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12 20:25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단 하루도 평화로운 날이 없습니다. 세상에 참된 평화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모두 정치인들만의 문제 때문일까요.. 그보다는 더 근본적인 것에서 우리는 그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 진정한 평화가 없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들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이 세상에 들어왔고 죄의 지배 아래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이토록 모두 뒤틀어지고 깨어지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 2장에 나오는 인간이 타락하기 이전의 상황을 보여주는 에덴동산의 모습은 매우 평화로운 곳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분쟁도 갈등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3장으로 넘어가면서 아담과 하와에 의해서 저질러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는 죄가 발생하게 됩니다. 죄가 들어오자 가장 먼저 깨어진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즉시 하나님을 피하여 숨게 됩니다. 누구도 그렇게 하라고 말해 주지 않았는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풀숲에 숨어 자신들의 모습을 감추게 됩니다. 그렇게 숨어 버리면 될 것이라는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에 사로잡혀 버립니다. 그들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렇게 순식간에 깨어져 버린 것입니다.
다음으로 아담과 하와의 관계가 깨어집니다. 하와를 향한 아담의 짙은 원망과 그리고 책임 전가가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창세기 3장 12절에서 아담은 이렇게 변명합니다. 죄가 들어오기 전에 아담은 하와에게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했었습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자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까지 모두 갈등과 반목과 미움으로 첨예하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창세기 4장에서는 가인이 그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이는 끔찍한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이 죄로 인해서 일어난, 모든 평화가 파괴된 시작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유사 이래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싸우고 죽이고 서로 물고 뜯는 관계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죽고 못살 만큼 사랑해서 결혼을 해 놓고도 부부가 서로 싸우게 되고, 천륜 지간인 부모와 자식 간에도 갈등이 생기게 되고 형제와 자매가 서로 싸우며 국가와 국가가, 민족과 민족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들이 끊임없이 전쟁을 하고 분쟁을 하며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교회는 예외일까요.. 교회 안에서까지 다툼과 갈등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 모든 원인은 바로 죄 때문입니다. 죄는 관계를 파괴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모두 깨뜨려 버립니다.
타락한 인간은 모두가 하나님과 원수가 된 자들입니다. 골로새서 1장 21절에서도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화평을 잃어버린 인간의 실존을 성경은 이렇게 ‘하나님과 원수가 된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지옥 백성이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그것이 바로 놀라운 은혜이며 구원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의지로 하나님께서 찾아가서 하나님과 화해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해서 화목의 길을 여시고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찾아오심으로, 그 하나님의 열심을 통해서 죄인들과 화평을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화평의 의지는 우리에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선택으로 하나님을 버렸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 속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고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기까지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평화의 의지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하기에 오늘도 죄인들의 강퍅한 완고한 마음까지 깨뜨리고 녹이셔서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오게 만드십니다. 모두가 하나님께서 그렇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5장 18절은 이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작정과 구속과 구원이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었고 결국 그 아들을 통해서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케 하신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화목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는 이제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화목하게 하는 직책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또 다른 이름은 ‘화평케 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죄로 인해서 모든 관계가 파괴되어 버린 그런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 이제 주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정체성과 그 복된 사명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복되다, 화평을 이루는 그 자들은, 왜냐하면 바로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기 때문이다’ 직역을 하면 이런 의미가 됩니다. ‘복이 있나니’라고 번역한 원문의 의미는 ‘행복한’,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이라는 뜻입니다. 이미 여러분들은 깨닫고 계시겠지만 팔 복이 말씀하고 있는 복은 세상에서의 일반적인 행복이 아닙니다. 이 복의 개념부터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팔 복은 또 다른 현세 기복주의적인 그릇된 해석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복된 자는 세상이 말하는 모든 행복의 조건을 갖춘 자가 복된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지으신 목적을 따라 살아가는 그 자가 진정으로 행복한 자라고 성경은 규정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그를 지으신 하나님의 뜻대로, 자기의 안위와 자기의 영광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일에 최선을 다할 때 그가 바로 이 땅에서 궁극의 복을 누리고 있는 복된 자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회적인 성공으로 부와 명예를 얻는 것이 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실 때 가장 올바른 상태, 하나님의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키면서 그의 모든 삶의 존재의 이유와 목적이 하나님 사랑과 지체들을 사랑하는 것에 맞추어져 있는,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고 있는 성도의 복된 삶을 주님께서는 팔 복을 통해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복된 관계를 누리는 그리스도인들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견고한 망대와 산성이 되셔서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의 삶을 지키심으로 그들에게는 참된 평화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나 시련이나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 인한 절대적인 평강을 복된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것을 소유하고 누리며 이 땅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