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교회와 직분

2015.01.21 14:22

SDG 조회 수:2833

교회로부터 나와 교회로 향하는 직분                                                                   
-안재경 목사

I. 교회로부터 나오는 직분

1) 교회를 위한 선물로서의 직분

교회에 항상 있어야 하는 직분 곧 항존직은 목사와 장로와 집사이다. 그런데 이 직분들은 교회를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직분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주신 선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에베소서 4:7-16절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고 했다(엡 4:7-16). 여기서 보면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 뒤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8-9). 그렇게 올라가신 이유는 원래 계신 곳이 하늘이었고, 그 하늘에서 땅 아래로 내려 오셨기 때문이다(9). 이렇게 됨으로 인해 높이 되신 그리스도임을 드러내셨다(행 2:33-36). 즉 왕으로 등극하셨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땅에서 다시 하늘로 올라가실 때에 그냥 올라가신 것이 아니라 8절에 의하면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으셨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시편 68:18절을 인용하여서 말씀하고 있다(8). 여기에서 ‘사로잡힌 자’는 마귀 곧 사탄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십자가 사건(죽음, 부활, 승천을 통틀어)을 통해서 마귀를 사로잡으셨다. 그리고 그 결과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그렇다면 그 선물은 무엇인가? 선물이라는 말은 ‘은사’라는 말과 같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는 11절에 암시되어 있는 것처럼 ‘직분’(은사)이다. 승천하신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을 통하여 교회를 세우셨고, 그 교회를 위하여 각 사람에게 선물을 은혜로 주셨는데(7), 그것은 곧 교회를 위한 은사인 직분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단과의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으로 교회에 직분을 주신 것이다. 이 전리품은 각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주셨다. 11절에 보면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라고 했다. 주님께서 이런 은사를 주신 것은 결국 한 몸 된 교회를 굳건하게 세우게 하시기 위함이다. 12절에 보면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했다. 그렇다.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 이런 은사를 주신 것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함이다. 곧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다.

직분이 교회를 위해 주신 선물이라는 사실은 이미 구약시대에 예언되어져 있었다. 민수기 8:19절에 보면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취하여 그들을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선물로 주어서 그들로 회막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봉사하게 하며 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성소에 가까이 할 때에 그들 중에 재앙이 없게 하려 하였음이니라”고 했다. 이 말씀에 보면 제사장의 직분이 곧 선물임을 밝히고 있다. 민수기 18:7절에도 “너와 네 아들들은 단과 장 안의 모든 일에 대하여 제사장의 직분을 지켜 섬기라. 내가 제사장의 직분을 너희에게 선물로 주었은즉 거기 가까이하는 외인은 죽이울찌니라”고 말하면서 직분을 주신 것이 곧 선물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민수기 3:9절에도 암시되고 있다. “너는 레위인을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주라.” 여기에서 “주라”라는 표현은 곧 선물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2) 교회로부터 나오는 직분

이상의 말씀에 근거해 볼 때 모든 직분은 반드시 교회로부터 비롯되어야 하고, 교회를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교회로부터 비롯되지 않은 직분은 없으며, 교회와 연관되지 않는 직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 교회에서는 종종 교회와 연관되지 않고 스스로 직분자임을 자처하는 경우들이 간혹 있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안타깝게도 모든 직분은 철저히 교회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모르고 있다.

직분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온전하게 세워지도록 하기 위해서 곧 그리스도의 교회를 충만(완성)케 하시기 위해서(엡 4:10-13) 교회의 머리께서 주신 선물이다. 이 선물은 오직 교회를 위한 것이며, 역사 가운데 존재하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상속하여 유지, 보존하기 위해서 허락하신 주님의 은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직분은 반드시 교회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3) 교회로부터 나온다는 것의 실천적 적용 - ‘회중의 선택에 의한 것이다.’

