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08 08:14
세 명의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께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 되심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예수께서 왜 죽으시고 부활하셔야 한다는 것인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어도 진정한 믿음과 구원의 참된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고 믿는 사람들은 결코 다수가 아닙니다. 신앙의 그 숭고한 목적,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부르심의 그 이유,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가치이며 신자는 왜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 등등에 이러한 모든 지식에 관해서 전혀 알지 못한 채로 막연하게 교회만 다니면 구원을 받는다는 단 한 줄에 불과한 알량한 지식만을 붙들고 있는 무지한 신앙들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라는 종교를 가지고 있는 한낱 종교인이 되어서는 안되고 진정한 그리스도인, 신자가 되셔야 합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모든 도를 올바로 배워 나아가고 그리스도를 더 깊이 사랑하며, 지체들을 사랑으로 섬기며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고난들을 영원한 약속을 바라고 인내함으로 그리스도를 뒤좇아가는 삶을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죄를 미워하고 선을 행하며 모든 하나님의 명령과 계명에 순종하기 위해 힘쓰며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을 드러내고 높이는 그 삶을 성도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날마다 진리를 깨닫도록, 복음의 참된 가치를 알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하신 그 은혜를 알고 그 사랑에 감격하는 자가 되도록 진지하게 하나님을 신앙하십시오. 성경의 진리가 반드시 우리를 그 길로 인도해 주심을 믿고 더욱 성경의 진리를 사모하십시오. 열심히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배우고 함께 나누는 가운데 우리는 분명히 우리의 영혼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께서 하시는 말씀의 그 의미들을 대부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직 성령의 사람이 아니었기에 구약의 모든 말씀들과 그들 눈앞에 계신, 구약 성경이 그토록 예언해 온 그리스도가 올바로 이해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하기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 구약적 종말론에 대한 지식과 그리스도 사이에서 그들은 혼란을 느끼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이어지는 11절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엘리야와 관련하여 구약에 예언된 종말론에 관해서 예수님께 질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말라기 3장 1절과 4장 5, 6절에 예언된 메시야가 오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올 것이라는 말씀에 관해서였습니다. 제자들은 방금 그들이 목격한 변화산 사건이 증명하듯이 예수께서 참 메시야 이시라면 예수님 보다 먼저 엘리야가 와야 하는데 그 엘리야가 언제 오는지에 대해서 질문을 한 것입니다.
엘리야의 임무는 예언대로 메시야가 오시기 전에 그 길을 예비하기 위함입니다. 즉 백성들을 회개케 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혼란스러워한 부분은 만약에 엘리야가 와서 사람들의 마음을 회개시키고 메시야를 믿도록 했다면 메시야가 왔을 때 어떻게 그를 거부하며 죽이는 일이 일어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메시야라고 하시는데 엘리야가 그전에 오지도 않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 하니 서기관과 대제사장들에게 곧 죽임을 당하신다고 하고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으신다고 하는 이러한 말씀들이 제자들에게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혼란은 구약에 예언된 엘리야가 세례 요한이라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메시야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시킬 것이라는 구약의 예언에 동의하셨습니다. 엘리야는 그렇게 하나님과 그 자녀들을 회복시키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오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메시야는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한다고 기록되어 있는 예언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같은 메시야의 수난 당하심의 예언은 시편 22편과 69편 그리고 이사야 53장 등에서 예언하고 있는 바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진리를 제자들에게 상기시키면서 예수의 제자들을 비롯한 당대에 많은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메시야관과 실제 성경이 예언하고 있는 그것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강조하셨습니다. 따라서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예고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부디 그들이 올바로 이해하고 깨닫기를 바라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약이 예언하는 엘리야는 바로 세례 요한을 일컫는 것이고 메시야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의미하는 것인데 구약의 모든 예언은 그 메시야가 이 땅에서의 정치적 메시야가 되심을 의미하고 있지 않으며 오직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삼 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고 있을 뿐임을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강조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주께서는 이렇게 당시 많은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까지도 그릇된 메시야관을 가지고 주님을 바라보고 있는 것에 대해서 깊이 우려하시며 이를 바로잡아 주기 위해서 이렇게 분명하게 설명을 하고 계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리고 예수의 제자들은 고난당하시는 메시야,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부활하시는 메시야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들 모두가 꿈꾸고 기대했던 메시야는 이스라엘을 가장 위대한 나라로 만들어 줄 최강의 메시야를 원했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자자손손 복을 받는 것을 기대하고 소망했던 우리들처럼 말입니다. 이미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신앙의 동기와 목적과 방향이 현세적인 복을 지향할 때 그것이 얼마나 무지하며 어리석은 일이 될 수 있는지를 누누이 예수님 당시부터 말씀해 오신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메시야는 인간들이 꿈꾸어 온 그런 메시야가 결코 아니셨습니다. 기독교의 복음에 대해서 갖는 어리석은 인간들의 가장 큰 오해는 예수는 우리에게 이 땅에서 복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어리석은 인간들이 저마다 생각하는 고상한 사상과 이념의 틀 안에서 제멋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려는 저급한 시도들을 끊임없이 저질러 온 것이 가장 심각한 복음에 대한 호도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른바 자유주의신학, 민중신학, 해방신학, 퀴어신학, 페미니즘신학 같은 류의 사탄의 신학들이 바로 그 예입니다.
진정한 메시야는 죄인들을 위해서 십자가 위해서 자신을 버리시고 그로 인해 위대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모두 성취하신 이후에 영원한 부활의 소망이 되시기 위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승천하시게 되는, 우리의 참 구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을 배도할 때 다시 이 땅에 오셔서 사탄 마귀를, 모든 어두움의 세력들을 멸하시고 선악에 대해 궁극의 심판을 통해서 마침내 영생과 영벌을, 택자와 유기된 자들을 영원히 구별하시는 재림의 주, 심판의 주가 바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그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바로 그분을 우리의 구주로 믿는 자들입니다. 이 믿음이 아니라면 그것은 구원과 무관한 믿음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