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심령이 가난해짐과 그리고 애통함이 우리의 영혼 가운데 깊이 자리 잡게 될 때, 우리에게 이어서 어떤 근본적인 영혼의 변화가 뒤따라 일어나기 시작하는가 하면 바로 우리가 온유한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온유하다’라고 번역된 단어는가난한’, ‘비천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온유한 사람이란 곤고와 슬픔 속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는 자를 가리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과 주권과 섭리에 맡긴 채 그 마음이 가난하고 지극히 낮아짐으로 인해 그 영혼에 깃들게 되는 온유하고 평화로운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진정한 온유함이란 자신 안에 아무런 자랑할 것이 없음을 알아 지극히 겸비한 마음으로 외부로부터의 어떤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내 자존심이 상처를 받기 때문에 발끈하게 되는 것입니다. 분노가 일어나고 화가 통제되지 않는 것입니다. 가난한 심령으로 자신에게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음을 깊이 자인 한 사람은, 자신이 진정으로 죄인임을 깨닫고 발견한 사람은 분노할 이유가 없습니다. 죄인에게 죄인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자신이 죄인임을 깊이 깨달은 사람이 무엇 때문에 기분이 나쁘고 감정이 강하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으로 가난하고 애통한 심령을 가졌다는 증거는 그가 어떤 말이나, 어떤 상황에서도 이제 그 마음에 온유함을 추구하고 그것을 지키고자 함으로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온유함 이란 비단 성격이 조용하고 유순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온유함 이란 그의 마음에 성령이 임하심으로 깊이 그 내면과 영혼의 죄악된 성품들이 제거되고 기경된 상태로 하나님 앞에서 지극히 자신을 낮춤으로 인해서 일어나게 된 마음의 상태와 모습을 가리킵니다.

 

자신을 고집하고 주장하려는 모든 완고한 마음이 소멸되고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고 순종하고자 하는 지극히 평온한 마음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렇게 자신과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게 됨으로 인해서 어떤 외부적인 부당함이나 억울함에 대해서, 자존심이 상하거나 마음에 상처를 받는 일에 대해서 조차도 둔감해지고 그것이 그다지 예민하고 중요한 문제로 여겨지지 않게 되는, 분노할 능력이 있지만 그 분노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가리키는 것이 온유함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잠언 16 32절은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 보다 나으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마음 다스림은 결코 사람의 의지와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이 충만하게 한 영혼 가운데 부어질 때 그 영혼과 마음이 어떻게 우리를 지배하고 제어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마음에 일어나는 분노까지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은 바로 은혜 안에 있는 마음에서 비롯됨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은혜가 충만히 부어지면 우리의 영혼의 모든 독소가 빠져나가게 됩니다. 화를 낼 이유가 사라지게 되고 모든 것이 용납되고 용인되고 이해되는 마음의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가 지배하고 있는 마음에는 분노가 쉬 자리 잡을 수 없습니다. 분노는 모두 자기 사랑에서 비롯되는 감정인데 자기가 해체되고 자신이 이제는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정서가 은혜받은 성도 안에 깊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온유함 이란 무기력하고 비굴하여 뒤로 물러나 침묵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와 하나님의 통치를 믿고 신뢰하기에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마음입니다.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기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만을 응시함에 이른 고요한 마음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자신에 대해서 소개하신 말씀이 마태복음 11 29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성품을 친히 온유하고 겸손하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유와 겸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성품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고자 할 때, 그가 그리스도 예수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감출 수 없는 증거는 바로 온유하고 겸손함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하면 온유하지도 않고 겸손하지도 않은 자들은 그리스도와 무관한 자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온유의 본을 보이신 분이십니다. 주님은 온유하시기에 결국 유대인들의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의 속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급진적인 방법으로 격렬하게 로마에 저항했지만 번번이 이러한 저항들은 실패했고 더 강력한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가이사는 헤롯 가문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통치하게 했고 빌라도를 총독으로 파견했습니다. 로마의 총독의 지배하에 헤롯의 왕가는 꼭두각시에 불과했고 팔레스타인 전역이 로마의 지배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암울함 속에서 내면적으로 강항 저항의식을 키우면서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해방시킬 메시야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꿈꾸는 메시야는 당연히 싸움에 능한 장군과 같이 기개가 강하고 무용에 능한 강력한 메시였습니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며 메시야로의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실 때 유대인들은 한껏 고무되었습니다. 이런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면 기필코 로마제국을 물리치고 우리에게 독립과 자유를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강력한 군사적 강국이 되게 해서 중동을 지배하는 패권국가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그들은 믿었습니다.