그렇다면 직분이 교회로부터 나온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일까? ‘교회’라는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직분이 교회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이 교회 안에서 어떻게 실천적으로 적용되는가? 우리가 ‘교회’라고 할 때에는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될 수 있으나, ‘직분은 교회로부터 나온다’라고 할 때는 ‘회중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앞서 직분이 교회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설명함에 있어서,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측면을 살펴봤다. 그렇다면, 직분은 분명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다. 그런데 왜 ‘회중의 선택에 의한’이라고 말하는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은 자신께서 주시는 직분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회중의 선택에 의한 방식을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우리는 신약 교회가 처음으로 직분자를 선택하였던 사도행전 6장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사도행전 6장 이전만 하더라도 직분자를 뽑는 방식은 ‘제비뽑기’였다. 그래서 사도행전 1:26절에 보면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사도행전 6장에서 최초의 신약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직분자를 선택함에 있어서 제비뽑는 방식이 나오지 않고 그 대신에 회중이 선택하는 방식이 나온다. 사도행전 6:3절에 보면 “일곱을 택하라”고 되어 있고, 사도행전 6:5절에도 “...니골라를 택하여”라고 되어 있다. 이 두 구절에 의하면 예루살렘 교회는 회중이 직접 직분자를 선택한다. 회중의 선택을 통하여 예수님이 교회에 주신 선물을 받는다. 또한 사도행전 14:23절에는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서도 제비뽑는 방식이 아닌 회중에 의한 선택의 방식이 나온다.

특히 위의 두 본문에 나오는 ‘택하여’라고 표현된 말의 헬라어 원어는 ‘카이로토네오’(χειροτονέω)인데, 여기에서 접두어 ‘카이르’(χειρ)는 ‘손’이라는 뜻을 갖고 있고, 어원적으로는 ‘손을 들어 표시하게 해서 선택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손을 드는 주체는 회중이라는 것이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은 신약 교회에 직분자를 주실 때에 그 행위 주체를 회중에게 맡기셨다. 그러므로 직분이 교회로부터 나온다고 할 때에 그 실제적인 적용은 바로 ‘회중의 선택에 의한 방식’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이 사실은 개혁 교회의 신앙고백서 중에 하나인 벨기에 신앙고백서 곧 벨직 신앙고백서 31장 ‘교회의 직분자들’이라는 조항에 언급되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들과 장로들과 집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규정된 대로 기도와 선한 질서를 따라 교회의 합법적인 선거를 통하여 선출되어야 함을 믿습니다”라는 내용으로 표현되어 있다.
 
네덜란드 개혁 교회(해방파, 소위 31조파) 교회 헌법 (1982년 판) 제3조 ‘합당한 부름의 필요성’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느 누구도 그 직분에 합당한 부름을 받지 않고 스스로 그 직분을 취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직분은 전체 회중의 선택에 의해 임직되어야 한다. 목사는 반드시 전체 회중에 의해 선택되어야 하며, 장로나 집사도 마찬가지로 반드시 전체 회중에 의해 선택되어야 한다. 즉 모든 직분은 교회로부터 나와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서는 ‘서리집사’와 같은 임시직분들이 회중이 아닌 ‘당회’에 의해 ‘임명’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며, 부목사나 강도사, 전도사와 같은 말씀 사역자 조차도 ‘당회’에 의해서만 청빙되는 바람직하지 못한 방법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직분이 교회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제대로 드러내는데 부족함이 있는 방법이므로 속히 시정되어야 한다.

특히 직분을 당회가 주도적으로 임명하는 방식은 ‘로마 카톨릭’이 직분자를 위에서 임명하는 방법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비개혁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직분은 반드시 전체 회중의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목사나 장로나 집사는 전체 회중을 위해 봉사하는 직분이므로 전체 회중의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사실은 회중에 의한 선택이라는 것이 회중이 자기들이 원하는 사람을 직분자로 선택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이 회중에 의해 확인된다는 의미임을 기억해야 한다. 직분이 회중에 의해 선택되었다고 해서 회중이 직분을 준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이다.

