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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먹고 물을 마시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제공해 주심으로 우리의 생명과 생존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아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살아가야 함을 망각하지 않게 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출애굽 광야에서 물과 만나를 제공해 주신 분이 누구이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매일의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께 구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향해 절대 의존적 존재로 살아가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과 식량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로 살아있는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기본적으로 먹고 마시는 1차적 욕구가 해결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여기며 오늘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음식을 먹고 신선한 물을 마시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태어난 우리의 선조들 가운데서는 잘 먹지도 잘 입지도 못한 시대에 살았던 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미디어를 통해서 여전히 기아와 기근에 허덕이는 검은 대륙의 고통 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우리는 간접적으로 대면할 뿐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 끼니를 굶어 보지 못한 사람들은 배고픔의 고통을 결코 알 수 없고 마실 물이 없어 타는 목마름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갈증의 고통을 결코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팔복을 말씀하시면서 바로 그 타는 목마름과 간절한 배고픔을 절절히 경험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 자에게 진정한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주님이 말씀하신 주리고 목마름은 육체를 위한, 생존을 위한 그것을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 이상의 영적인 중요한 가치에 대해서 간절한 주림과 목마름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에게 진정한 복이 있다고 주님은 힘주어 말씀하신 것입니다. 행복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없고 황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말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긍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황금의 가치, 다다익선을 추구하는 삶을 이 땅에서 살아갑니다. 행복의 가치는 부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말을 가난한 이들의 자기 합리화와 변명일 뿐이라고 치부합니다. 주리고 배고프고 궁핍한 삶은 행복과 동떨어진 삶으로 여겨지는 이 세상에서 이제 예수께서는 또다시 우리에게 무엇이 진정한 복 인지에 관해서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을 지나가는 동안에 진정으로 목 말라하고 배고파 해야 할 그것이 무언인지를 교훈하셨습니다.

 

“그 의를 굶주리고 목말라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 왜냐하면 바로 그들이 만족할 만큼 채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을 직역하면 이런 의미가 됩니다. ‘주리고 목마른에서굶주리다’, ‘배고파 하다라는 뜻의 단어와목말라하다라는 의미의 원문은 모두 현재 능동 분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의미는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른 상태가 지속적인 상태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배가 고프면 허겁지겁 음식을 먹습니다. 그리고 포만감이 몰려오면 사람들은 만족해합니다. 그리고 잠시 전에 자기가 많이 배가 고팠다는 사실을 이내 잊어버립니다. 지금은 배가 부르기 때문입니다. 갈증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원한 물 한 컵이 그리울 때까지만 간절합니다. 원하는 만큼 물을 마시고 나면 목이 타 들어가던 때를 쉬 잊어버리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간절한 배고픔과 목마름처럼 신자에게 간절히 여겨져야 할 절대적인 무엇인가가 있다고 주님은 제자들에게,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굶주림과 목마름은 단순한 일반적인 욕구가 아닙니다. 이것은 생존에 필요한 필수적인 욕구입니다. 물과 음식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다지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없으면 목숨을 연명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물과 식량만큼이나 신자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운데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간절하고 절박해야 할 것이 있다고 주님은 강조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물과 음식이 아니면 무엇에 대해서 이토록 간절한 마음을 우리가 유지하고 이를 지속하며 살아가야 할지를 주님은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에 대해서입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의는 일반적인 의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문에는 이라는 단어 앞에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 ‘그 의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의는 구원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절대 의를 가리킵니다.

 

주께서 하신 말씀의 깊은 의미는 한때, 잠시나마 이 의를 갈망하는 자가 아니라 계속해서 이 세상을 지나가는 동안에 줄 곳 의를 갈망하며 그것이 없이는 살 수 없을 것처럼 갈구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씀이라는 것을 유념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먹을 음식과 물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이 간절하고 절박하게 그것을 구하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을 지나가는 가운데 그만큼이나 간절히 구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바로 그것을 갈망하고 갈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도록 우리를 지도하실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로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시겠다.’ 이것이 바로 택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며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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