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6 21:34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올라 오시자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신에게 임하신 것을 보게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같은 장면을 기록하고 있는 누가복음 3장 21절은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 쌔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라고 기록함으로 강에서 나오신 주님께서 기도를 하고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례를 받으신 주님은 그냥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를 하셨습니다. 바로 그때 하늘이 열렸다고 했습니다. 지금 요한과 주님의 대화는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그리스도에게 대하는 태도는 유대주의자들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나사렛에서 온 젊은이가 누구이길래 요한이 저런 지극히 겸손한 모습을 보이는지를 궁금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이 그분에게 세례를 베풀자 일어나게 된 모습을 모든 이들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을 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께서 세례를 받으신 직후에 기도하시자 하늘이 열렸다고 했습니다. 놀라운 이적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죄로 인해서 굳게 닫혔던 하늘이 다시 열렸습니다. 구원의 새 시대가 도래한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단절되었던 하나님과 관계가 다시 회복된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시는 장면입니다.
이어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을 경험하며 성령님과 친밀해지는 것은 기도뿐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주님은 겸손히 세례를 받으셨고 그리고 하나님께 이제 메시야로서의 사명을 시작하시면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 중에 성령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께 임하셨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성자 예수께서는 성령과 동행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마침내 메시야로서의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성령께서는 이 위대한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역을 돕기 위해 보이는 방식으로 성자에게 임재하심을 성경은 나타내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비둘기 같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원문은 ‘비둘기처럼’, 혹은 ‘비둘기 같은 모습으로’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인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비둘기 같은 형상으로 가시적으로 그리스도 위에 임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3절에서는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불의 혀 모양처럼 성령이 임한 것이 가시적으로 보였다는 의미입니다.
비둘기 같은 형상의 성령이 성자에게 임하심으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는 나사렛에서 자라 갈릴리에 온 평범한 한 청년이 아니라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메시야 이신 것을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공적으로 드러내신 의미가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이제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로서의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야의 사역을 이렇게 시작하고 계신다는 것을 공적으로 선포하고 있었습니다. 성령이 그렇게 그리스도에게 임하셨고 이어지는 장면을 보십시오. ‘하늘로서 소리’ 란 바로 성부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 잘난 유대주의자들은 한 번도 들어 본 일이 없는 하나님의 지극히 지엄하심 음성이 하늘로부터 들려왔습니다. 이 엄숙한 장면을 요단강가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지켜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을 향해서 오늘 역사 앞에 모습을 드러내신 이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직접 밝히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어떻게 소개하시는지를 보십시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께 기름 부으심으로 그분이 메시야 이심을 공표하셨습니다. 이어 성부 하나님께서 직접 아들을 이 세상에 공개적으로 알리시는 이 장면을 보십시오.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이 말씀에는 구약의 두 구절의 말씀이 그 배경이 됩니다. 첫 번째는 시편 2편 7절에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라는 말씀과 두 번째는 이사야 42장 1절에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이 음성은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 모든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구원할 자이심 공인하시는 선포입니다. 성경은 어디에도 ‘삼위일체’라는 말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알게 하는 말씀들이 창세기에서부터 기록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 16절에서는 분명히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기록함으로 ‘우리’라는 복수대명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에서는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라고 기록하고 있고 고린도후서 13장 13절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라고 기록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한 구절 속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을 기록함으로써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하나님 되심을 우리에게 계시하고 있습니다.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위대한 구속의 계획 역시 이 삼위의 하나님께서 모두 계획하시고 이루시고 이를 성취해 나아가고 계십니다.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이제 새로운 시대를 여시는, 구약의 율법의 흑암의 시대를 걷어 내시고 믿음으로 인해 의롭다 칭함을 입게 되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는 놀라운 구원의 길을 여시는 이 시점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렇게 그 존재하심을 이 세상 가운데 분명하게 자취를 남기시며 역사의 무대 위에 출현하신 것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이 위대한 대속의 사역을 이루시기 위해 메시야의 사명을 감당하며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시는 아들을 기쁘시게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을 향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정확한 번역은 ‘이는 나의 사랑받는 아들이다.’입니다. 너는 내 아들이다, 너는 나의 지극한 사랑을 받는 오직 하나뿐인 나의 아들이다. 성부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해서 표현하시는 이 말씀을 보십시오. 부모가 그 자녀를 사랑하는데 이유가 있습니까.. 내 자식이기 때문에, 이 하늘 아래 있는 나의 유일한 자식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의 분신이고 내게서 비롯된 존재이기에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하나님께서는 성자 하나님을 사랑하십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의 아들, 독생 성자이시기에 그 아들은 아버지에게 지극한 사랑을 받으시는 존재이십니다.
개혁교회의 신조들 속에서 ‘성자는 성부에게서 영원히 나셨다’라고 표현합니다. 영원한 출생 이란 성부에게서 태어났다는 개념보다는 성부가 영원부터 성자의 근원이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성부가 먼저나 성자가 먼저냐라는 시간의 의미라기보다는 영원한 관계라고 보는 것입니다.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라고 시편에서 말씀합니다. 영원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결코 떨어질 수 없고 변개될 수 없는 관계를 강조한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과 그 자녀된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나에게서 나온 존재, 비롯된 존재 이기에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낳은 존재가 바로 당신입니다.
흘리신 피와 찢기어진 살, 그 깊은 신음 속에서 주님은 당신을 낳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을, 바로 당신을 사랑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한순간도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신 적이 없습니다. 인간은 조건을 따라서 사랑할지 말지를 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는 사랑이십니다. 만세전부터 우리를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셨기에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24절에서 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 구절에서 주께서는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아들을 향하신 사랑도, 예수 그리스도의 우리를 향하신 사랑도 창세 전에 이미 그렇게 하시기로 작정되어진 사랑입니다.
때로 우리의 삶과 인생이 너무 힘들고 우리의 하는 일들이 어려움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의심하지 마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고 당신의 계획을 막으셨고 지금 아픔과 좌절과 절망할 일을 주셨다면 그 또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과 뜻이 있기 때문임을 아셔야 합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뿐인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오늘도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고난과 실패와 좌절과 슬픔을 사용하실 수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한순간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시는 때가 없으신 분 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너무 인생이 힘들고 지칠 때 주님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견디기 힘든 슬픔과 고통이 몰려올 때 간절히 주께 간구하십시오. 주님께서도 모든 고난을 당하셨으므로 오늘도 고난당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한없이 긍휼히 여겨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반드시 그 하나님의 풍성하신 사랑이 여러분에게 임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분은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잊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