4) 장로주의에 잘 드러나는 위의 원리

위에서 다룬 내용들은 장로주의에서 잘 드러난다. 장로교는 주님께서 교인들이 선택한 목사와 장로들이 교회를 돌보며 다스리게 하셨다는 점을 강조한다(참조. 행 14:23; 20:28). 목사와 장로들은 주께서 교회에 주신 권세를 위탁받은 자들이므로, 교회는 그들을 성경에 교훈된 자격 조건(딤전 3장; 딛 1장)에 따라 매우 신중히 선택하고 세워야 하며, 교회의 모든 형제 자매들은 세움 받은 감독자들을 존중하며, 그들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장로주의의 중요한 특징이다.

II. 교회로 향하는 직분

1) 교회로부터 나와 교회를 향하여

교회로부터 나온 직분은 철저히 교회를 위해 봉사한다. 곧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교회로부터 나온 직분은 교회를 향한다. 직분이 교회로부터 나왔다고 해도 그것이 결국 교회를 향하지 않는다면 그 직분은 직분이 아니다. 모든 직분은 교회를 위한 봉사자이다. 이런 점에서 협동직분, 명예직분, 은퇴직분 등은 바람직하지 않다.

2) 예배를 위한 직분

교회로부터 나온 직분이 교회를 향한다고 할 때에, 그렇다면 교회의 무엇을 위함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이다. 왜냐하면 교회의 가장 큰 핵심은 예배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예배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교회는 경배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 모이는 공동체이다. 삼위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함께 모여 삼위 하나님을 향한 경배와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 교회가 모이는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예배가 있는 곳에 교회가 있으며, 교회는 예배를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예배는 교회의 여러 활동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교회의 모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위한 직분인 목사, 장로, 집사의 역할은 예배를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사실이 가장 잘 드러나는 교회는 장로 교회이다. 로마 가톨릭은 예배 중에 회중(의 역할)이 없다. 오직 직분자만 있다. 반면 회중 교회는 예배 중에 직분자(의 역할)가 없다. 회중만이 있다. 그러나 장로 교회는 ‘장로’+‘교회’라는 그 표현에 잘 나타나 있듯이 직분을 중요하게 여기는 교회이다. 그러나 장로 교회는 직분을 절대화하는 감독 교회와 다르며, 직분을 아예 무가치하게 보는 회중 교회와도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장로 교회의 예배는 직분적 봉사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예배이다.

3) 예배 중에 직분자의 역할

예배 공동체로서의 교회에서 직분자는 어떤 역할을 감당하는가? 가르치는 장로인 목사는 예배를 인도하고 말씀을 증거하는 역할을 감당한다. 목사는 예배에의 부름에서부터 시작하여 강복선언에 이르기까지 예배 순서 전체를 인도한다. 특히 목사는 예배의 순서 중에 ‘은혜의 방편’에 해당하는 말씀 선포, 성례 집례, 목회 기도를 담당한다.
 
장로는 예배 전반과 말씀 선포를 감독한다. 장로는 예배 시간에 회중들이 예배에 충실한지, 바른 자세로 임하고 있는지를 살핀다. 이를 위해 장로는 회중들이 앉아 있는 자리의 곳곳에 앉아서 살핀다. 또한 장로는 예배 중에 선포되는 말씀이 제대로 선포되고 있는지, 기록된 말씀에 충실한 지를 살핀다. 또한 장로는 성찬에 참여함에 있어서 아무나 참여하지 못하도록, 즉 아직 세례를 받지 않아 성찬회원이 되지 않았거나, 교회로부터 공적 징계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성찬상에 나아오는 것을 막는 일을 한다.

집사는 예배 중에 헌금의 수집을 감당한다. 그리고 그렇게 수집된 헌금을 교회를 위해 쓰며, 그 중에 일정 부분을 예배를 돕는 말씀사역자의 생활에 지원한다.

