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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경멸하고 멸시하는 그 모든 그들의 논리 끝에 그들이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습니다. .. 예수를 배척한지라..’ 여기서 배척하다라고 번역된 원문의 의미는 그들이 걸려 넘어지고 있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마치 덫에 걸려들 듯이 나사렛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걸려 넘어지고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누군가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모든 복음의 내용이 도무지 믿을 수 없고 믿겨지지 않는 경멸과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는데 그렇다면 바로 그 자가 이 복음에 걸려 넘어지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 7~8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를 배척한 것을 도리어 그들이 덫에 걸려 넘어진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분명 그들이 어려서부터 잘 알던 예수였지만 그분의 말씀에서 신적인 권능과 지혜를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을 부정했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고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믿고 싶었던 것입니다가난한 목수의 아들에게서, 그들이 잘 알던 그 평범한 집안에서 자란 아이가 이제껏 본 적이 없는 선지자처럼, 위대한 랍비처럼 그렇게 말하고 그런 위엄을 보이는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 여기고 싶었던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 올바른 복음과 교리를 통해서 참된 믿음의 길로 인도함을 받고도 그것을 거절한 모든 사람들은 복음 때문에, 자신들이 가진 고정관념과 진리에서 빗나간 사람의 생각 때문에 결국 덫에 걸려 넘어지는 자들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진리는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선입견과 어떤 인간적인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계십니까.. 개혁신앙과 교리를 오랜 시간 동안 접하면서도 그것이 이제껏 여러분이 가지고 있던 신앙과 지식과 충돌을 일으킬 때 이 문제를 말씀과 교리 안에서 더 분명하게 확인해 보려 하기보다는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그릇된 신앙의 지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개혁파 정통주의의 신학과 신앙에 대해서 여전히 반신반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돌아보십시오.

 

무엇인가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지식이나 체험에 반한 말씀을 듣게 될 때 우리의 무지함을 인정하고 돌이키기보다는 새로 깨닫게 된 진리를 배척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는 우리에게 오래된 지식과 체험에만 기대서 진정한 신앙의 가치들을 외면하고 부정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지를 돌이켜 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인본주의입니다. 사람의 생각과 관점에 여전히 침착하고 있는 불신앙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아는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고 내가 알고 있는 구원관과 믿음은 그토록 엄격하지 않다는 이유로 기독교의 구원과 믿음과 영생은, 축복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은 마음을 여전히 품고 계신 것은 아닙니까.. 우리의 생각은, 성경에서 벗어난 우리의 오래된 지식은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성경을 통해서 진리를 통해서 증명되고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더 깊이 성경을 연구하면 반드시 그 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고 무엇이 참된 진리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무서운 것은 고착되어 버린 우리의 아집입니다. 우리를 이토록 단단하게 만들어 버린 고정관념입니다. 우리의 편견입니다. 이것이 깨어지지 않고는 결코 바른 진리, 참된 믿음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엄중하게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성경을 통해서 개혁되고 또 개혁되고 또 개혁되어 나아가야 합니다.

 

걸려 넘어지는 자들이 되지 마십시오. 그렇게 의심스럽다면 더 깊이 복음 속으로 개혁주의 신앙 속으로, 정밀한 교리와 청교도들의 성경을 보았던 그 넓고 깊은 시야 속으로 들어가 보십시오. 그 속에서 여러분은 분명히 더 밝은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를 믿게 되면, 진정으로 거듭나게 되면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오직 진리만을 수용하게 되고 나를 고집하던 모든 그릇된 관념과 철학과 인간 중심의 사고와 사상의 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것이 얼마나 진리에서 벗어난 것인지를 성령께서는 선명하게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거듭났다고 말하면서도 인본주의적인 사고의 틀 속에 갇혀서 모든 것을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성경도 그렇게 해석한다면 그의 거듭남은 가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령은 진리를 통해서 우리의 그릇된 모든 아집과 성경에서 벗어난 우리의 사고를 깨뜨리시고 교정하십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그릇된 생각과 관념을 가지고 살아왔는지를 발견하며 소스라치듯 놀라게 됩니다. 비로소 우리의 죄와 어리석음의 실체를 보게 되며 그리스도 밖에서의 우리의 삶이 총체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중생한 자가 되면, 회심을 경험하게 되면 뱀이 허물을 벗듯이 그렇게 세상과 나에게 속한 모든 것이 내게서 분리되면서 그리스도 밖에서의 나의 모든 사고와 경험과 생각과 우선순위가 실체를 드러내며 그것이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도 교회 안에는 있지만 진정한 거듭남을 경험하지 못함으로 인본주의적인 모든 요소들을 끌어안고 그 위에 신앙처럼 보이는 것을 두르고 있는 형태의 그릇된 신앙들이 목격됩니다. 그 모든 것이 벗겨져야 합니다. 성령의 은혜로 모든 육에 속한 것들의 정체가 드러나게 되고 나 자신이 진정으로 거듭난 회심한 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충격적으로 깨달으며 그 계기를 통해서 진정으로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는 참된 회심을 경험해야 그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거듭난 자는 이러한 우리 안에 있는 여전히 내가 중심이 되어 있는 사고와 그릇된 신앙을 말씀을 통해서 그 양심에 공격을 받게 되면 깨닫고 돌이켜 회개하며 그것으로부터 점차 벗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말씀을 통해서 여전히 내가 중심이 되어 있는 불신앙의 모습들에 대해서 비수처럼 그것이 찔림을 받을 때 이것을 거부하게 됩니다. 받아들이지 않고 인정하지 않으며 거듭나지 않은 이성의 판단과 생각을 여전히 더 붙들고 그것에 집착함으로 진리에 반기를 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명백한 양극의 반응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자연인들이었고 그들은 전혀 거듭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 증거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보여준 반응들입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성령을 통해서 거듭났다면 그들의 마을에서 메시야가 성장하셨다는 사실에 대해서 지극히 기뻐하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생각 안에서 우리를 형성하고 있는 모든 고정화된 사고의 틀 안에서 하나님을 신앙하고 있는 것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거듭난 신앙은 자아에 속한 모든 것이 해체되고 성령을 통해 새로운 지식과 질서가 우리 안에 부여됨으로 그 가치를 따라 온전히 살아가고자 하는 근본적인 변화가 수반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을 입는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거듭나지 않으면 우리의 사고의 틀은 여전히 인본주의, 자기중심의 보편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신앙하기보다는 인간의 이성에 따라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 더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일상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는 언제나 사람을, 나 자신을 더 사랑하는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머리로는 신본주의를 따라지만 삶으로는 여전히 인본주의를 인간이 중심이 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거듭난 자는 이전과 다른 사고, 다른 가치, 다른 우선순위를 따라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버린 그 삶을 고집하게 됩니다.

 

나사렛 사람들의 사고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마리아의 아들 목수,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 누이들의 오라버니로 여기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신앙은 이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 우리가 갖는 보편적인 이성적 관념 그 너머를 보는 것입니다.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한 가치, 그 존재의 영광, 그리스도의 그 사랑을 경험하고 깨닫고 체험하는 것입니다. 오직 그것은 성령을 통해서 가능한 일입니다. 신앙이 인간의 관념의 틀을 깨고 그리스도를 경험하게 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하게 되면 그것은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경험적인 신앙의 그 한계는 마리아의 아들 목수, 그 이상으로 그리스도를 결코 인식할 수 없는 바로 거기까지 일뿐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닌다고 하지만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적인 관념의 범위를 뛰어넘지 못합니다. 그 결과는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종교 생활을 고집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디 이 진리를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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