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20 06:29
예수 그리스도를 눈에 가시처럼 여기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또다시 예루살렘으로부터 와서 예수님을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또다시 예루살렘으로부터 와서 주님을 찾은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속에 오류를 찾아내어 이를 산헤드린에 고발함으로 그리스도를 모함해서 죽이기 위함 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렵지 않게 예수님의 제자들의 모습 속에서 결코 용인할 수 없는 문제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찾아낸 문제점은 바로 위생에 관해서 예수의 제자들이 그들의 유전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은 채로 빵을 먹고 있는 모습이 그들의 눈에 포착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손으로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음식을 먹기 전에는 반드시 손을 깨끗하게 씻어야 했습니다. 이런 습관이 종교적인 의식처럼 자리 잡게 되었고 손을 씻지 않으면 부정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부정한 신체나 사물은 물에 씻거나 물을 뿌림으로 정결케 될 수 있다고 그들은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부정한 사람으로 간주되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면서도 그 제자들은 이렇게 부정한 행위를 저질러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를 일삼고 있다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관점에서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해서 강하게 부정하다 여기는 근거는 무엇인지를 보면 그것은 다름 아닌 그들이 목숨처럼 여겼던 장로들의 유전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절을 보면,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어 손을 부지런히 씻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전통에 근거해서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이같이 정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은 장로들의 유전을 어기는 일이었습니다. ‘장로’는 연장자, 조상, 고관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랍비 들을 주로 지칭하는 것이었습니다. ‘유전’은 물려주다는 동사에서 유래된 단어로 조상으로부터 전수되는 교훈, 관습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모든 내용보다 열 배 이상이 되는 방대한 내용으로 더 세부적인 규칙들을 만들어서 이것을 지킴으로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않고자 했지만 유대주의자들의 이 같은 어리석은 생각은 도리어 하나님의 뜻을 왜곡시켜서 더욱 복잡한 형태의 수많은 규범들을 만들어 냄으로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본질적인 신앙보다는 수많은 형식에 얽매이게 하고 감당하기 힘든 멍에를 지워준 결과를 낳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장로들의 유전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이 모든 장로들의 전통을 누가 더 많이 읽었고 누가 더 많이 알고 있으며 더 열렬히 지켰느냐를 통해서 철저하게 자신들의 의를 삼아 더욱 가증하고 위선 된 모습으로 그들의 신앙을 변질시키고 타락하게 된 길을 열어주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나님의 율법보다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는 것을 더 큰 의로 여기며 자기들뿐만 아니라고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율법주의 속에 가두어 그들의 지배를 따르게 하는 그런 어리석음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같은 그들의 횡포에 대해서 마태복음 23장 13절에서,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라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같은 유대주의 늪에서 부디 벗어나 그리스도께서 주신 참된 자유를 맛보기를 간절히 갈망하며 갈라디아서 5장 1절에서 이렇게 호소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이토록 성경은 곳곳에서 유대주의의 형식적인 신앙에서 벗어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신앙은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는 거짓되고 그릇된 하나님께서 보실 때 사악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신앙이 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신앙은 전혀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게 인간이 인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자기들의 의를 위해 스스로 만들어내고 그것을 굳게 지켜 나아가는 참으로 어리석고 거짓된 결코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신앙도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올바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참된 신앙은 결코 우리들의 생각과 판단과 고집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진리를 통해서 올바로 깨닫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로 그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바로 그 믿음을 추구하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열심을 내기만 하면 다 믿음이 아닙니다. 그 열심이 누구를 위한, 무엇에 근거한 열심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열심으로 따지면 유대주의 종교지도자들의 열심을 따라갈 자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마태복음 5장 20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까지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들의 자기의 의를 위한 열심은 주님께서도 인정하신 바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구원과는 무관한 열심과 의였을 따름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를 드러냄으로 구원에 이르는 자들이 결코 아님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의 의가 드러날수록 우리의 믿음은 천국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가 아니라 오직 모든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를 통해 칭의를 입었고 그 의로움을 인정받음으로 인해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자들입니다. 이 진리를 망각하면 우리도 결국 율법주의에 경도되어 우리 자신의 의를 드러내고 인정받고자 하는 어리석은 믿음으로 치우칠 수 있다는 것을, 이는 매우 위험한 신앙의 변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알미니안적인 모든 신앙을 경계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