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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 토막 319 (히 10:1-10)

2023.05.26 07:45

hc 조회 수:489

<묵상, 설교 한 토막>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드린 예배는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복종하신 예배였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해체하신 예배였습니다.

 

순종은 기필코 내 뜻과 내 생각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의 뜻을 올려 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열심과 그 중심이 견고한 자의 마음을, 그의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십계명을 통해 드러내신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의 삶으로 나타내며 우리가 그분의 백성인 것을 고백하는 모습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말 못 하는 짐승의 수 없는 희생 제사를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그 크신 은혜에 대한 자발적 순종이 담겨 있는 예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자신의 의지를 꺾고 자신의 욕망을 비롯해서 하나님의 뜻 밖에 있는 인간의 고집과 계획을 모두 포기하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그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한 완전한 예배의 모델로서 자발적 자기 희생을 통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예배를 우리에게 본으로 보이신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에 복종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든 예배의 요소들을 모두 이루심으로 구약의 불완전한 예배를 폐하고 온전한 예배의 전형으로 그리스도께서는 단번에 자신을 드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의 아름다운 모본을 보이셨습니다.

 

제단 위에 각이 떠진 제물을 보십시오. 목이 잘려 나가고 팔 다리가 다 끊어진 채로 내장이 적출되고 모든 살들이 분해되어 제단에 놓여진 그 제물을 보십시오. 완전히 해체되어 있습니다. 죽어 있습니다. 모두 그렇게 분해되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부위들이 제단에 펼쳐져 있고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곳에 그 피들이 뿌려져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보십시오. 그분의 모습 속에서 아버지께 저항한 어떤 흔적을 찾아 볼 수 있습니까.. 그분은 완전히 발가벗겨 지셨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상하지 않은 곳이 없으셨습니다. 그분은 자기를 고집하지 않으셨고 모든 것을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를 그 죄와 죄의 저주에서 건지시기 위해서 그렇게 온전히 자신을 드리셨습니다.

 

제단에 각이 떠진 제물이 살아 꿈틀거린다면 제물이 될 수 있을까요.. 끔찍한 일입니다. 제물은 죽어야만 합니다. 십자가에서 자기를 버리신 주님처럼 자기를 버려야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가 진정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그 위대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서 우리의 추악하고 더러운 이기적인 생각과 우리의 탐욕적인 마음이 각이 떠져야 하고 우리의 알량한 자존심과 지독한 자기 사랑까지 모두 해체하고 그렇게 나를 철저하게 죽이고자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그 모습을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것이 예배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자신을 버리심처럼 나의 모든 것을, 나에게 속한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을 위해 기꺼이 내려 놓으며 ‘하나님 아버지 아들을 받으셨듯이 저를 받아 주옵소서,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듯이 이 작은 자를 통해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옵소서.’ 그렇게 두 손 모아 기도하는 그 예배자를 오늘도 하나님은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그리고 영원한 대속의 희생 제물이 되심의 가치는 하나님께서 받으신 가장 완전하고 가장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예배였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게 행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드리신 예배의 핵심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무엇을 원하고 계시는 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는 마음과 순종이 없는 제사와 예물과 전체의 번제와 속죄제가 아니라고 주님께서는 선언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진실로 받기를 원하셨던 것은 그같은 형식적인 제사가 아니었다고 히브리서는 기록합니다.

 

이것은 모두 단지 율법을 따라 행위로만 드리는 것일 뿐 그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는 그리스도께서 기꺼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율법을 폐하시고 영원히 단번에 자신을 드려 죄인들을 위한 영원한 속죄의 희생 제물이 되심처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예배의 가장 중요한 정신이며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의 조건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이 반복하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7절에,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9절에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10절에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결국 구약의 모든 제사 제도를 비롯한 옛 언약이 모두 폐지되고 이 땅에 대속주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해 새 언약이 세워지게 된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으며 그 하나님의 위대하신 뜻에 순종하여 행하시기 위해서 메시야께서 이 땅에 오셨고 가장 완전한 예배를 아버지의 뜻을 따라 드렸다고 히브리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의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들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행하신 것처럼 이제 옛 언약 아래서가 아닌 새 언약 아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을 예배하며 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임을 가르쳐주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내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뜻 앞에서 내 고집과 내 주장, 나의 자존심, 나의 모든 그릇된 계획과 뜻을 포기하고 깨뜨리기 위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의 정신은 무엇입니까.. 부디 우리 안에 있는 나의 뜻, 나의 생각과 나의 고집을 꺾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 순복하여 진정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십시오.

 

주님을 보십시오. ‘내가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 왔나이다,’ 라고 당당히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 어려운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인생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압니다. 결코 내 힘으로 이룰 수 없음을 압니다. 그러나 주님 주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저는 이 자리에 있습니다. 이 부르신 곳에 제가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참된 성도의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을 부인하면서 오직 나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바라는 그 마음과 그 중심을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중심이 견고하게 세워져 있지 않다면 당신은 지금 형식적인 예배, 하나님께서 원하지도 기뻐하시지도 않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일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구약의 지극히 형식적인, 수없이 짐승이 희생되는 그런 제사들만 수없이 반복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향한 진실된 마음도 없고 하나님의 뜻에 대한 복종도 없는 예배 끝에는 결국 배도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그것을 말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구약의 기계적인 제사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 구속의 은혜에 대한 진정한 감격이 없는 것이었기에 그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셨던 단지 제도와 법으로서의 제사였을 뿐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예배를 끝장내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 모든 것을 단번에 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말씀드립니다. 불순종의 삶으로 인한, 거듭 죄를 범함으로 인한 마음의 부담과 양심의 가책을 상쇄하고자 하는 형식적인 예배는 모두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드린 예배를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를 회복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