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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리뷰 530 (스바냐 2장 1~3절)

2026.03.19 19:38

hc 조회 수:30

 

이어 공의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공의는 하나님의 속성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에서 추구해야 할 가치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시며 그분의 자녀인 우리 또한 언제나 의를 추구해야 합니다. 의롭지 않은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우리의 의는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의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주 되심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칭함을 입게 된 의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행위로 자신들의 의를 증명하며 그것을 자랑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안에 어떤 의도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을 통해서만 얻게 된 의를 믿고 의지하고 그것을 붙들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의로우심을 믿는 자들이고 그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 또한 의로운 자녀가 되어야 함을 알기에 언제나 이신칭의의 은총을 귀하게 여기며 그것을 굳게 의지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어떤 의도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를 멸망과 심판에서 건져 내신 것이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 얻게 된 그 의로움임을 알기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공로로 의롭게 된 것도 아니며 우리의 힘과 능으로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아님을 알기에 언제나 그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과 자비하심과 그 섭리의 손길 앞에서 언제나 겸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어서 겸손을 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을 특징하는 한 단어는 바로 겸손입니다. 겸손은 심령의 가난함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은 자임을 증명하는 영혼에 일어난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전 존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아무것도 아님을 마음으로 깊이 시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영혼 안에만 깃들게 되는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의 증거가 바로 겸손입니다. 겸손하지 않은, 여전히 자신이 옳다고 여기며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하는 교만한 자는 결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야고보서 4 6절은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 5절은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47 6절은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는 붙드시고 악인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도다’ 149 4절은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겸손하고 온유함을 곳곳에서 하나님의 자녀의 특징들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 아래서 한없이 겸손히 자신을 낮출 수밖에 없는 자들, 그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사람들입니다. 자신 안에 그 어떤 자랑할 만한 것이 전무함을 알아 언제나 자신을 낮출 수밖에 없는 그 사람이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입니다. 그러한 겸손의 마음이 우리 안에 있고 그것이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 자들임을 증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하지 않은 그리스도인, 끊임없이 자신을 의롭다 여기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그 명령과 계명과 법을 지키지 않으며 자신의 생각과 고집대로 자기의 의에 사로잡혀 교만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공의와 겸손을 구하는 자, 그의 영혼과 그의 마음과 그의 지성과 감정과 의지가 모두 이러한 진리를 따라 하나님께 복종하며 살아가는 자라야 그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는 여호와의 분노의 심판의 날에 숨김을 얻게 될 자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원문에는 ‘.. 아마도 너희가 여호와의 진노의 날에 숨겨질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잘 보십시오. 너희가 반드시 여호와 날에 숨겨질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고혹시’, ‘아마도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혹시’라는 말은 어쩌면 구원을 얻게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의미인데, 그럼 왜 다소 불확실해 보이는듯한 이런 표현을 굳이 사용한 것일까요.. 칼빈은 그 이유를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고 영적으로 깨어 있어 겸비함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언제나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그리고 깨어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했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는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한다고 말했습니다. 히브리서에서는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고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한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이미 확정된 구원이라 하지라도 미완의 과제인 것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말미암아 값없이 받은 이 구원의 은총을 가볍게 여기거나 우리가 무슨 죄를 지어도 구원은 받을 것이라는 미신적인 신앙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에 기대며 신실하게 그것을 신뢰하고 믿는 자들의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그 믿음과 신앙의 고백을 확고하게 지켜 주시는 자의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