이렇게 교회의 직분자는 철저히 교회로 향하고, 교회로 향한다고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예배를 가리킨다. 이런 점에서 예배를 인도하지 않는 목사는 목사가 아니다. 설교하지 않는 목사는 목사가 아니다. 성례를 집례하지 않는 목사는 목사가 아니다. 예배 인도자가 목사요, 설교하는 사람이 곧 목사요, 성례를 집례 하는 자가 곧 목사이다. 마찬가지로 회중을 감독하지 않는 장로는 장로가 아니며, 교회의 재정을 위해 수고하지 않는 집사는 집사가 아니다. 회중을 감독하는 자가 장로요, 교회의 재정을 위해 수고하는 자가 곧 집사이다. 이렇게 장로 교회의 직분은 예배를 위해 수고하는 이들이다. 직분자들인 목사, 장로, 집사들이 각기 자기가 받은 은사와 소명을 따라 예배의 각 순서를 위해 봉사한다.

참고로, 이 모든 예배 전반의 고유 권한은 당회에 있다. 오늘날 교회들에 당회가 제 역할을 감당하지 않으므로, 제직회 부서 내에 ‘예배부’를 두어 예배에 관한 일을 논의케 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예배의 준비와 질서에 관한 책임이 당회에 있음을 알지 못하여 생겨나는 경우이다. 예배는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께로부터 위임받은 치리회인 당회가 주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사실은 장로 교회의 헌법에 잘 나타나 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고신) 헌법(2011년판) 예배지침 제3장 제8조에는 “주일공예배의 순서는 당회가 정하되 그 기본적인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라고 되어 있다. 또한 동 헌법(2011년판) 교회정치 제10장 당회 제121조 ‘당회의 직무’에는 제2항에서 “제반예배를 주관하는 것”이 당회의 직무라고 언급하고 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 헌법(2006년판) 제4편 예배와 예식 제1장 교회와 예배의 1-1-4에도 예배의 준비와 질서를 당회가 맡아 수행한다고 되어 있다.

III. 결론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께서는 교회를 위한 은사로서의 직분을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직분은 교회로부터 나오며, 교회로 향한다. 그렇게 교회로부터 교회로 향하는 직분과 그 직분의 봉사는 결국 교회를 든든히 세우는 역할을 한다(엡 4:7-12). 그런데 이 직분적 봉사는 무엇보다도 예배를 통하여 드러나게 된다. 직분은 교회로부터 나와야 한다. 왜냐하면 직분은 교회로 향하기 때문이다. 직분은 교회로 향해야 한다. 왜냐하면 직분은 교회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이를 벗어난 모든 직분은 잘못된 것이다.

# 이글은 지난 여름 마이산 개혁파 목사들 모임에서 손재익 목사(한길 교회)가 강의한 내용을 조금 수정하였다.

2014년 종교개혁기념 주간 사경회(2)

이명이란? : 교인의 들고 남

우리 교회는 이명증 없이 교인의 들고 남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 시간에는 교회의 이명에 대해서 배우고자 한다. 지역 교회(지교회)의 회원이 되는 것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다. 교회는 사도신경의 고백처럼 ‘거룩한 공교회’이기 때문에 우리는 공교회(가톨릭 교회)를 떠나서는 우리의 구원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공교회적 전통에서 심각하게 빗나간 교회에 소속될 수 없다. 교회를 속하여서 회원이 되는 것은 자신의 구원과 직결되어 있다. 사도신경은 그 다음에 바로 ‘성도의 교통’을 믿는다고 고백하므로 거룩한 공교회가 지상에 그 모습을 드러낼 때에 가지게 되는 모습이 성도의 교통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교회는 공교회전통으로부터 빗나가지 않아야 하고, 신자는 성도의 교통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이렇듯 신자는 교회를 떠나서, 성도의 교통을 떠나서 자신의 구원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교회의 회원이 되어서 성도의 교제를 나눈다는 것은 자신의 구원을 교회에 의탁한다는 말도 된다.

