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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곧 하나님께서 보실 때 아무런 열매가 없는 이스라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앙한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서 전혀 하나님을 향한 참된 믿음의 열매를 보지 못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찍어 버리는 일이 일어나게 됨을, 이스라엘이 결국 하나님께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을 주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예고하신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그토록 오랜 시간을 교회에 머물며 참된 복음과 진리를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믿음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 신앙은 가짜입니다. 그러한 믿음은 성경이 말씀하는 구원에 이르는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지식적으로만 아는 것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사탄 마귀, 귀신들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을 지식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믿음의 열매가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를 소중하게 여기며 말씀을 듣는 일과 함께 기도하는 일에 진정한 믿음의 열매를 보이는 자가 참된 신자입니다. 자기를 사랑하고자 하는 모든 육체의 소욕과 싸우며 오늘도 어떤 불이익이 와도 진리를 따라 행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그 사람이 진정한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 계명과 법을 지키며 구별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언제나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고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이 가장 우선순위가 되어 있는 그 믿음의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어야 그가 진정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향한 그런 진실한 믿음을 소유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지도자들은 모두 부패했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신앙은 모두 하나님께서 인정받을 수 없는 아무런 열매가 없는 거짓된 믿음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갈라디아서 5 22~24절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말 못 박았습니까.. 진정 우리 자신을 위하고자 하는 모든 욕망들을 욕심들을 우리의 세속적이고 육적인 열정들을 모두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 분명합니까..

 

거짓 예배로 가득 찬 예루살렘 성전은 결국 하나님에 의해서 철저하게 파괴되어 버립니다. 이는 유대교와 이스라엘 전체에 대한 사형선고이며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우리는 유대교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 것을 통해서도 우리는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릇된 복음, 변화되지 않는 믿음은 가차 없이 지옥의 멸망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마태복음 7 16~21절에서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우리의 행위로 삶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예배에 대한 열정으로 말씀과 기도의 자리를 그 무엇보다 사모함으로 증명되는 것입니다. 쉽게 예수를 믿는 길은 없습니다. 우리의 육신을 편하게 하면서 따를 수 있는 십자가의 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사랑이 있어야 갈 수 있는 길이 주께서 말씀하신 좁은 길입니다. 열매로 우리의 믿음과 우리가 가진 하나님과 지체들을 향한 사랑은 드러나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거기에 구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령은 오늘도 그렇게 변화되어 가도록 역사하시며 우리를 죄악에서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 20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신앙하는 일 가운데 어떤 것도 소홀히 할 수 있는 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오늘도 쉽게 범하고 있는 계명들과 신앙의 거룩한 의무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 죄가 되는 일들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게 되는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과 행위가 우리의 삶이 더욱 성숙해지고 더욱 그리스도를 닮아가고자 하는 일에 집중되어 지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을 총체적으로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 심기워진 것이 진정한 구원의 씨앗인지를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교회의 역사 속에서 그 어느 시대도 경건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처럼 방만하게 하나님을 신앙한 자들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심히 두려워해야 하고 우려해야 할 일들입니다. 차든지 더웁든지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입에서 토해 내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허울뿐인 유대교에 대해서 매우 강력하게 질타하셨습니다. 그들의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신앙에 대해서 조금도 희망의 여지를 두지 않으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철저하게 파괴되었다는 의미는 그들의 신앙을 철저하게 인정하지 않으시고 그 거짓된 믿음으로 드리는 모든 제사를 예배를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영원히 받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의 의지를 그들에게 보이신 것입니다. 이제 유대주의자들이 드리는 모든 예배를 하나님께서는 거절하시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진실한 믿음의 예배를, 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께서는 받으실 것임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거짓되고 위선 된 신앙과 타락한 예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성전을 훼파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동일한 그릇된 신앙으로 하나님을 신앙하는 이 땅에 세워진 수많은 교회들이 있다면 외형은 존재할지 모르지만 그런 교회에서 행하는 예배를 하나님께서는 역겨워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사야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이사야 1 11~13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것은 마음이 담기지 않은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예배입니다. 하나님을 전혀 경외하지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형식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가장 싫어하십니다. 차라리 자신의 믿음 없음을 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대속해 주신 그 은혜가 믿어지고 그 사랑에 감격할 수 있기를 기도하는 것이 먼저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 없이 하나님을 신앙하는 척하는 것이 가장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만나기를, 그 십자가의 위대한 대속의 은혜와 그 사랑을 경험할 수 있기를 기도하는 것이 정말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모든 거짓된 믿음과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믿음에서 나를 건져 주시기를 기도하십시오. 주님을 만날 수 있기를 소원하십시오. 더욱 간절히 당신의 영혼을 위해 주가 말씀하신 바를 행하십시오. 그 위대하신 사랑을 우리가 알고 느끼고 체험하는 것이 가장 우선입니다. 신앙은 결코 머리로만 믿는 것이 아닙니다. 이성이나 일시적 감정 안에만 머무는 신앙은 결코 올바른 믿음이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을 만나셔야 합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유일한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습관과 형식에 따라 종교적인 관성만으로 교회를 오가는 것은, 사람들의 인정에 목말라하고 자기를 드러내기 위한 그릇된 동기와 목적으로 종교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죄악입니다. 불신앙입니다. 평생을 교회를 다녔어도 영생에, 구원에 이를 수 없는 거짓된 믿음입니다.

