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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야가 되심을 묻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묻는 메시야는 정치적으로 이스라엘을 해방할 메시야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정치적인 메시야인지를 질문하는 어리석은 질문에 주님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자신이 진정한 메시야이시며 나아가서 장차 다시 이 땅을 심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실 심판주로서의 메시야가 바로 자신이심을 밝히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마지막 날에 권능의 보좌로부터 이 세상을 심판하러 다시 오실 것이고 그때 그들 모두가 주님을, 그 영광과 위엄의 재림의 주를 다시 보게 될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침묵으로 일관하시던 주님은 이렇게 마침내 때가 되자 자신의 신분을 모든 자들 앞에서 당당히 밝히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지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영광과 권능 가운데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다시 강림하실 재림의 주이십니다. 우리 또한 그리스도를 이렇게 세상 앞에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다른 말로 그분을 묘사하거나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세상 사람들이 다소 이해하거나 믿기 힘들 수 있지만 주님께서 자신을 소개하신 말로 우리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알리는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사랑의 주님, 복 주시는 주님, 위로의 주님도 그리스도에 대한 표현일 수 있지만 그보다 장차 큰 권능으로 구름을 타고 다시 오셔서 모든 죄인들을 심판하시는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하게 말해 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답변에 대제사장은 예상한 바대로 신성모독 죄로 예수님을 정죄하게 됩니다. 유대주의자들의 하나님을 향한 이 위선과 가식을 보십시오. 그들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당하게 되었다는 거짓된 이유로 인해 그들은 옷을 찢어 그들의 분노와 슬픔을 드러내는 가증하고 위선적인 퍼포먼스를 행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이로써 결정적인 증거를 얻게 되었음을 공포합니다. 다른 증인이 더 필요치 않음을 말하면서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을 극렬히 선동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예수께서 사형에 해당되는 죄악을 저질렀다고 이구동성으로 정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참람한 말을 한 자는 유대 법에 따르면 사형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어떤 참람한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진실 만을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주님을 이같이 정죄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마가복음 10 33절에 주님께서 이미 예고하신 바의 성취임을 볼 수 있습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세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 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산헤드린은 율법에 따라서 사형을 의결할 수는 있어도 집행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 야심한 시각에 이렇게 졸속으로 예수님의 재판을 진행했고 사형을 선고하기에 이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모든 정의와 법을 지우고 사악하게 공정하지 않은 판결을 하는 종교적 세속적 재판장들에게 하나님의 자비 없는 저주가 임할 것입니다. 빌라도는 신앙의 고백 속에서 그가 행한 지울 수 없는 예수를 죽음에 넘겨준 죄를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의 입을 통해서 고발당하고 있음을 보십시오.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주님은 고초를 겪으셨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향해서 침을 뱉고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혹은 손바닥으로 가격을 하는 등 가혹한 폭력이 이루어졌습니다. 조롱의 말들을 퍼붓고 온갖 멸시와 조롱을 주께서 당하시게 된 것입니다. 무자비한 폭력과 폭언이 주님께 가해졌습니다. 그들은 분명 예수님이 행하시는 이적과 기사들을 보고 들은 자들입니다. 말고의 떨어져 나간 귀까지 다시 고치시는 능력을 방금 전까지도 직접 본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런 일들을 보고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지 않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믿을 수 있습니까.. 주님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게 되면 믿음이 생길까요.. 당신에게 기적이 일어나면 예수를 믿겠습니까.. 믿음은 그런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믿을 자가 믿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 전부터 믿기로 작정된 자가 예수를 구주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시지 않으면,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게 하신 양이 아니라면 이 자리에 예수님이 오셔서 설교를 하셔도 그는 예수님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의 신비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재판은 불법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어떤 소송도 심야에 진행되는 법은 없습니다. 산헤드린의 재판은 광장이나 공회당에서 모든 이들이 보는 앞에서 열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대제사장의 관저였습니다. 예수님에게는 그 어떤 변호인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예수를 죽이고자 하는 이들 일색이었습니다. 중요한 소송은 수일에 걸쳐서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하는데 주님의 재판은 순식간에 끝나 버렸습니다. 유월절이나 그 전날에는 재판을 열지 않게 되어 있었지만 이들은 이 법을 준수하지도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불법이고 불의고 부당한 재판이었습니다. 이미 그 결론이 정해져 있었던 재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어떤 저항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잠잠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예언이 이루어지기 위함이었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세상에 대해서 아무런 기대를 갖지 마십시오.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은 모두 자신들의 욕망을 이룸에 있어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악을 가용하는 자들입니다. 모든 법을 무시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모든 일들을 이루며 전횡을 일삼는 자들입니다. 법을 지키지 않는 모든 자들이 악인들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들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모든 자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렇게 사악한 무리들에 의해 정죄를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셨고 섭리이셨습니다.

 

왜 우리는 세상에서 이러한 일들을 겪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절대로 이러한 억울한 일들이 우리에게는 우리의 자녀들에게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믿을까요.. 죄 없으신 주님도 바로 당신을 위해 그 길을 가셨습니다. 묵묵히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그 괴로움과 고통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믿음은 이 모든 것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재산과 명예와 목숨까지도 다 내어 놓으라 하면 우리의 신앙의 고백을 제외한 모든 것을 다 내어 주고라도 가야 하는 길이 바로 신앙의 좁은 길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위해 그 길을 가셨습니다. 이 진리를 믿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주님을 뒤따를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뒤따라 그 길을 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믿음뿐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우리도 주님의 뒤를 따라 그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당신에게 지금 이 믿음이 준비되어 있습니까.. 그런데도 무엇을 위해 오늘 교회를 나오시는 것입니까.. 무엇을 주께 구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고 예수를 믿기로 한 것입니까.. 우리는 어떤 보상을 기대하고 교회를 다니고 있는 것입니까..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에는,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를 진리를 통해서 깨닫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늘도 나 자신의 삶의 모든 욕구와 불만에 붙잡혀서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 곁길로 행하며 참된 신앙의 길에서 멀어지는 자들이 있다면 자신의 믿음부터 점검하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 여겼다고 모두 배도의 길로 갔습니다. 자신의 구원을 믿었지만 죽음 앞에서 천국 문 앞에서 자신의 이름이 없음을 깨달은 천로역정에 나오는 그의 이름은 무엇이었습니까.. ‘무지’였습니다. 그는 자기 의를 주장하는 자였습니다. 진리에 대해서 무지한 채로 그는 자신이 언제나 옳다고 여기고 교회를 다녔던 사람입니다. 그는 결국 구원에 이르지 못했음을 기억하십시오.

 

자기 의에 사로잡혀서,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걸으며 자기가 중심이 되어서 예수를 믿었던 지극히 진리에 대해 무지한 자가 들어갈 수 있는 천국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성경과 교리에 대해서 올바른 신앙의 길에 관해서 자신의 영적인 상태에 대해서 자신의 영혼에 대해서 무지한 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어떻게 믿는 것이 과연 성경의 진리를 좇아 믿는 것입니까.. 주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그 위대하신 사랑의 완전한 구속의 계획을 바라보셨습니다. 그러하기에 주님은 주께서 당하셔야 할 모든 고초들을 모두 감당해 내셨습니다. 사명이 분명하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우리를 부르신 그 부르심을 따라 믿음의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주님은 견디기 힘든 길을 가셨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가고 싶은 길을 가는 것이 아닙니다. 꽃가루가 뿌려지고 사람들의 갈채와 환호가 있는 길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힘으로 도무지 갈 수 없는 길을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길을 가기 원하시기에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감당할 수 있는 은혜를 매일매일 구하면서 그 좁은 길을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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