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8 08:36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 되심을 믿는 것, 그것이 믿어지는 것, 그래서 내 뜻과 생각과 고집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셔서 성경에 매이고 그 진리에 붙들려서 오직 믿음으로, 십자가의 능력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것만이 진정한 믿음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이 이유이며 그 중심이 되지 않는 신앙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결코 될 수 없음을 기억하십시오.
예루살렘 성전에서 사흘 만에 다시 만나게 된 부모님에게 주께서 보이신 인간적으로 볼 때는 매우 차갑고 서운하게 들릴 수 있는 그 한마디 말씀은 그러나 그의 육신의 부모에 대한 배려이셨습니다. 이제는 제발 눈을 떠서 그대들의 앞에 있는 존재가 그냥 당신들의 아들이 아니라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이 땅에 임한 메시야임을 주께서는 그의 부모들이 알게 되기를 바라시는 마음으로 예수께서는 비록 나이가 어렸을지라도 그렇게 그의 부모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제 주님은 동일하게 자신을 찾아온 가족들에게 매우 서운할 수 있고 섭섭할 수 있는, 어쩌면 그들의 마음에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씀을 담담하게 말씀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31~32절을 보겠습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가족들은 마침내 가버나움에 예수님께서 계시는 곳까지 당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가족들은 사람을 보내서 예수님을 불러 밖으로 나오도록 요청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무례한 그림이 성경에 보이고 있습니다.
공생애를 사시며 피곤하고 분주하신 가운데 유대주의자들의 도발적인 질문까지 상대하고 계신 주님께 마리아와 그의 가족들이 찾아와서 더욱 주님을 힘들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강론하고 계시는 곳 안으로 들어올 마음이 없었습니다. 주께서 행하고 계시는 일은 자신들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예수가 무슨 일을 하든 우리가 알 바 아니고 우리는 단지 그의 가족으로 그를 만나러 온 것일 뿐이라고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온 유대가 다 알 만큼 놀라운 일들을 행하고 계신 그리스도를 여전히 메시야로 여기지 않고 단지 자신들의 가족으로만 여기고 있었기에 이토록 무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께서 전하시는 복음에 관해서 그의 가족들은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을 보내서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고 계신 예수님을 밖으로 불러내려 하고 있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들이, 우리의 말들이 참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하고 주님께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로 나타날 수 있는지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메시야로서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전혀 그들 눈에는 보이지 않고 자기들의 가족, 아들이며 형님이며 오라버니로서의 예수만 여전히 그들 눈에 보이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알지 못하는 무지와 그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일들이었습니다.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고 있었던 바리새인 서기관들, 사두개인 제사장들의 무리와 예수님의 육신의 가족들은 예수를 불신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결코 다를 바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족들은 단지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고 있는 일들을 멈추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여전히 그들에게는 걱정과 우려의 대상으로만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지금 제자들과 더불어 집 안에 계셨습니다. 그곳은 몰려온 사람들 때문에 발 디딜 틈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주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빽빽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마태의 기록에 의하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한 사람이 급히 예수께 와서 말을 전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내용을 종합해 보면 예수께서는 지금 집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운집한 가운데서 말씀을 전하고 계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밖에서 예수님의 가족들로부터 말을 전해 듣고 안으로 들어와 예수님께 이 사실을 알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당신을 찾고 있다고 전한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찾는 많은 이들 가운데 예수님을 배려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예수를 통해서 자신들이 필요한 것을 얻고자 했을 뿐입니다. 그토록 예수님을 찾아 몰려온 자들 중에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야 이심을 아는 이, 알고자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던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예수님께는 엄청난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더하게 하시는 일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가운데 이제는 예수님의 육체의 가족들까지도 예수님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메시야를 찾아온 것이 아니라 아들을, 그리고 형과 오라버니를 만나러 먼 길을 온 것이었습니다. 지금 주님께서 천국의 복음을 전하시며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시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계셨지만 예수님의 가족들은 이를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집에서 조용히 말씀을 전하실 때 지붕을 뜯어 난리 법석을 떨며 친구를 달아 내린 자들처럼 그렇게 난동을 부리면서 친구를 고쳐 주시기를 일방적으로 요청했던 그 무례한 자들과 예수님의 가족들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지금 무엇을 하든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고 우리는 그의 가족이며 우리가 그 예수를 지금 만나러 왔다는 사실만 그들에게 중요할 따름이었습니다. 참으로 무지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구이시며 그분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지 아는 이가 예수의 가족들 중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무리가 둘러앉아 조용히 천국의 복음에 대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중에 또다시 이 일을 훼방하는 일이 예수의 가족에 의해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의 말을 끊고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당신으로 찾고 있다고 전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족들은 지금 이러한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마침내 주님은 의도적으로 그들을 멀리하시며 거리를 두고자 하셨습니다. 더 이상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그들과 함께 갈 수 없는 때가 왔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게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주께서는 이제 주님께로 돌아올 수많은 영적인 가족들을 위해 그의 육적인 가족들을 멀리하고자 하시는 결정을 내리셨습니다.
이내 주님은 다시 냉정하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지극히 의외의 차가운 한 마디의 말씀이 주님의 입으로부터 흘러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육체적 가족이 자신을 메시야로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요한복음 7장 5절을 보면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라고 기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장하시는 가운데 분명 여느 어린아이와 청소년과 청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셨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족들은 전혀 이것을 중요하게 여기며 생각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저 그들의 눈에는 아주 바른 아들이여 특별한 형이며 완벽한 오라버니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가족들에게는 매우 서운한 말씀이지만 그들과 분명하게 선을 긋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이 일을 계기로 자신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자신들의 가족들에게 새로운 관계의 변화를 그들이 인식하고 받아들이도록 요구하고 계셨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육적인 관계가 아닌 영적인 관계로 이제 그들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생각을 전환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이유는 마리아의 아들이 되기 위함도 그의 동생들의 형과 오라버니가 되기 위해서도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분명히 밝히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 더 중요한 것은 성부 하나님과의 관계였습니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메시야로서의 사명이셨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의 아들로 형과 오라버니로만 여기고 있었던 가족들에게 주님은 그들에게 서운한 반응일 수 있지만 그것을 생각하시기보다는 이제 자신이 누구이며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지를 그들이 깨닫기를 원하신 의도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이제 육신의 가족들과 육적인 혈연의 관계를 이제 주님은 정리하고 계셨습니다. 마리아와 동생들은 여전히 혈연으로 예수님을 묶으려 했지만 주님께서는 이제 메시야로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목적성을 가지고 더욱 확장된 그리스도 안에서의 영적인 가족의 개념을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