 

성전이 타락하고 부패하고 오염된 것은 그들의 신앙이 부패하고 타락하고 오염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대의 교회가 타락하고 인본주의로 오염되었고 예배가 부패하게 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신자라 이름하는 자들의 신앙이 거짓이며 타락으로 물들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성경으로 복음으로 돌아가 예배가 회복되고 하나님을 향한 신본주의의 신앙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은 유대주의만큼 부패하고 타락한 것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오게 될 뿐입니다. 주님께 긍휼과 자비를 구하십시오. 형식과 습관뿐인, 나 자신을 십자가 못 박지 않은 채 위선과 가식으로 얼룩진 우리의 신앙을 회개하고 부디 우리를 만나 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관통 당한 신앙이기를 간구하십시오.

 

예수께서는 세상이 아니라 성전이 타락한 것에 대해 진노하셨습니다. 세상이 지금 문제가 아닙니다. 정치 지도자들이 바로 서면 세상이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타락한 그리스도인들이, 죄악에 오염된 교회가 문제입니다. 인간에게 즐겁고 감동적이고 유익한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인간의 편의와 인간의 자유로운 생각이 결코 침입할 수 없는 오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참된 예배가 있었다면 예루살렘 성전은 결코 무너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참된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삶의 아름다운 열매로 성도의 성별된 삶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그 예배를 그 기도와 거룩한 찬양을 받으십니다. 주일 예배가, 거룩한 주일의 성수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성도의 모든 거룩하고 경건한 모임이 소멸되고 있습니다. 올바른 찬양, 성경에 입각한 설교, 참된 성찬과 아름다운 성도의 영적인 교제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신앙은 관념화되고 형식화되고 습관화되고 있습니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해도 울지 않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정치가 경제가 이 세상이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세상의 다른 문제에 대해, 정치에 관여하시거나 다른 문제에 대해서 질타하고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사회의 다른 문제들에 주님은 간섭하지 않으셨습니다. 참된 복음이 없어 율법과 죄 아래 고통 당하는 영혼들,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이 땅에 세워진 하나님의 임재의 상진인 성전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교회는 성도는 어디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까.. 정치의 개혁입니까, 사회의 혁신입니까.. 그러한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본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관심은 성전, 하나님을 향한 참된 예배에 있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존재하는 목적과 이유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올바로 이루어지면 세상은 하나님께서 통치하고 다스리심으로 평화와 번영과 안정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무너지면 그 시대가 무너지도록 하나님은 역사하셨습니다. 부디 이 진리를 한국교회가 너무 늦지 않게 깨닫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하나님과 화목이 가장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화목하십니까.. 공생애의 시작과 끝을 성전에서 더럽혀진 하나님의 집을 정화하시는 일로 보내신 주님, 우리에게 어떤 중요한 메시지를 주시기 위함인지를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전이 타락한 것은 영적인 지도자의 타락이 불러온 결과였고 지도자의 타락은 성도의 타락으로 이어지게 되었으며 성도들의 타락은 결국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결론지어졌습니다. 한 국가 한 시대의 교회와 성도의 영적 건강의 척도는 바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모든 관심은 이 땅에 세워진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신앙의 고백을 가진 참된 믿음을 소유한 성도들의 영혼에, 그리고 그들의 하나님을 향한 진실된 예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 하나님의 집 부터 그 심판이 시작될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은 교회부터 성도들부터 두려운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됨을 기억하십시오. 시대가 타락한 모든 이유를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묻지 않으시고 교회에게 바로 우리들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교회가 순결하고 거룩해야 합니다. 교회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성전이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주님은 그것을 보셨습니다. 인간이 중심이 되어 버린 인간을 높이는 성전은 존재의 가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좋은 것은 하나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만을 영광스럽게 기쁘시게 하는 곳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성도의 거룩하고 순결한 삶의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사람을 좋게 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 누구든 예배를 변질시키고 더럽히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교회를 더럽히는 자, 사적인 목적과 동기를 위해 교회에서 활동하는 것을 결코 용인할 수 없습니다. 공동체를 흔들고 질서를 허물며 권위를 거절하는 자에게는 권징과 치리를 통해서 반드시 회개시키며 바른 신앙을 갖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교회의 거룩성을 지키는 일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성전을 정화하시며 유대주의 종교지도자들의 묵인하에 관행처럼 이루어지는 모든 상거래를 중지시키시고 이를 엄단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좋게 볼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이권을 파괴하는 주님의 이 같은 행위는 그들의 분노와 예수를 죽이고자 하는 동기를 더욱 충만하게 했을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산헤드린 공의회를 일컫는 말로 그들은 오래전부터 예수를 죽이기로 공모해 온 자들이었습니다. 성전에서 보여준 예수님의 이 같은 과격한 행동은 분명히 그들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었으며 그들이 성전에서 장사를 하는 자들을 통해서 누리고 있던 사악한 이권에 대해서 상당한 손실을 입히게 되는 일이었기에 예수를 죽이고자 하는 그들의 간절한 사악한 욕망에 기름을 끼얹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어떻게 예수를 죽일지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논의를 하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저 부패한 유대주의 종교지도자들에게 죽임을 당하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면벌부를 발행해서 엄청난 수입을 올리고 있던 로마의 교황청을 향해서 비수를 날린 루터를 파문하고 그를 제거하려 한 것과 마찬가지로 황금에 대한 추악한 탐욕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임을 성경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악을 행하는 불의한 악인들은 선에 대해서 의 자체이신 그리스도에 대해서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예수를 두려워했고 많은 이들은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과 그 행동의 교훈을 기이히 여기고 있었습니다. 누구도 그 같은 권위 있는 말과 행동으로 그들이 믿어왔던 그릇된 신앙을 질타하고 비판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죄요 악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성전을 더럽히며 형식적인 종교생활에 찌들어 있었던 많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이 같은 모습을 통해서 큰 충격을 받고 있었습니다. 산헤드린이 즉각 공개적으로 예수를 죽일 수 없었던 것도 이 같은 대중들의 반향에 대해서 그들은 신중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이같이 유대주의 모든 종교 지도자들에게 반감과 두려움을 이끌어 낼 만큼 강력한 권위를 드러내고 계셨고 이로 인해서 자신의 수난과 죽음에 더 한발 다가가고 계셨습니다.

