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4 07:41
원수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기 위해 기회를 노리고 있는 매우 위험한 상황임에도 주님은 자신을 숨겨 몰래 도성으로 잠입하지 않으시고 당당하게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기 위해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은 어느 한순간도 비굴하거나 뒤로 물러가지 않으셨습니다. 죄인들을 위한 지극한 사랑으로 주님께서 자신이 선택하신 그 길을 용감하게 의연하게 한 걸음 한 걸음 향하고 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완전한 승리를 내다보고 계셨고 십자가의 죽으심 그 이후의 부활과 영광을 바라보고 계셨기에 주님은 결코 침울해 하시거나 주저함 없이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계셨습니다. 부활에 대한 소망과 확신이 없다면 기독교의 믿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주를 위해 우리의 생명을 버려야 할 때, 우리의 믿음을 지켜야 할 그 어려운 순간들을 담대하게 맞이하고 그 모든 시간들을 잘 감당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께서는 이곳에 당도하셨을 때 두 명의 제자들을 보내서 나귀를 준비시키셨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전지하고 전능하신 메시야의 모습이 잠시 드러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주님은 이미 어느 곳에 무엇이 준비되어 있는지를 모두 알고 계셨고 심지어 나귀 주인이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해서도 다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너무도 많은 불필요한 걱정을 하고 일어나지도 않은 불행을 미리 상상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대해서, 우리가 지금 당면한 모든 문제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계시는 것처럼 어두운 생각을 하고 부정적인 말을 하고 근심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모두 세고 계시는 하나님이심에도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에 대해서,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언제나 염려하고 근심하며 우려합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렇게 할 수 있는 믿음을 구하십시오. 우리가 근심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병에 걸렸습니다. 우리에게 기본적인 지식은 필요합니다. 즉 이 병을 치료하려면 어떤 과의 진료를 받아야 하는지, 어떤 진료의 순서를 거쳐서 최종적으로 이 병을 치료할 병원으로 가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병이 치료되기 위해서 어떤 효과적인 노력을 해야 하는지 이러한 기본적인 지식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다음은 이제 모두 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어떤 의사를 만나게 되고 어떻게 치료를 하게 될지 수술을 받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이 병이 나을지 그렇지 않을지까지도 모두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섭리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 위에 우리를 올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안고 일어섬을 아시고 우리의 마음까지도 모두 살피시는 주님 앞에서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질 것을 믿고 하나님 안에서 참 평안과 안식을 얻으며 우리는 더욱 하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게 하신 선하신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알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고난을 고통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만일 누가 왜 이렇게 하는지 물으면 주가 쓰시겠다고 하라’ 이 한마디만 하면 족하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한글 성경에는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헬라어 원문에는 찾아볼 수 없는 구절입니다. 그 대신 ‘즉시 되돌려 보낼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나귀를 사용한 이후에 즉시 다시 돌려보내 주겠다고 말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잠시 빌린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그 나귀 새끼는 사람을 태워 본 적이 없는 나귀였습니다. 즉 길들여지지 않은 나귀였다는 뜻입니다. 길들여지지 않은 말이나 나귀는 거칠고 사납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태운 나귀는 어떤 소동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빌린 나귀, 그것도 잘 길들여지지 않은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는 주님의 모습을 보십시오. 주님은 빌린 배를 타시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 다니셨고 빌린 다락방에서 유월절 마지막 만찬을 제자들과 나누셨습니다. 빌린 무덤에 장사되셨고 마지막 예루살렘을 향하시는 길에는 빌린 나귀를 타셨습니다. 훌륭한 안장 대신 제자들이 벗어서 깔아 놓은 겉옷 위에 주님은 앉으셨습니다. 이 모든 모습이 메시야의 겸손하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지막 지상에서의 시간 속에서도 주님은 자신을 높이지 않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모든 시간들이 주님께 고통이셨음에도 마지막 가시는 길까지도 주님은 세상의 영광을 거부하시고 가장 낮은 모습으로 자신을 겸손히 치장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께서 빌린 인생을 이 세상에서 사셨던 모습입니다.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시는 생애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조차도 이 세상에 계실 때 모든 것을 다 빌려 쓰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니기에 잠시 있다가 모두 사라져 버릴 것들이기에 우리에게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게 하시기 위해 주님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불만족과 불평은 소유하려 하기에 생기는 것들입니다. 높은데 마음을 두기 때문입니다. 잠시 머물 세상을 지나가면서도 우리는 악착같이 세상의 좋은 것들을 소유하고 싶어 합니다. 천국을, 영생을 소유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으면서도 이 세상에서 우리가 누릴 것들에 대해서는 그것을 간절히 얻고자 합니다. 그리스도의 생애를 바라보십시오. 영원한 나라에서의 그 영광을 바라보는 자들이 이 땅에서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그리스도를 통해서 배우십시오. 그래야 우리의 영혼과 마음에 쉼을 얻고 평강과 자족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주가 쓰시겠다 하라라고만 전하라고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모든 문제가 종결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위해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주가 쓰시겠다 하라라는 압도적인 명령 하나로 우리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필요한 모든 것을 이렇게 예비하시고 준비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시는 것은 이 세상을 지나가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연단하시고 우리의 믿음을 절대적이고 절박한 믿음으로 훈련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