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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이미 모세의 율법에 모든 내용을 알고 계셨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 모세가 무엇을 명령했는지를 되물어 보신 것은 그들이 모세의 율법의 내용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지적하고 교정하기 위함이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이혼을 합법화하기 위한 근거로 모세가 이혼 증서를 써 주어 아내를 내어 좇는 것을 허락했다고 당당하게 답변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모세의 율법이란 신명기 24 1~4절을 염두 한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아내에게 수치 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면 이혼 증서를 써 주고 이혼을 할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러면 여기서 수치 되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샴마이 학파는 이 수치 되는 일을 음행을 가리킨다고 보았습니다. 반면에 힐렐 학파는 더 자유스럽게 해석해서 남편이 좋아하지 않는 점을 아내에게서 발견하게 되면 이것은 이혼의 합당한 사유가 된다고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아내가 음식을 못해도 이혼의 사유가 되고 외모가 이쁘지 않아도 이혼의 사유가 되며 남편에게 말대꾸를 하게 되면 이 또한 이혼의 사유로 받아들여졌던 것입니다.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자유분방한 이 힐렐 학파를 더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인간의 편에서 인간의 모든 타락하고 욕구와 부패한 욕망을 지지하고 허용해 주고 이를 묵인해 주는 쪽을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더 지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서 유대인 여성들은 아내로서의 권리를 전혀 보호받지 못한 채 남편들에 의해서 아주 쉽게 이혼을 당하는 일들이 빈번했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이렇게 버려지는 여인들, 아내들을 보호하기 위한 일환으로, 이러한 폐단을 고치기 위한 목적으로 이혼법을 명한 것이었고 여성이 이렇게 부당하게 이혼을 당하는 피해로부터 벗어나 새롭게 재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기 위해서 모세의 이혼 증서는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모세가 말한 그 뜻을 왜곡해서 이것이 이혼의 합법성을 의미하는 근거라 주장하며 그 타당성의 여부를 예수께 질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설명드린 바대로 모세의 율법은 이혼을 합법화하는 말씀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이혼을 허락하고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더 깊이 살피면 오히려 이혼을 더욱 어렵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말 이혼이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이혼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법이었던 것입니다. 불가피한 일로 아내가 이혼을 당하더라도 이혼 증서를 반드시 써 주게 하여 다른 불합리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미연에 그것을 방지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부당하게 피해를 당할 아내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이혼의 당위성을 인정하기 위함이 아니라 악한 의도로 아내를 버리는 일을 막아 문란함을 방지하고자 한 뜻이 담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십시오. 당시 바리새인들이나 지금의 그리스도인들이나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악용해서 자기들의 죄를 합리화하고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게 하는 사악한 모습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기생하고 있는 사악한 일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타락한 교회들이 성경을 토대로 얼마나 인본주의적인 사악한 논리를 만들어 진리를 변질시키고 왜곡시켜 왔는지를 보십시오. 복음을 변질시키고 예배의 거룩한 형식을 파괴하고 성례를 더럽히며 권징을 무시하고 직분을 매직하는 등등의 이러한 부패한 일들은 여전히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죄악된 일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세의 율법이 이혼을 명령한 것은 바로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이라고 일갈하셨습니다. ‘완악함’으로 번역된 원문의 뜻은 고집 센, 완강한, 다루기 어려운, 말을 안 듣는, 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그 진의를 왜곡해서 언제나 인간의 죄악된 생각과 고집대로 불순종하는 죄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은 함부로 아내를 버리지 말라는 것이 골자임에도 도리어 그 율법을 근거로 마음대로 아내를 너무도 쉽게 버리는 일의 근거로 삼은 유대인들의 이 악랄함을 보십시오. 이들이 정말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을 두려워하는 자들이었을까요.. 주님께서는 이것을 꾸짖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나 왜곡하고 아전인수 격으로 합리화해서 우리의 편의대로 하나님을 신앙하고자 하는 우리의 죄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대로 합리화해서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기만하며 불순종하는 것이 어떻게 죄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은 하나님을 믿어도 이렇게 자기들의 방식대로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복종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 마음대로 하나님을 믿었기에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제외되었던 것입니다. 자기들 마음대로 안식일을 지키고 하나님과 더불어 우상을 숭배하고 모든 율법을 왜곡해서 자기들의 욕망과 욕구를 충족시켰던 이것이 유대주의 신앙의 민낯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을 과연 올바로 섬기고 있습니까.. 유대주의의 어리석은 신앙을 반복하지 마십시오. 성경은 그들의 죄악된 모습을 통해서 분명히 이 진리를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모세는 결코 이혼을 허락하고 장려한 것이 아님을 강변하셨습니다. 모세의 법은 남편들의 악랄함에 대한 억울한 아내들의 보호 차원이었지 그것은 이혼을 합법화하는 명령서가 아님을 밝히시면서 그 근거로 창세기의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창세기 1 27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주님은 창조 시로부터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의 의미는 한 남자와 한 여자, 이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결혼이라는 의미입니다. 창세기의 남자와 여자는 무관사로 되어 있습니다. , 이것은 둘이 하나이며 한 쌍이라는 뜻입니다. 즉 남자와 여자가 한 쌍을 이루어 하나가 되도록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처음부터 남자와 여자, 남편과 아내를 창조하셨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한 남자와 여러 여자들도 아니고 여러 남자와 한 여자도 아닌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하나가 되어 가정을 이룸이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이며 뜻임을 밝히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율법이 말하고 있는 이혼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며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참된 혼인의 제도와 그 결혼의 구성 요건에 반한 것이 됨을 주님은 지적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원론적으로 한 남자는 한 여자와만, 한 여자는 한 남자와만 평생 함께 하는 것이 혼인의 참된 의미라고 못 박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 최초로 사람을 지으실 때 아담 외에 어떤 남자도 만들지 않으셨고 하와 외에 어떤 다른 여자도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만 존재했습니다. 한 여자 외에 다른 여자와 혼인할 수 없고 한 남자 외에 다른 남자와 혼인할 수 없음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결혼의 제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당한 이유로 아내들이 버려지는 일이 일어나자 하나님께서는 아내들을 보호하고 그녀들에게 새로운 삶을 주기 위해서 이혼을 허락하신 것이고 그렇게 이혼한 여인을 두 번 다시 그녀를 버린 남편이 취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막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슬림들처럼 일부다처는 결코 성경적이지 않은 결혼의 제도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의 이스라엘 족장들은 일부다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허락하신 이유는 역시 마찬가지로 인간의 완악함 때문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일부일처의 결혼과 가정을 세우셨지만 인간이 이것을 어긴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묵인하셨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에 대해서 언약 자손의 번성을 위해 일시적으로 허용하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일부다처의 결과는 성경을 통해서 보듯이 결코 행복이 아니라 불행이었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다윗, 야곱, 솔로몬 그 누구도 이 같은 일부다처의 가정으로 인해 행복하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서 더 추가적으로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찌라 이러 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라라고 말씀하시며 이것이 바로 결혼의 의미라고, 부부의 정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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