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5 08:45
예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서 두 가지의 상반된 효과를 거두셨습니다. 그것은 듣고자 하는 자들, 진리를 들어야 할 자들에게는 진리가 비유를 통해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게 되는 반면 듣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자들, 영적인 관심이 전무한 자들에게는 진리가 더욱 감추어져서 그 의미가 모호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신 것입니다.
비유는 들을 귀가 열려 있는 자들, 분명한 대상만을 위한 것임을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해하기 쉬운 비유의 예화를 통해 주께서는 영적 진리를 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비유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주께서는 모든 자들에게 그 비유의 의미들을 설명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자들이 다 떠나가고 제자들만 남았을 때 그 모든 비유의 의미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주께서는 또다시 무리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3~8절을 보십시오. ‘들으라’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현재 능동태 명령법으로 쓰여진 주님의 명령입니다. 마가복음에서는 10번 정도, 이 ‘들으라’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잘 들어달라고 부탁하지 않으셨습니다. 진리는 애원하고 부탁하고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 진리가 생명입니다. 이 진리가 구원입니다. 이 진리가 당신이 반드시 믿어야 할 바입니다.’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제발 당신이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애원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참 생명과 구원이 있으니 와서 들으시오, 그리고 영생을 얻으시오’라고 아무런 소망이 없는 죄인들에게 살 길을 제시하며 이 진리를 듣고 예수를 구주로 믿으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네 가지 밭의 비유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먼저는 길가입니다. 씨앗이 길가에 떨어졌는데 새들이 날아와서 그 씨앗을 먹어 버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길가’란 밭 옆으로 난 1미터 정도 폭의 길을 의미합니다. 밭과 밭 사이로 난 이 길은 사람들이 오래도록 밝고 다녀서 물기가 없는 단단한 흙 길입니다. 씨앗이 절대로 파고 들어갈 수 없는 토양입니다. 그러니 씨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리고 지나가면 곧 새가 날아와 씨앗을 집어먹어버렸던 것입니다.
다음은 흙이 얇은 돌밭입니다. 이는 자갈 밭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토양 가운데는 석회암이 깔려 있는 지형들이 있었습니다. 그 위에 그냥 흙이 덮여 있을 뿐 그 바로 밑에는 돌들이 깔려 있는 이런 토양을 말합니다. 바닥에 돌로 구성된 넓은 층이 있었는데 흙은 파고 들어가도 뿌리가 자라다가 돌로 된 지형을 만나게 되면 다시 뿌리가 역으로 자라게 되고 그렇게 거꾸로 자란 뿌리에서 싹이 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거꾸로 자란 뿌리에서 나온 싹은 태양이 뜨면 곧 말라버리게 됩니다.
다음은 가시떨기 밭입니다. 가시덤불이 온통 지면에 덮여 있어서 흙 속에 들어간 씨가 싹이 나지만 가시들의 기운에 막혀서 올바로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됩니다. 가시 덤불에 의해서 수분도 영양분도 모두 빼앗기고 햇볕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 결과 그 식물은 결실을 하지 못하는, 그 존재의 가치를 다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땅입니다. 기름지고 비옥한 밭입니다. 씨앗은 토양에 잘 파고 들어가 싹이 나고 줄기가 자라고 잎이 나며 꽃이 피고 이내 잘 결실하게 됩니다. 한 개의 씨앗을 통해서 많은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씨가 잘 자랄 수 있는 모든 조건이 토양에 조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