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02 08:10
서기관들의 외모를 묘사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들은 긴 옷을 입고 다닌다고 했습니다. 당시 서기관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와 명예와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서 긴 옷을 입었는데 이 의복은 세마포의 통 옷과 땅에까지 닿는 백색의 긴 두루마리 형태의 옷이었습니다. 그들이 즐겨 입던 이 옷의 특징은 옷의 끝부분에 커다란 술이 달려 있어서 일반 백성들과 구별되었는데 이를 통해서 외견상으로 위엄과 영예를 과시했고 더 불어서 이마나 손목에 차는 경문을 더 크게 만들어서 더 눈에 띄도록 매달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사람들에게서 그들이 그렇게 돋보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그들의 외형적인 모습에까지 자기들의 권위를 드러내며 자신들이 특별하게 보여지는 것을 좋아했던 자들이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참된 경건도, 진정한 사랑의 마음도 없었던 자들이 이렇게 보여지는 것으로 그들 자신의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종교성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내면이 충실하지 못할 때 외형적 화려함으로 그것을 대신하려는 이러한 추악한 모습들을 보십시오. 로마 카톨릭의 사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화려함은 내면의 추악함을 덮고 그것을 가리우기 위함입니다. 내면의 진실함이 없으면 화려한 외형과 엄숙한 의식으로 사람들을 기만하려는 악한 의도를 드러내 보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혁된 교회의 목사들은 카톨릭과 같이 권위적으로 보이는 화려한 가운이나 후드 같은 옷과 장식을 입거나 걸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입은 옷을 통해서 거룩한 척 자신들을 드러내고 뽐내고 싶었던 자들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의 위선적인 추악한 인격을 지적하시면서 주님께서는 그들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인사를 받고 높임을 받는,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주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유대 사회에서 이들은 무지한 백성들에 의해서 매우 존경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장터 같은 곳에서 서기관을 만나면 일어서서 경의를 표하며 극존칭인 ‘랍비’라는 호칭으로 그들을 칭했습니다. 그들은 그래서 일부러 시장 같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들을 다니기를 좋아했고 그렇게 뭇사람들에게서 칭송을 받는 것을 즐거워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또한 회당의 상좌, 잔치의 상석을 원한다고 지적하셨습니다. 회당의 상좌는 명망 있는 사람이나 공적인 인물을 위해 마련되어 있는 자리로 회중들의 주목을 받기에 가장 좋은 자리였습니다. 서기관들은 의레 자기들이 그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여기고 있었던 자들이었습니다. 잔치의 상석은 잔치에서 가장 존귀한 자리로 출입구에서 제일 안쪽 정중앙의 자리를 가리키는데 이 자리는 그날 모임의 주인공이 앉는 자리입니다. 예루살렘의 모든 돈이 많은 부자들은 서기관들을 초대하면 이 자리를 제공하곤 했다고 전합니다. 서기관들을 당시 이러한 대접을 받았고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자들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들이 가진 이 추악한 명예욕과 공명심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기는커녕 인간들이 모든 영광을 차지하고자 하는 이 부패하고 타락한 모습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그것을 밝히고 계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높이기보다는 그들은 자기들을 높이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어디서나 VIP 대우를 받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을 즐거워한 자들, 그들이 바로 영혼들을 지옥으로 이끌고 있었던 추악한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신앙 안에 우리의 모습 속에 이러한 요소들이 존재한다면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이것을 깨뜨려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속이 비면 겉이 화려해지기 마련인 것은 세상에서나 신앙 안에나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본질이 약하면 엄밀한 형식으로 그것을 가리우고 숨기려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외식이며 가식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가증한 일들입니다. 모든 권위는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니 스스로 인간 자신을 높이려 하게 되고 그 모든 노력들은 이렇게 어리석게도 외형적인 것들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외적으로 화려해질수록, 무엇인가를 드러내려 할수록 내면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상태에 이르게 될 뿐을 잊지 마십시오.
이 시대의 목회자들이 만약에 서기관들처럼 이미 그들의 외견상의 모습에서부터 그들이 교만하고 탐욕적인 사악한 자들임이 명백히 드러나는 경우라면 많은 사람들이 미혹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타락하고 부패한 모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탄의 종일 수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15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외형적으로 보아도 부와 명예와 권력을 누리는 부패한 종교 지도자들에게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미혹되지만, 문제는 검소하고 겸손하기까지 하며 심지어는 바른 신학과 교리를 가르치는 목회자들 중에서도 노략질하는 이리 같은 자들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물질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진리인 것 같으나 진리가 아닌 사악한 인간의 논리로 영혼을 사냥하는 자들입니다. 항상 사회적인 약자의 편에 서고 정의와 박애를 강조하며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이야기하며 세상을 품을 것을 외칩니다.
수많은 교회에 초청을 받아 설교를 하고 여러 책들을 저술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와 존경을 받는 자들 중에서도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가짜들이 있습니다. 인본주의에 깊이 물들어 언제나 세상과 사람의 편에 설 뿐 하나님의 편에, 진리의 편에 서지 않는 영혼들을 미혹하는 거짓된 설교자들이 존재합니다. 양의 옷을 입은 이리 같은 자들을 경계하셔야 합니다. 개혁주의의 옷을 입고도 얼마든지 이리같이 영혼을 유린하는 자들이 지금 이 시대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이 같은 자들을 삼가하라고 특별히 경계하셨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영혼을 지키는 매우 중요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미혹되는 자들은 결국 진리에 속한 자들이 아니기에 그런 자들에게 미혹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의 진리를 올바로 분별하고 깨닫지 못하면 여러분들도 결국은 배도하는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가 외치는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 인간적인 매력 때문에, 수려한 외모나 현란한 논리와 지식 때문에 그를 좋아하게 만드는 모든 자들을 의심하십시오. 그들은 그리스도의 종이 아닐 수 있는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