 

모든 유대인들은 그렇게 로마의 전복을 꿈꾸며 위대한 이스라엘로 거듭나게 될 날을 메시야를 통해서 꿈꾸고 희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들이 간절히 기대한 바들에 대해서 전혀 이를 행동에 옮기실 생각이 없으셨습니다. 요한복음 8 36절에서 주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선언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꿈꾸는 바를 실현하시기 위해 오신 메시야가 아니셨음을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고, 시간이 지날수록에 그것이 확실해지자 모든 유대인들의 기대는 분노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주께서 그토록 그들에게 증오와 미움이 되신 것은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야, 즉 로마가 이름만 들어도 오금이 저릴 강력한 정복자, 위대한 왕이며 장군으로서의 바로 그 메시야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대해서 철저하게 무지했던 유대인들은 오직 그들의 방법으로 그들이 꿈꾸는 미래가 그들에게 도래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온유한 메시야, 고난 당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메시야, 자기들의 죄를 위해서 자신을 가장 나약한 모습으로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시는, 그들은 결코 그런 메시야를 원한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는 이 땅에서 어떤 파괴적인 모습이나 폭력적인 행위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않으셨습니다. 혁명을 기대하는 자들에게 그리스도, 메시야의 모습은 유약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로마의 병사들을 단칼에 수십명을 베어 무너뜨려야 할 그들의 메시야가 도리어 로마의 병사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그들의 채찍에 온몸이 찢기어지고 상하셔야 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쓰는 깃이 달린 멋진 투구 대신 가시 면류관을 쓰신 예수님의 그 비참한 모습은 그 어떤 유대인들도 기대하거나 예상하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그 결과 모든 유대인들은 그 온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라고 외치는 폭도들로 돌변하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은 자는 결코 메시야가 아니라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에 불과할 뿐이라고 지금까지 유대인들은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온유한 메시야보다 강력한 메시야를 원한 것일까요.. 모두 자기 자신들을 위해서입니다. 죄인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과 계획과 목적 안에서 바라보는 메시야가 아니라 자기들에게 독립과 자유와 부강함을 가져다줄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야를 꿈꾸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메시야 이셨던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로마를 무찌르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셨습니다. 그분은 죄인들의 발을 씻기기 위해 오신 분이십니다. 무력으로 힘으로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하셨다면 주님께서는 불꽃같으신 모습으로 하늘의 모든 천군 천사들을 이끌고 이 땅으로 오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들레헴 말 구유에 너무도 연약한 갓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동네에서 자라셨습니다. 흠모할 풍채나 외모가 아닌 지극히 평범하신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세상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어도 그 힘을 드러내지 않으시고 한 인간으로 오셔서 조용히 온유하고 겸손하심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가셨고 그 온유하심 속에서 결국 모든 사명을 이루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되어질 것임을 알고 계신 주님께서는 어떤 일도 서두르시거나 혹은 어떤 일이 지연된다고 해서 화를 내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의 어리석은 모습과 그들의 어린아이 같은 질문과 그들의 무능함에 대해서도 주님은 분노하시거나 그들을 다그치신 법이 없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제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의 모습을 말씀하시면서 그들의 모든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고 계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천국은 스스로 의롭게 여기는 자, 자기를 자랑하는 자, 교만하고 스스로 강하다 여기는 자, 오만한 자, 자신만만한 자, 지극히 종교적인 외형을 가진 자가 결코 들어갈 수 없고 심령이 가난하며 비통해 하며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며 긍휼히 여기며 청결하며 화평을 도모하며 박해를 기꺼이 감당하며 주를 위해 욕을 먹으며 비방을 받되 보복하지 않는 자가 바로 그 나라의 상속자가 될 것임을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왜 점점 그리스도인들이 과격해지고 있는 것일까요.. 왜 성경의 진리의 가치보다 이념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교회는 지금 이 시대에 어떤 정치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 옳다고 흥분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입니까.. 역사가 누구의 뜻대로 흘러가야 합니까. 우리의 생각과 뜻입니다 아니면 이 모든 역사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이십니까.. 자기의 영혼의 상태를 긴밀하게 살피는 것은 뒤로하고 모두가 정치적 투쟁의 자리에 뛰쳐나가는 것이 옳은 일일까요.. 자신이 믿는 신념을 진리에 투영하고 교회를 통해서 그것이 성취되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 과연 주께서 원하시는 바일까요..