1. 누가 교인인가?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 중에 ‘어느 누구나 주께 나오라. 하늘 아버지가 오라 하시니. 어느 누구나 오라’라는 가사가 있다(찬 257장). 복음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참으로 감격스러운 가사가 아닐 수 없다. 복음은 모든 차별을 무너뜨렸다. 이런 가사를 반영하듯이 한국 교회는 예수님을 믿겠다고 하면 바로 ‘교인’으로 등록시키고 교인이 된다. 우리 헌법에 보면 교인의 분류 중에 ‘원입교인이라는 명칭이 나온다(교회정치 제3장 12조). 원입의 사전적인 의미는 ‘어떤 곳으로 들어가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교단헌법에서는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고 공예배에 참석하는 자’를 원입인이라고 부른다고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예배에 출석하면 자동적으로 교인이 되는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교인됨에 관해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겠다. 초대 교회 때는 교회 안에 있는 자들이 학습자, 고해자, 세례자로 나뉘어져 있었다. 학습자는 세례를 받아 교회회원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자이고, 고해자는 교인들 중에서 큰 죄를 지어서 공개적으로 고해의 과정을 밟고 있는 자이고, 세례자는 말 그대로 세례를 받은 교인이다. 초대 교회 이래로 교인이라고 하면 당연히 세례자를 가리켰다. 교인은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없고 오직 한 종류의 교인만 있다. 교인은 기본적으로 세례교인이다.

지역 교회(지교회)의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삼위 하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아야 한다. 초대 교회 때는 세례를 받기 위한 준비가 쉽지 않았다. 속사도 교부시대의 문서인 히폴리투스의 「사도전승」에 의하면 학습자들은 3년 동안 말씀을 들어야 했다. 3년 동안 말씀의 기본 도리를 배워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직업을 가진 이들은 그것을 버려야 했다. 이렇게 자신의 직업마저도 적합하지 않기에 버리고 삼위 하나님을 아는 자리에 서면 세례를 받는데 세례예식이 참으로 엄숙하면서도 장엄하게 진행된다. 주로 부활절 전날에 세례식이 진행되는데 과거에 마귀를 따르던 삶에서 완전히 벗어나 삼위 하나님을 온전하게 섬기기로 작정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시위(공교회 앞에서 공개적으로 고백)한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삼위일체 구조를 가지고 있는 사도신경은 원래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받기 위한 문구가 기원이었다. 벌거벗은 채로 세 번이나 물 속에 완전히 침수시키고 거룩한 기름을 바르고, 새로운 옷을 입히므로 새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한다. 이 세례식 후에 비로소 그는 교인이 되어 성찬식에 참여하게 된다. 그 전에는 1부 말씀예배를 드리다가 성찬예배가 시작될 때 예배당을 떠나야 했던 그가 이제 2부 성찬예배에도 참여할 수 있는 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교인이라고 하면 세례교인을 말한다.

2. 이명증의 분명한 역사가 있는가?

불신자가 교회에 출석하여 세례를 받는 경우를 제외하고 다른 교회 교인이 본 교회 교인이 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우에는 이명증을 가지고 와야 본 교회 교인이 될 수 있다. 이명증은 쉽게 말하면 신자의 ‘신력증명서’요, 성경에서 말하는 ‘추천서’라고 보면 된다(참조. 고후 3:1). 이명증은 교회가 있는 곳에 늘 존재해왔던 공교회 전통에 속한다. 이명증은 교회의 하나됨을 가장 구체적으로 고백하는 방편이다. 다른 교회를 자신의 교회와 동일한 하나님의 교회라고 인정하는 것이 신자의 이동시 이명증을 주고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추천서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 사도들의 추천서를 가지고 다니면서 교회의 대접을 받으려고 하는 자들을 경계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 아니다(고후 4:2; 5:12). 대신에 자신은 사도의 추천서가 아니라 자신이 개척하여 세운 교회 성도들이야말로 자신의 추천서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고후 3:1-2). 하지만 고대 교회 때부터 교회는 항상 진실한 형제를 다른 교회에 추천하는 관습이 있었다(행 18:27; 롬 16:1 등).

