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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 23~24절에 주님께서는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 13~15절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타인에 대한 선행적 용서는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받는 일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주께서는 십자가에서 이룬 대속을 통해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는데 우리가 만약에 우리에게 죄를 지은 자를 용서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우리의 죄를 용서받을 수 없으며 나아가서 우리가 간구하는 어떤 기도에 대해서 응답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 자는 자기의 죄가 하나님께 용서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려는 자가 아직도 용서하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그래서 한 집에 살면서 말조차 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을 상대로 자신에게 잘못한 것으로 인해서 상종조차 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의 어떤 기도도 응답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죄조차도 하나님께 용서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영혼은 더욱 피폐해질 것이며 어떤 기쁨도 감사도 감격도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용서하다’의 원문의 뜻은 버리다라는 의미입니다. 나에게 행한 그의 잘못을, 그 모든 기억을 버리는 것, 그것이 용서입니다. 계속 상처와 아픔을 곱씹고 기억하고 있으면 결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시편 103 12절은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멀리 던져 버리셨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8 12절은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겨 놓으시고 기억조차 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시며 완전한 용서를 약속하고 계시는데 그 모든 죄를 사함 받은 죄인들이 자신에게 잘못을 한 또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은 배은망덕한 것이며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자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자의 죄는 용서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런 자의 기도 또한 하나님께서는 듣지 않으신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자신이 신자라 여길지라도 자신의 부모나 남편이나 아내조차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 그리스도의 한 피를 받은 지체들을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그 강퍅함으로 스스로 거듭난 자가 아님을 증명하게 되는 것입니다.

 

용서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람은 성령이 그의 영혼 가운데서 용서를 하지 않으려는 그 완고함에 대해서 견딜 수 없는 가책과 괴로움을 느끼도록 만드십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피 흘리심을 통해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것에 대한 생생한 그 은혜를 우리의 가슴에 선명하게 깨닫게 하심으로 반드시 나에게 잘못을 한 그 대상을 용서하도록 만드십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야 그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자는 오늘도 용서할 수 없는 사람과 용서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두고 하나님 앞에서 가슴을 치며 기도하게 됩니다. 부디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임해서 저 사람을 용서하고 다시 사랑하며 긍휼히 여길 수 있도록 나를 변화시켜 주실 것을 목놓아 기도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역사가 일어나야 그가 하나님의 자녀라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어느 순간 극적으로 서로를 용서하게 하심으로 관계가 회복되게 하시고 다시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이가 되도록 도우십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믿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5 23~24절에서 주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용서하고 화해하지 않은 채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받지 않으심을 기억하십시오. 맺힌 것을 풀어야 영혼이 살아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수평적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수직적 관계에도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용서하고 화해하지 않게 되면 결국 내 영혼이 고사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지게 되고 멀어지게 되며 그런 가운데 기도가 죽게 되고 어떤 기도나 예배도 하나님과 무관한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을 주님께서는 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속에서 제자들에게 교훈하셨습니다.

 

죄가 가로막히면 기도가 응답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베드로전서 3 7절에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에베소서 4 26~27절에는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 분을 풀고 용서하고 화해하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것이 마귀가 틈을 타지 못하게 하는 길임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로 뛰어넘어야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기도가 응답되게 됩니다. 우리의 영혼이 살아나게 됩니다. 용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당신의 영혼의 숨통을 끊어 놓으려는 마귀의 짓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에베소서 4 32절은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는 길에서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은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을, 그들이 부모든 자식이든 남편이든 아내이든 형제이든 자매이든지 용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반드시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은혜와 사랑이 아니면 우리의 힘으로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나게 하십니다. 그런 그를 마침내 용서함으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회복의 능력을, 화해의 역사를 경험하게 하심이 하나님의 뜻임을 잊지 마십시오. 극적인 용서와 화해의 경험이야말로 우리를 신앙을 크게 성장시키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언제든 인간과의 관계까지를 포함합니다. 사람하고 막혀 있는 자, 스스로를 고립시키거나 함께 연합하고 화합하지 않는 자는 이미 그러한 모습을 통해서 그가 하나님과도 올바른 관계에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성전이 기도하는 집임을 강조하시고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일에 중요성을 말씀하신 이후에 주님은 기도의 필수적인 요소로 용서의 문제를 깊이 다루셨습니다. 무화과나무를 통해서 성전의 파괴와 유대주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말씀하신 후에 주님은 우리의 마음속에 새 성전을 세우는 일은 이제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와 그리고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기도임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기도의 필수 요소는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해 우리를 용서하심처럼 우리 또한 우리에게 고통을 준 자들을 용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진리임을 강조하셨습니다.

 

용서를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만 하며 그 용서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해야 함이 가장 중요한 신자의 도리라는 것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전의 휘장을 찢어짐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다면 이제 수평적으로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 과의 관계도 회복해 나아가야 함을 진리는 우리들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가장 위대한 신앙의 대의가 이렇게 선명하게 그리스도를 통해서 전달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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