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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바로 이 위대한 계명에 순복하기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자들이고 이 계명을 지켜 행함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명해야 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폭포수처럼 부으시는 사랑과 파도처럼 밀려오는 은혜가 우리의 영혼을 뒤덮을 때 우리는 기꺼이 하나님을 위해 우리의 생명을 버릴 수 있고 지체를 위해서 우리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자리에까지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위대하심입니다. 그 사랑의 힘으로 하나님 사랑과 지체를 향한 사랑을 우리 안에서 완성해 나아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께서 가장 큰 계명이라고 말씀하신 이 두 계명 모두 모세오경 속에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계명이었으며 이 두 계명은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십계명의 요약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가장 으뜸인 계명은 하나님만을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 다해 사랑하는 것뿐만 아니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까지를 포함하여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두 계명의 모든 계명의 요약이기 때문입니다. 613가지나 되는 율법의 세부 조항들이 다 무슨 소용입니까.. 무엇이 정말 중요한 계명입니까.. 하나님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혼도 깊이 사랑하지 않는 자들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율법과 전통을 지키라고 말할 어떤 자격이 있다는 말입니까.. 하나님도, 지체들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그보다 더 중요하게 지켜야 할 다른 가치가 무엇입니까..

 

산헤드린의 종교 권력가들은 오직 그들 자신을 사랑했을 뿐입니다. 지독하게 자기 자신들 만을 사랑했을 뿐 그들은 하나님도 하나님의 백성들도 사랑하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하나님을 신앙하는 길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며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유대주의자들은 결코 갈 수 없는 길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그와 같은 거짓된 삶을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겠습니까.. 아무리 구약의 성경을 연구하고 더 많은 규범들을 만들어 엄격히 그것을 지키도록 자기 자신들도 노력하며 사람들에게도 그것을 강요했어도 그것은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굳게 신봉하고 지키려 했던 가치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증한 것들이고 위선적인 것들이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자기 자신만을 지독하게 사랑하는 저주스러운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 하나님의 사랑이 시켜서 그리스도의 한 피 받아 함께 지체된 자들을 조건 없이, 편견 없이, 이유 없이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모습을 하나님께서 보실 때 하나님을 사랑하며 지체들을 사랑하고 있는 모습으로 여겨 주실까요.. 우리는 무엇 때문에 예수를 믿는 것입니까.. 우리는 왜 교회에 나아오는 것입니까.. 복음의 진리가 우리에게 말씀하는 바 그 가치를 좇지 않고 따르지 않을 것 같으면 우리는 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다고 주님은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계명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성도는 이 계명을 지키는 일을 위해서 마음과 목숨과 뜻의 힘을 다 쏟아부어야 함이 마땅한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믿음이요. 이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하실 것을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이 위대한 계명을 지키며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공해 주십니다.

 

신자의 심장을 쪼개어보면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지체들을 향한 사랑으로 채워져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말속에는 메마른 이성의 말이 아닌 진심 어린 사랑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가 어떤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것이 사랑으로 하는 말인지 아닌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면 눈물이 있고 기도가 있으며 인내가 있습니다. 화를 내지 않고 표독한 표정을 짓지 않습니다. 많은 말을 하지 않고 행동과 삶으로 보여줍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저울에 달렸을 때 모두 부족함을 보일 것입니다. 그러니 성도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수를 믿으면서도 하나님과 사람들에 대해서 분노하고 불평하면서 교회를 다니시겠습니까.. 아니면 진정으로 하나님을 마음과 생명과 뜻과 힘 다해 사랑하는 일에, 그리고 지체들을 나 자신만큼이나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에 더욱 마음을 쓰고 내 시간과 물질을 기꺼이 드리며 이 일에만 전념하시겠습니까.. 그렇게 율법에 정통하여 수백 가지의 규범을 만들어 지키던 바리새인들이었지만 그들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같은 민족들을 사랑하지 않았던 이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모습을 보십시오. 수많은 교인들이 하나님을 신앙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들의 신앙의 단면을 본다면 이러한 하나님과 지체들을 향한 사랑은 그들의 마음과 영혼 가운데 어느 정도의 부피를 차지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디 진실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주일이면 한 시간 교회에 나가서 예배만 참석하는 형식적인 종교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 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도, 지체들을 향한 사랑도 전혀 담겨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주께서 말씀하시는 위대한 계명을 따르는 성도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러한 믿음은 구원에 이를 수 있는 믿음이 될 수 없습니다.