 

교회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사적인 욕망을 채우려는 저급한 자들이 교회 안에는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인정과 교회의 직분을 탐하며 자기들의 권리를 내세우고 권력을 갖고자 하는 한심한 사람들이 예수님 시대에도 지금도 교회 안에 기생할 수 있습니다. 유대주의자들은 자기들만의 하나님을 만들어 놓고 엉터리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이것이 성전을 그들이 잃어버리게 된 이유였습니다. 여전히 그들의 신앙은 변하지 않았고 그들의 파괴된 성전은 여전히 세워지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성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는 우리의 영혼이 성전이며 그 거룩한 마음의 성전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이 함께 모여 공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에클레시아, 성도의 모임으로서의 교회가 이제 존재할 뿐입니다. 그 성도의 거룩한 모임의 핵심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합당한 예배와 그리고 성도들의 기도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몸이신 이 교회의 거룩성과 그 영광을 지켜 나아가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듦에 대해서 주님께서 진노하시며 모든 자들을 내어 쫓으셨듯이 우리는 이제 우리의 영혼을 거룩하고 성결하게 언제나 예수의 보혈로 정결케 하는 일에 힘써야 하며 더 나아가 교회의 거룩성을 지키기 위해,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동성애를 인정하며 세속적인 인본주의 정신과 이념을 교회가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교회는 영적으로 반드시 타락하게 될 것입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가 저주를 받은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열매 없는 아무런 변화 없는 그릇되고 거짓된 믿음으로 교회를 다니는 형식적인 종교 생활에서 벗어나십시오. 그 길에는 구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졌고 성전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성전을 중심한 위선적이고 자기 의에 도취된 거짓 믿음은 반드시 사라져야 할 죄악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오직 예수만이 우리의 구원임을 우리는 믿고 고백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께서 부디 다시 이 땅에 교회들을 깨워 주시고 다시 성경을 돌아갈 수 있도록, 거룩한 부흥을 통해서 우리를 다시 거룩하고 순결하게 회복시켜 주시기를 우리는 이 마지막 때에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 가운데서라도 부디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기를 힘 다해 간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교회와 예배를,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참된 믿음을 회복시켜 주시기를 다 함께 기도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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