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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셨습니다. 자기가 나아가고 싶다고 해서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모두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예수를 믿는 믿음을 가질 수 없듯이, 오직 택하여 정해진 자들 만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었습니다.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그리고 이스라엘 장로, 칠십인이 산에 올라갑니다. 유의해서 볼 부분은 나답과 아비후가 여기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아론에 네 아들 중에 첫째와 둘째였고 모세의 조카였습니다. 그들은 후에 제사장이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선 자들이었지만 레위기 10장에 보면 하나님 앞에 다른 불을 드리다가 불에 타 죽게 되는 비극의 인물들이 됩니다. 하나님을 뵈었어도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이 무엇인지 올바로 알지 못하면 죽임을 당합니다. 이는 우리에게 매우 지엄한 교훈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교회 안에 머물고 바른 말씀과 교리를 들었어도 전혀 그것이 자기의 것이 되지 않은 사람은, 그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지 않는 자는 결국 버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보고 듣고 경험했든지 하나님께로부터 버려진 자들은 결국 버려지기 마련입니다.

 

이어 놀라운 말씀이 등장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모습을 정확하고 정밀하게 묘사하지 않고, 그 발아래 펼쳐진 그림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발’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인간의 육체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현현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묘사한 것일 뿐입니다. 청옥과 맑은 하늘의 청명함은 하나님의 현현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과 초월성, 그 장엄함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밖에 그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신비로움을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언어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을 보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뵈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보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실제를 본 것이 아닙니다. 출애굽기 33장 20절에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살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그들이 본 하나님은 피조물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제한적으로 드러내신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본질을 모두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극히 제한하여 드러내신 부분적 현현을 경험한 것일 뿐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11절입니다. 손을 대지 않으셨다는 의미는 그들을 죽이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왜 성경이 굳이 이 말씀을 기록했을까요? 이것은 일상적이며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24장에서는 그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갔는데도 죽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본문의 순서를 다시 보십시오. 8절에 속죄의 피 뿌려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9절 이하에서 그들이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피가 그들에게 뿌려졌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순서상 그다음이었습니다.

 

출애굽 할 때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마지막 재앙은 장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 있는 집의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피를 뿌리고 아무도 문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장자들을 치실 때 그 피를 보고 하나님의 사자가 그 문을 넘어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피가 뿌려진 자, 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뿌려진 자들 만이 멸망을 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영원히 지옥의 형벌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들, 그들 만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구약과 신약에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는 복음입니다. 우리가 오늘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뿌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9절은 이것을 놀랍도록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우리가 가진 담대함은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보배로운 피를 흘려 주신, 바로 이 사실에서 비롯된 담대함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에 나아오는 사람은 자신의 의를 가지고 나아오지 않습니다. 빈손으로 나옵니다. 죄인의 모습 그대로 오직 그리스도만 의지하여 나옵니다. 성찬은 의로운 사람들이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식탁이 아닙니다. 자기에게 아무런 의가 없음을 알고 그리스도의 의만 붙드는 죄인들이 나아가는 식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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