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10 07:09
열왕기상 8장 29절에서 솔로몬은 성전을 하나님께 봉헌하며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옵시며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그는 구구절절이 이스라엘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곳에 나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그 기도를 들어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었습니다.
성전이 존재하는 이유, 여전히 우리가 예배당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에게 간절한 기도의 제목이 있습니까.. 질병의 이유이든지, 사업이나 직장의 문제이든지, 직장이나 가족의 문제, 부부나 자녀의 문제 어떤 문제이든 그 간절한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먼저는 교회로 나아오셔야 합니다. 그 길이 아무리 멀고 시간을 내기 어려워도 예배당으로 나아와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곳에서부터 기도를 시작해서 여러분의 가정에서도 여러분이 있는 어느 곳에서 든 그곳을 기도의 골방이 되게 하셔야 합니다. 성경은 성전을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을 모신 자들이라면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중요하고 시급하며 간절한 기도의 제목이 있다면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십시오. 편안한 집에서 소파에 앉아서도 기도할 수 있지만 성도가 함께 모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이곳에서 여러분의 무릎을 꿇으셔야 합니다. 신앙의 하나님과 성경과 교회가 그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기도를 위해 모이는 일을 폐하거나 게을리 하는 자들이 되지 마십시오.
직장 때문에, 집이 멀리 있기 때문에 기도회에 나오기 어려운 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교회 가서 기도하기 위해 월차를 내시고 조기 퇴근을 하십시오. 그것이 어려우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직장으로 옮기십시오. 마지막 시대를 준비하며 깨어 있어야 할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중심하는, 교회를 중심하는 신앙에는 그런 마음과 열심이 필요합니다. 퇴근을 하고서라도 기도회가 다 끝난 시간이라도 교회에 와서 기도하시는 성도님들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목사가 존경할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성도님들이 되십시오. 그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기도자의 모습입니다.
설교는 유튜브를 통해서 듣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시대에도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시대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거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거나 병원에 누워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주님의 교회에 나아와서 예배하고 기도하십시오. 우리의 몸이 나와서 말씀을 들어야 하고 초대교회가 그러하였듯이 성도는 함께 모여 기도해야 합니다. 쉽게 믿는 것은, 우리의 육신을 한없이 편하게 하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편의를 봐주고 그 이권으로 부패해져 갔던 예루살렘 성전이 무엇 때문에 철저하게 파괴되어 버렸는지를 잊지 마십시오.
유대주의 신앙이 올바른 것이라면 이사야의 말씀을 기억하고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주의 모든 종교지도자들이 먼저 성전의 거룩성을 지키고 보존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전에서 벌어지는 모든 매매 행위에 이권을 챙기며 더러운 소득을 벌어들이는 일에 급급했고 하나님의 성전을 이용해서 그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사악한 짓들에만 여념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 남겨지지 않고 모두 파괴될 수밖에 없었던 것에는 이 같은 하나님을 향한 타락과 부패가 만연한 이유 때문이었고 이것을 막아야 할 종교지도자들까지 모두 부패해 버렸기 때문에 결국 일어날 수밖에 없게 된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지엄한 심판이었던 것입니다.
만민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성전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어 버렸다고 주님은 개탄하셨습니다. ‘강도의 굴혈’ 이란 표현은 예레미야 7장 11절의 인용입니다. 유대교의 종교 지도자들은 모두 그들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성전을 이용하고 더럽혔습니다. 그들이 이 성전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악한 죄악이었다는 것을 주님께서는 이같이 일갈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교회가 황금의 우상, 맘몬을 숭배하는 우상 숭배의 전당으로 전락해 버린 이 극악함에 대해서 주님은 분노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부패해 버린 유대주의를 보면서 오늘 이 시대의 교회를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교를 보십시오. 왜 이토록 성전의 기능은 오염되고 부패하고 타락해 버렸고 하나님을 향한 예배는 저급한 인간의 쇼로 전락해 버린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거하시지 않는 모든 종교적인 형식적, 습관적 행위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을 예배하던 출애굽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것처럼 저주스러운 것이 될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형식적으로 예배하며 하나님을 모욕하는 일들이 오늘의 이 시대의 교회에서는 일어나지 않고 있을까요.. 거룩과 순결을 잃어버린 오늘의 교회와 성도와 성직자들, 그들의 예배가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1장 1항에는 이렇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자연의 빛은 만물을 다스리는 주권자요 주님이신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만물에게 선을 행하시기 때문에 마음과 영혼과 힘을 다해 경외하고 사랑하고 찬양하고 사모하고 신뢰하고 섬겨야 한다. 그러나 참 하나님을 예배하는 합당한 방법은 하나님이 친히 제정하셨고 그분의 계시된 뜻에 의해 제한된다. 따라서 인간의 상상과 의향이나 사탄의 암시에 따라 보이는 형태로나 성경이 규정하지 않는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서는 안 된다.’
예배가 형식적이고 세속화되며 인본주의에 오염되면 그것으로 교회는 끝입니다. 그러한 일은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이 임하게 되는 극악한 일입니다. 예배가 무너지게 되면 우리의 신앙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무의미할 뿐 아니라 그것은 죄악과 중대한 범죄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에 의해 매우 잘 짜여진 고안된 예배,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찬양, 사람들을 위한 각종 편의 시설로 채워진 예배당과 각종 부대시설들, 죄를 꾸짖고 회개하게 만드는 복음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감동과 위로와 용기를 주고자 하는 메시지,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몸이신 교회를,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예배를 더럽히는 것입니다.
‘온라인 예배’라는 말은 지옥에서나 있을 법한 용어입니다. 애완동물을 데리고 교회에 오는 것을 허락하고 동물들에게 성례를 베풀어 주는 이러한 미친 짓들은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될 저주스러운 죄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이러한 일을 교회가 허용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중심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가 사람을 떠받들고 그들을 섬기는 우상숭배에 빠졌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