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21 07:40
주께서 이 세상을 정의하시는 표현을 보십시오.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라고 하셨습니다. 주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이 세상은 항상 음란하고 죄악으로 창궐한 세대입니다. 재림이 임박하면 이 모든 것은 극에 달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갈수록 더 많은 죄를, 극악한 타락의 양상을 보여줄 것입니다. 세상은 결코 자정 능력이 없습니다. 인간이 가진 모든 죄성들을 더 밖으로 드러낼 것이고 수치와 부끄러움을 모른 채로 그것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길이라고 고집하며 멸망을 향해 달려갈 것입니다.
절대 진리를 부정하고 멸시하는 인간은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과 법을 떠나 방종을 넘어 극악한 무질서와 혼란의 상태로 스스로 멸망의 길로 행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나아가는 그 방향의 끝이 멸망이라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인간 자신과 세상을 발전시키고 진보 시키는 존재가 아니라 결국 모든 것을 파괴시키고 무너뜨리는 어리석은 존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무지함 속에서 살아가던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흔들어 깨워 그 세상에서 건져내 주셨습니다. 그 무지와 죄악 속에서 지옥을 향해 달려가던 자들을 그 길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정말 그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자들이라면, 그렇게 세상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구별된 자들이라면, 우리는 이제 이 음란과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반드시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성도로 그 거룩한 부르심에 응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은 결코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나타내고 우리가 그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드러내는 거룩한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감사의 기도를 하는 것은, 우리가 업무를 시작할 때, 강의실에 앉아 공부를 시작할 때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는 자들 틈에서 우리의 정체를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는 사람입니다.’라고 우리를 표시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여 저속한 말로 정치인들을 욕하고 온갖 세속적인 말들을 하며 음담패설을 주고받을 때 조용히 침묵하거나 혹은 그 자리를 피하는 것으로 성도는 자신이 이 세상이 아닌 하늘에 속한 사람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같은 구별됨을 용기 있고 성실하게 드러내지 않는 것은 곧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진리의 가치가 지켜져야 할 순간에 침묵하고 하나님을 믿는 자녀임을 나타내는 것을 감추는 것을 주님께서는 매우 중대한 배도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라고 두려운 말씀으로 제자들에게 힘주어 경고하셨습니다. 이 말의 적극적인 의미는 자신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배도하는 것을 의미하고 소극적인 의미로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신분을 때때로 부끄러워하고 숨기고 감추면서 마치 신자가 아닌 것처럼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의 모든 부정한 정신과 사상을 인정하며 세상과 더불어 짝하는 모든 우리의 추악함과 어리석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자신의 정체가 무엇인지 아직도 알지 못하고 확신하지 못하면서 불신자들과 있을 때는 마치 불신자처럼 말을 하고 행동을 하고 있는, 여러분 가운데 혹시 그런 분이 있다면 부디 주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소원하십시오. 세상 앞에서 그렇게 비굴해지고 작아지는 자신의 믿음 없음에 대해서 애통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는 저에게도 담대한 믿음을 주시기를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그대의 부끄러움의 대상이 아니십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숨겨야 할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감추는 것은 그리스도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우리의 모습이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보기에도 수치스럽기 때문일 것입니다.
방금 전까지 회사의 대표를 욕하고 세속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직장의 동료에 대해서 험담을 나누다가 점심시간이 되어서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것이 양심에 찔리기 때문입니다. 회사에서 맡겨진 일에 대해서는 무능하기 그지없는 사람이 주일에 자신은 교회를 간다고 말하는 것이 창피한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아직도 이 정도에 불과하다면 예수의 이름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음을 고백하면 살려주고 그렇지 않으면 모든 불이익과 더 나아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우리가 피할 수 없는 박해와 핍박을 받게 될 때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고난과 박해가 와도 배도하지 않을 수 있는 믿음, 그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생애를 바쳐 하나님께 기도하며 이루어가야 할 믿음의 경지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믿음,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불이익을 감당하며 오늘도 우리 자신을 철저하게 부인함으로 오직 내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만 존귀케 되기를 바라는 그 믿음을 오늘도 우리는 추구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높이고 주를 위해 살지 않으며 때에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과 그 계명을 어기며 수시로 세상과 신앙 사이를 넘나드는 모든 자들에게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서 천사들과 함께 다시 이 땅에 다시 재림하실 때 그들을 주님께서도 부인할 것이라고 엄히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에는 ‘적당히’가 없습니다. 그대가 적당히 지금 주님을 믿고 있는 것이라면 그대는 엄밀하게 말해서 거듭난 신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오랜 시간 교회를 다녔으면서도 여전히 언제나 세상과 타협하고 하나님보다는 세상의 가치가 더 우선순위이며 아직도 자신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해 신자도 불신자도 아닌 상태를 지속하고 있다면 그런 분들의 영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염려함으로 말씀드립니다. 요한계시록 3장 16절은 말씀합니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진리는 이제 예수를 믿으려 하는 구도자들이나 아직 믿음을 갖지 않은 자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고도 여전히 세상과 신앙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자들에게 해당이 되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모든 신자들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영원불변성을 강조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늘 깨어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을 함께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한결 갖지 않고 언제나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수 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경고하고 경계시키며 분연히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말씀들로 빼곡히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구원과 영생은 교회 안에만 발을 들여놓으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진리를 말씀을 듣고 보고 깨달으며 그 은혜를 통해서 반드시 그 믿음이 진리에 근거해서 자라고 그렇게 믿음이 자라감으로 더욱 자신을 부인하며 십자가를 기꺼이 감당하는 삶으로 우리에게 나타나고 증명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매일 지독한 자기 사랑과 싸워야 하는 것이고 믿음으로 살아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불이익들을 주님과 함께 지는 십자가로 영광스럽게 여기며 그 힘든 믿음의 길을 오직 주의 은혜로 감당하며 이 땅에서의 삶을 감당해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향기를 가지고 이 세상에서 우리가 부디 그리스도인의 삶을 그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기를 오늘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믿음으로 살기를 분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제자도입니다. 구원의 길입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물질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입니다. 돈으로 집은 살 수 있어도 화목과 행복할 수 없습니다.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어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단잠을 살 수는 없습니다. 돈으로 지식을 살 수 있어도 지혜와 명철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몸을 건강하고 더 이쁘고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어도 그 영혼을 아름답게 가꿀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가치를 위해 살아가는 자들이어야 할까요.. 오늘도 여러분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무엇을 목표하여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모든 것은 변하고 식어지고 퇴색될 것입니다. 진실로 영원하고 변치 않는 것을 사모하십시오.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을 뿐입니다. 그 보화를 발견하는 기쁨이 여러분 모두에게 여러분의 인생 속에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