속사도 교부시대의 작품인 「디다케」에 보면 주님의 이름으로 오는 이들을 환영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들을 증명하는 방법을 말하고 있다(12장). ‘주님의 이름으로 오는 모든 사람은 환영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때 그 사람을 검토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들은 진실한 것과 거짓된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오는 사람이 단지 지나간다면, 할 수 있는 대로 그를 도우십시오. 그러나 그가 2일 이상, 필요한 경우에도 3일 이상 여러분과 함께 머물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그가 여러분 가운데 정착하기를 원하는데 장인이라면 그의 생계를 위해서 일하게 하십시오. 그러나 그가 장인이 아니라면 그가 기독교인으로서 여러분들 가운데서 게으름을 부리지 않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여러분들의 판단에 따라서 결정하십시오. 그러나 그가 이러한 방식으로 협력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때 그는 그리스도로 장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경계하십시오.’
 
종교개혁시대에도 개혁한 교회들은 교인들의 이동할 경우에 추천사, 즉 이명증을 주고 받았다고 하는 것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개혁에 동참한 이들이 난민으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 개혁자들은 그 난민들을 다른 교회에 추천하는 것을 조심스러워 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 난민들이 가난한 교회에 큰 짐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요, 교회를 어지럽힐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야고보서를 보아도 가난한 자를 무시하는 처사가 교회에 큰 짐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능히 짐작을 해 볼 수 있다(참조. 약 2장). 이렇듯 고대 교회로부터 교회는 하나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이단에 대항하여서, 믿음의 연합을 확인하기 위해서 이명증을 주고 받으면서 신자를, 그리고 직분자를 추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교인을 어떻게 받아야 하는가?

로마 교회는 교구제도가 건실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교인이 이사를 하면 자동적으로 이명서가 이사하는 교구 교회로 간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우리 개신 교회는 이명증이 없이 교인을 받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명증을 떼 주어 본 적이 없는 당회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그렇다고 공교회 전통에서 심각하게 벗어난 교회라든지, 이단의 교인이 이명증을 가지고 온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그 이명증으로 교인이 될 수는 없다. 교인이 이사 등의 이유로 곧 정당한 이유로 이명을 가면 6개월 이내에 이명을 청원해야 한다. 그 교인이 이거한 교회에서 예배에 참석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했어도 이명절차가 끝나기 전에는 이전 교회 당회의 관할 아래 있다. 해당 당회가 그 교인의 이명증을 받으면 즉시로 본 교회의 회원이 될 수 있다. 그때부터 그 교회에서 그 교인의 권리가 시작된다.

문제는 같은 교단의 신자가 아니라 다른 교단, 즉 신앙고백을 달리하는 교단의 신자가 본 교회의 신자가 되겠다고 했을 경우이다. 이때는 신앙고백을 분명하게 교육하고 난 다음, 그 신앙고백을 받겠다고 하는 경우에 회원으로 받아야 할 것이다.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서(소요리문답)나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등을 공부하고 난 다음에 회원됨의 과정을 밟는 것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성도의 참된 교제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성도의 교제는 서로 재미있게 잘 지내는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주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가운데 주의 모든 부요와 은사에 참여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자신의 은사를 다른 지체의 유익을 위해 기꺼이 사용하는 것이다(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55문). 이 교제는 성찬의 문제와 연관을 맺고 있다. 공교회적인 입장에서는 세례 받은 사람은 누구든지 성찬에 참여시켜야 하지만 신앙고백이 다른 경우에는 성찬에 함부로 참여시킬 수 없다. 그래서 개혁 교회의 성찬은 ‘닫힌 성찬’이 될 수밖에 없다.