 

이 서기관은 예수님의 이 답변에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반복해서 흠잡을 곳이 없는 예수님의 답변에 대해서 연이어 감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라고 신명기 3 35절의 말씀으로 예수님의 말씀에 맞장구를 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논쟁을 벌인 산헤드린의 다른 권력가들과 달리 이 서기관은 예수님의 말씀이 참이라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진심으로 동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어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더 나은 것이라고 답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 1 11~13절에서 이미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나님을 향한 가증한 제사를 거절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이것은 바리새인으로서 매우 이례적인 고백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이웃들을 전혀 사랑하지 않았고 오직 형식적인 종교 행위로서의 모든 제사와 제물을 드림의 의식적인, 겉으로 보여지는 종교주의만을 지향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자들 가운데서 이 서기관이 이러한 고백을 했다는 것은 그가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의 의미를 상당 부분 깨달았고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를 죽이기 위해 그의 결점을 찾고자 혈안이 된 자들 가운데서도 이렇게 예수님의 지혜로우신 답변에 대해서 지적으로 동의하며 기꺼이 그것을 인정하고 있는 자도 있었다는 것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유대주의 종교 권력가들을 향해서 냉소적이셨고 비판적이셨습니다. 그 악인들을 온화하게 대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이 서기관에 대해서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주님의 이 말씀이 이 서기관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구원의 선언은 아닙니다. 단지 산헤드린의 모든 사악한 자들과 달리 이 서기관의 답변과 그의 고백의 내용에 관해서 주님은 그가 여느 어리석은 유대주의 종교 지도자들과는 다른 모습이 있음을 인정하시면서 그에게 계속해서 진리를 향해, 바른 방향을 향해서 나아갈 것을 촉구하시고 결단하도록 고무시키고 자극하신 의미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원을 향해서 나아가는 가운데 일어나는 일들은 성령께서 그의 마음과 지성의 문을 열어 진리를 하나씩 깨닫고 이해하며 동의하도록 역사하시는 일들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구원의 예비적 단계에 있는 자들의 영혼 가운데서 일어나게 됩니다. 전에는 전혀 이해되지 않고 동의조차 되지 않던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고 깨달아지기 시작하면서 깊이 마음으로 동의가 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반응이 일어난다는 것은 그의 영혼이 구원에서 멀지 않음을 방증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친히 가장 위대한 계명 두 가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지체들을 사랑하는 것, 성령은 우리가 바로 이 두 계명을 우리의 삶에서 실천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로 우리를 세워 가심과 우리를 변화 시켜 나아가심이 우리 가운데서 일하심의 목적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깨뜨려 가십니다. 사랑의 대상이 우리 자신에게서 하나님과 지체로 확장되어 가도록 우리를 만들어 가시는 일들을 행하십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에 눈뜨게 하시고 그 사랑의 힘이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음을 깨달아 가도록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할 방법을 전혀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가장 사랑하도록 우리의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성품을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조금만 우리가 성경과 은혜와 멀어지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지체들에 대해서 마음이 멀어지게 되고 아주 자연스럽게 그 사랑의 방향이 다시 우리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만을 사랑하며 살아가면 가장 불행해지도록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된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진심으로 사랑할 때 가슴 벅찬 감동과 감사와 희열을 맛보며 살아가도록 지어진 존재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이 일을 위해 우리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보이십니다. 우리를 움직이시고 그 일들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진정으로 주님 나의 삶이 더욱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일에, 그리고 지체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에 사용되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런 기도를 기뻐하시고 우리의 삶을 그렇게 인도해 나아가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얼마나 많은 부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지체들을 사랑하며 교회를 사랑하는 일에 드려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지체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을 깨닫기를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향해 온 마음 다해서 마음과 뜻과 생명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채워 주실 것이고 주 안에서 형제자매 된 지체들을, 나의 가족을 남편과 아내를 포함해서 부모와 자녀를 나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변화시켜 나아가실 것입니다. 부디 고개를 들어서 나 자신만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사랑하던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지체들을 사랑하면서 우리의 남은 인생을 살고자 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진정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다가 찬란히 빛나는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야 할 자들입니다.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서기관조차도 주님의 말씀이 옳다고 선언한 이 상황에서 누가 더 예수님에 대해서 책을 잡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으로 더 이상의 예수를 책잡기 위한 논쟁은 의미가 없음을 산헤드린의 모든 어리석은 자들은 깨닫게 된 것입니다. 서기관의 질문을 통해서 주님은 우리들에게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존재의 이유와 목적이 되는 계명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남은 인생을 진정으로 주 앞에서 보람 있게 살고 싶으십니까.. 감사가 넘치고 기쁨이 넘치는 하루하루를 살기 원하십니까.. 이 가장 큰 계명에 순종하며 그렇게 살아가기를 매일 기도하십시오. 그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그 마음으로 그 사랑을 실천하면서 하루를 살았는지를 점검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아름다운 삶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그렇게 살아가도록 변화시키시고 인도해 주시기를 다 함께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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