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1 21:06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의 여러 마을로 다니시던 중에 어느 날 길을 가시다가 제자들에게 문득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제자들은 세례 요한, 혹은 엘리야, 혹은 선지자 중에 하나라고 다양하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사람들이 생각들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주의 종교 지도자들과 달리 다시 이스라엘의 재건과 부흥을 위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내 주신 위대한 선지자들의 부활이나 새로운 선지자 정도로 그렇게 긍정적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그들 모두가 꿈꾸고 기대하는 바대로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아로만 바라보는 매우 희망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메시야 관은 지금까지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나 현대나 이러한 그들의 정치적 메시야를 고대하는 저들의 관점은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왜곡된 어리석은 이해 일뿐입니다. 수없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이적과 기적을 보았어도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메시야 되심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참된 메시야로 우리의 구주로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어떤 지식도 고백도 무의미할 뿐입니다.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이적과 기사를 두 눈으로 직접 보았어도 그리스도의 구주 되심을 믿지 않는 인간의 이 어리석음을 보십시오. 그들의 눈앞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전하시며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모든 능력을 보이셨어도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저 여러 선지자들 중에 하나 정도로만 이해했을 뿐이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예수,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 내가 생각하는 교회와 다르면 언제든 부인하고 멸시하고 마음대로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은 결코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신앙이라 볼 수 없습니다. 이것은 그대로 유대인들을 닮은 그리스도를 배도하는 불신앙이라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앙을 극도로 거부하는 자들은 항상 말합니다. 하나님을 보여주면 믿겠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눈에 보이지 않아서 안 믿는 것일까요..? 그들은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눈앞에 나타나셨어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을 선물로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믿고 안 믿고의 문제는 인간의 이성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는 문제라는 것을 여전히 많은 이들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어도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부인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복음이 먼저 이방인들에게 편만하게 전해지고 그들의 구원의 수가 다 찬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눈앞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도, 참 진리를, 참 복음을 대면하고도 이를 거부합니다. 아무리 보여 주어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을 믿으려 할 뿐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어리석은 한계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은 오직 은혜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믿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구원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어떤 노력과 방법으로도 예수를 믿게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조차도 하지 않으신 일입니다. 우리는 오직 복음을 전할 뿐입니다. 믿게 하시든 믿지 않게 하시든 그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입니다. 오직 믿어지도록 성령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심으로 때가 이르러 믿음을 선물로 주신 자들 만이 예수를 구주로 믿게 될 뿐입니다.
요한복음 6장 36~37절은 ‘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같은 장 6장 65~66절을 보면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 주신 자들 외에는 결코 주님을 믿을 수 없음을 말씀하시자 심지어 많은 제자가 되고자 했던 자들이 주님을 떠났고 다시는 함께 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왜 떠났을까요.. 구원이 자신들의 노력과 의로 말미암은 것이라 여겼던 자들은 도저히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렇게 걸려 넘어지는 돌부리가 되시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다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는 복음이 철저하게 배척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믿음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냥 대충 교회를 다니기만 하면 구원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의 영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로 그 십자가의 복음 앞으로 인도하여 주신 자들이 결국 예수를 믿게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기독교가 말하는 믿음이며 구원입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진정으로 예수를 구주라 고백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구원에 이르게 됨을 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복음 안에서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를 올바로 깨달아 알고 믿지 않게 되면 결국 그리스도에 대한 온갖 그릇된 지식이나 사람의 생각에 치우쳐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을 믿는 사이비 종교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구원과 무관한 신앙이겠지요. 언제나 우리가 저지르기 쉬운 어리석음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필요와 소원과 욕망에 근거해서 이해하고 바라보려는 인간적인 생각들입니다.
우리에게 물질적인 복과 형통을 주시는 분으로, 무조건 나를 사랑해 주시고 어떤 죄를 지어도 다 용서해 주시는 분으로, 무엇을 하든지 다 내가 잘되기를 바라는 분으로, 이 세상의 모든 사회적 약자들과 빈곤한 자들을 위해서, 평화와 평등과 박애를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분으로, 그렇게 각자의 사고와 사상을 바탕으로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바라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사고의 틀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그렇게 규정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생각은 모두 어리석고 무지한 관점일 뿐입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탄생과 그리고 공생애와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하심과 그리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 행하고 계시는 일들과 마지막 날에 이 땅에 다시 오실 주님을 우리가 깊이 알고 깨달으며 그 진리를 바탕으로 그리스도를 알고 고백하는 것이 신앙 안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