영광스럽고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일에만 과 몰입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도, 장차 도래할 나라에서도 제자들의 관심은 오직 그들 자신이 으뜸이 되는 것에 있었습니다. 무엇이든 다 최고가 되고자 하는 생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이 열두 제자의 모습을 보십시오. 복음을,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적을 잘못 이해하게 될 때 언제나 그 신앙은 현실적인 보상과 그리고 상급, 특권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제자들의 모습 속에서 깨닫게 됩니다. 복음의 참된 의미를 온전히 깨닫지 못한 아직 무지한 생각 속에는 신앙의 대가로 언제나 우리가 복을 받고 최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존재하게 됩니다.

 

구원 그 자체의 축복과 그 놀라운 은총의 의미를 날마다 더 깊이 이해하고 발견해 나아가지 못하게 되면 신앙은 자연적으로 이 땅에서의 물질적인 보상으로 흘러가기 마련입니다. 죄인이 구원을 받은 것만으로도, 영생을 얻게 된 사실만으로도 감격스럽고 기쁜 일임에도 우리는 자꾸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바라고 기대하고 욕심을 내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과 마음이 아직 우리 안에 존재한다면 과연 이러한 마음이 복음에 합당한 것인지를 돌아 보셔야 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복음을 올바로 이해하는 일에 이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12명의 제자들의 주 관심은 서로 자신이 일등이 되어야 하나는 점이었습니다. 자기들이 더 높은 자리에, 더 중요한 자리에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에 그들은 모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10장에 35절 이하에서도 보면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실 때 자신들을 좌우에 앉게 해 달라고 청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님께서는 이때도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 주님이 오신 목적은 섬김을 받고자 하심이 아니라 섬기기 위함이며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이 대속물로 주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밝히셨습니다. 제자들은 좀처럼 주님과 함께 영광을 차지할 야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이미 오병이어의 현장에서도 그리고 모든 이적과 기적이 일어난 장소에서 조금씩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그들의 마음은 부풀어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어릴 때부터 지켜 보아온 유대주의 종교지도자들의 위상은 그들로 하여금 그런 헛된 망상을 키우기에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어리석은 그들의 생각을 깨뜨리시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셨고 경계시키셨지만 무지하고 어리석은 제자들의 초점은 언제나 자신들이 받을 이 땅에서의 영광으로부터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결국 자신들의 스승이 결국 유대주의 종교지도자들에 의해서 결박을 당하고 끌려가는 모습을 보자 그들이 품어 왔던 희망이 산산조각남을 보면서 그들은 모두 돌아서서 예수를 배신한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예수의 제자들의 어리석음을 구경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신앙의 목적과 그 이유가 세상의 물질적인 가치에 고정될 경우, 즉 믿음의 그 결과로서의 번영과 안정과 축복에만 몰입하게 된다면 우리 또한 그러한 우리의 기대가 사라지고 믿음의 결과가 이 세상에서의 불이익과 박해와 핍박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될 때 결국 믿음을 버리는 자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944 주일 설교 리뷰 318 (마가복음 9장 38~50절) hc 2025.05.02 19
1943 주일 설교 리뷰 317 (마가복음 9장 38~50절) hc 2025.05.01 22
1942 주일 설교 리뷰 316 (마가복음 9장 38~50절) hc 2025.04.30 47
1941 주일 설교 리뷰 315 (마가복음 9장 38~50절) hc 2025.04.29 45
1940 주일 설교 리뷰 314 (마가복음 9장 38~50절) hc 2025.04.28 66
1939 주일 설교 리뷰 313 (마가복음 9장 30~37절) hc 2025.04.25 111
» 주일 설교 리뷰 312 (마가복음 9장 30~37절) hc 2025.04.24 140
1937 주일 설교 리뷰 311 (마가복음 9장 30~37절) hc 2025.04.23 116
1936 주일 설교 리뷰 310 (마가복음 9장 30~37절) hc 2025.04.22 68
1935 주일 설교 리뷰 309 (마가복음 9장 30~37절) hc 2025.04.21 65
1934 주일 설교 리뷰 308 (마가복음 9장 14~29절) hc 2025.04.18 149
1933 주일 설교 리뷰 307 (마가복음 9장 14~29절) hc 2025.04.17 91
1932 주일 설교 리뷰 306 (마가복음 9장 14~29절) hc 2025.04.16 93
1931 주일 설교 리뷰 305 (마가복음 9장 14~29절) hc 2025.04.15 93
1930 주일 설교 리뷰 304 (마가복음 9장 14~29절) hc 2025.04.14 100
1929 잠언 강해 설교 리뷰 303 (잠언 19장 12~14절) hc 2025.04.12 104
1928 잠언 강해 설교 리뷰 302 (잠언 19장 12~14절) hc 2025.04.10 98
1927 주일 설교 리뷰 301 (마가복음 9장 9~13절) hc 2025.04.09 107
1926 주일 설교 리뷰 300 (마가복음 9장 9~13절) hc 2025.04.08 89
1925 주일 설교 리뷰 299 (마가복음 9장 9~13절) hc 2025.04.07 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