 

교회는 죄악에 대해서 침묵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죄를 죄라 말하고 성경에 벗어난 모든 악에 대해서 단호히 이를 배격하며 하나님을 예배할 자유를 침해하거나 반 성격적인 법과 제도를 반대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과격한 방법으로 세상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 목적인 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온유하고 겸손하게 오직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길을 뒤따르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세상에서 살되 세상에 섞이지 않으며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고 바라보는 순례자들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며 오직 믿음의 길을 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신념과 사상을 기독교라는 종교에 투영하니까 여기서 대립과 분노와 갈등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가운데서도 온유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주일 설교 리뷰 645 (마태복음 5장 5절) new hc 2026.09.08 8
2270 주일 설교 리뷰 644 (마태복음 5장 4절) hc 2026.09.04 72
2269 주일 설교 리뷰 643 (마태복음 5장 4절) hc 2026.09.03 92
2268 주일 설교 리뷰 642 (마태복음 5장 4절) hc 2026.09.02 94
2267 주일 설교 리뷰 641 (마태복음 5장 4절) hc 2026.09.01 108
2266 주일 설교 리뷰 640 (마태복음 5장 4절) hc 2026.08.31 103
2265 주일 설교 리뷰 639 (마태복음 5장 1~3절) hc 2026.08.29 101
2264 주일 설교 리뷰 638 (마태복음 5장 1~3절) hc 2026.08.28 91
2263 주일 설교 리뷰 637 (마태복음 5장 1~3절) hc 2026.08.27 98
2262 주일 설교 리뷰 636 (마태복음 5장 1~3절) hc 2026.08.26 106
2261 주일 설교 리뷰 635 (마태복음 5장 1~3절) hc 2026.08.25 155
2260 주일 설교 리뷰 634 (마태복음 5장 1~3절) hc 2026.08.24 119
2259 주일 설교 리뷰 633 (마태복음 4장 18~25절) hc 2026.08.22 125
2258 주일 설교 리뷰 632 (마태복음 4장 18~25절) hc 2026.08.21 123
2257 주일 설교 리뷰 631 (마태복음 4장 18~25절) hc 2026.08.20 128
2256 주일 설교 리뷰 630 (마태복음 4장 18~25절) hc 2026.08.19 122
2255 주일 설교 리뷰 629 (마태복음 4장 18~25절) hc 2026.08.18 122
2254 주일 설교 리뷰 628 (마태복음 4장 18~25절) hc 2026.08.17 135
2253 주일 설교 리뷰 627 (마태복음 4장 12~17절) hc 2026.08.13 133
2252 주일 설교 리뷰 626 (마태복음 4장 12~17절) hc 2026.08.12 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