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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리뷰 658 (마태복음 5장 8절)

2026.09.29 06:55

hc 조회 수:29

 

하나님께로부터 입은 긍휼히 여기심이 우리 안에 흘러넘칠 때 신자는 타인을 향해서도 긍휼히 여기는 행위와 삶의 모습으로 그것이 드러나야 함을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성품이며 그리스도를 닮아가고자 하는 삶에서 반드시 맺게 되는 열매입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긍휼히 여기는 행위를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더라도 그리스도인이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우리는 우리의 마음의 상태와 달리 도덕적인 의무감이나 자기 열심에 의해서, 혹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함으로 외식적으로 긍휼히 여기는 모양을 행위를 통해서 밖으로 드러낼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음은 긍휼히 여김이 없어도 행위로는 얼마든지 그렇게 긍휼히 여김을 행하고 그것이 사람들에게는 선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러하기에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행위와 삶이 무엇에서부터 비롯되어야 하는지를 말씀하시면서 우리가 진실로 청결하기를 힘써야 할 것에 관해서 이어서 교훈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이 바로 오늘의 본문입니다.

 

“복되도다 마음에 있어서 깨끗한 자들이여, 왜냐하면 바로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주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지향하게 되는 또 하나의 복된 삶은 언제나 그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청결하게 하는 것이며 성령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 안에서 선한 양심을 통해 바로 이 일을 행하실 것임을 주님은 교훈하셨습니다.

 

팔복의 말씀은 택함을 입은 중생한 그리스도인이 궁극적으로 이 땅에서 지향해야 할 삶의 목표와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만들어 가고자 하시는 모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것이 신자의 삶과 그 열매이며 이러한 복된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심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가치를 오늘도 굳게 붙들고 그것을 지향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참으로 복된 자이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누리며 스스로 행복하다고 여겨도 그의 삶이 이 팔복의 말씀과 겹쳐 보았을 때 전혀 일치됨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는 지금 그에게 주어진 인생을 매우 잘못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에 따르면 그는 구원과 영생에 이르는 진정한 복된 자의 삶과 무관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지적인 부분과, 나아가서 종교적인 부분을 포함한 인간의 모든 삶을 지배하는 내면의 중심 기관입니다. 마음은 생각과 판단, 의지와 결단, 욕망과 동기, 애정과 미움, 질투와 증오, 믿음과 양심, 하나님을 향한 태도가 결정되는 곳입니다. 마음은 인간의 모든 감정들과 사고와 이해가 이루어지는 기관이며 의지의 출발점이고 하나님을 향해서 나아가는 신앙의 중심으로 종교의 뿌리이며 도덕적인 모든 행위를 지배하는 곳입니다. 사람에게서 마음이 이토록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잠언 4장 23절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연인들은 마음의 중요성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행동의 결과만을 중요하게 여길 따름입니다. 마음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에 귀를 닫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경의 진리는 마음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마음’이라는 측면에서의 청결함을 강조하셨고 그것이 바로 참된 신자의 표징이 됨을 말씀하셨습니다. 외면적인 청결보다 사람의 그 내면과 그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청결함을, 어떤 불손한 동기나 그 밖에 다른 악한 것이 뒤섞여 있지 않은 순수함에 관해서 주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께서는 왜 이런 표현을 하신 것일까요.. 마태복음 23장 27절을 보면 예수께서는 유대주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일갈하고 계셨습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곳이 가득하도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주의자들을 한 마디로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칭하셨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만 아름답게, 거룩하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처럼 보이는 자들일 뿐이고 그들의 속은 추악하고 더럽기 이를 데 없음에 대해서 통렬하게 그들을 일갈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겉으로 보여지는 모든 것들이 아니라 그 마음의 중심이라는 것을 주께서는 강조하셨습니다. 당시 모든 유대주의자들이 지향하고 있는 그릇된 외식적인 신앙을 정면으로 질타하시면서 신앙은 겉으로 보여지는 것이 결코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지적하신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마음의 청결에 대한 지식도, 개념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철저하게 형식적이고 가식적이며 위선적인 외적인 것 만을 중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인 아름다움, 외식적인 거룩이 아니라 그 마음이 청결하고 순수해야 함을 주님은 강조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 26절에서도 주께서는 “눈먼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라고 책망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도 이 같은 진리를 동일하게 강조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은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24편 3~4절에서는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라고 기록한 것을 보게 됩니다.

 

성경이 강조하는 것은 마음의 청결함입니다. 마음의 청결함은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함으로 인해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식함으로 그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을 향할 때 우리의 마음에 깃드는 내면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청결한 자’에서 ‘청결하다’라는 원어적 의미는 ‘더러움과 죄악을 씻다’라는 뜻과 ‘섞이지 않거나 순전하거나 걸러지거나 찌꺼기가 제거되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청결함이란 모든 죄악이 씻기어진 이후에 다른 어떤 요소도 그것에 더하거나 섞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더럽지 않고 정결하며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하고 깨끗한, 둘로 혹은 그 이상으로 나누어지지 않은 상태를 가리킵니다. 신앙에 있어서, 하나님을 향한 헌신이나 충성이나 섬김에 있어 그 모든 이유와 동기에 있어서 다른 어떤 의도나 목적이 섞이지 않은 순수하고 순전한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원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순순한 마음, 온전히 하나님만을 신앙하기를, 하나님의 시선만을 의식하기 원하는 그 마음이 바로 청결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