저희 교회는 처음에 이명의 중요성을 잘 몰라 원칙 없이 행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명증을 주고 받으며, 같은 가르침과 신앙을 고백하는지를 확인 한 후에 교회회원으로 받아들인다. 이명증을 가지고 올지라도 가르침이 다르면 일정한 교육을 한 후에 회원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명증이 없이 온 경우는 6개월 이상 그 신앙을 점검 한 후에 일정한 입교 교육 과정을 거쳐서 신앙을 확인하고 당회(당회가 없는 경우 제직회가 그 일을 대신 함)와 면담을 하여 교회 회원으로 받는다. 그 면담을 통해 교인됨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설명한다.

어떤 교회의 회원이 되겠다고 하는 것은 쉽게 말하면 그 교회와 결혼하겠다고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 회원이 되는 것을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아무나 하고 결혼할 수 없지 않는가? 그리고 한번 결혼하고 난 다음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이혼할 수 없지 않는가? 그러나 현실에서는 정당한 이유없이 임의로 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비일비제하다. 이것이 과연 교회다운 행동인가? 우리는 참으로 안타깝고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최근에 한국의 몇몇 대형 교회들이 소위 말하는 교인들의 수평이동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는 수평이동 하는 교인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일들이 있었다. 너도 나도 대단한 결단이라고 칭찬을 했다. 대형 교회와 소형 교회 사이의 위화감이 가면 갈수록 커져가는 상황 속에서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교회의 몸집을 한없이 불리려고 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웃 교회의 살을 깎아내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결단했으니 얼마나 대단한 결단이겠는가? 하지만 공교회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이런 발상이야말로 참으로 교만한 생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어떻게 특정 교회가 교인이 되겠다고 하는 교인을 받지 않겠다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교회를 다른 교회와는 다른 특별한 교회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경우에 문제 해결은 단순하다. 이명증을 가지고 오라고 하면 되는 것이다.

또 한편 교회를 바르게 세우고자 하는 열심으로 교회 회원을 구분하려고 하는 모습마저 보인다. 교회 회원을 나누는 것을 말한다. 교회 회원을 정회원과 준회원으로 나눈다. 교회가 정관을 만들어 자기 교회 교인이 되려면 이런 저런 조건을 채워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런 요구조건을 충족시킨 교인만을 정회원으로 인정한다. 세례교인이라면 누구든지 교회 회원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인의 등급을 나누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우리 교단 헌법(국신)에는 교인의 의무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1. 교인은 교회의 정한 예배와 기도회와 모든 교회 집회에 출석해야 한다. 2. 교인은 노력과 협력과 거룩한 교제로 교회 발전에 질력하며 사랑과 선행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여야 한다. 3. 교인은 교회의 운영경비와 사업지에 대하여 성심협조하며 자신과 전도 사업 및 모든 선한 일에 노력과 금전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4. 성경의 가르친바 도리를 힘써 배우며 전하고 성경 말씀대로 실행하기를 힘쓰며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우리 생활에서 나타내어야 한다. 5. 교회의 직원으로 성일을 범하거나 미신 행위나 음주흡연, 구타하는 등의 행동이나 고의로 교회의 의무금을 드리지 않는 자는 직임을 면함이 당연하고, 교인으로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자로 간주한다. 6. 교인은 진리를 보수하고, 교회 법규를 지키며, 교회 헌법에 의지하여 치리함에 대하여 순히 복종하여야 한다(교회 정치 제 13조). 이렇듯 교인이라면 당연히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그 의무를 수행하는 정도를 가지고 교인을 나눌 수는 없다. 교회는 능력에 따라, 기여도에 따라 차별을 두는 클럽이 아니다. 교회를 위한 헌신이 좀 부족해 보이는 교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교인을 등급으로 나누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4. 교인이 교회를 떠날 수 있는가?

교인이 소속 교회를 떠나려고 하면 어떻게 하면 될까? 아니 신자가 어떤 이유로 교회를 떠날 수 있는가? 자신이 속했던 교회가 이단적인 사설을 전하면, 그리고 성례가 바르게 집행되지 못해서 참 교회의 표지로부터 멀어지면 그 교회로부터 떠나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참으로 주관적인 판단이 될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잘 알듯이 종교개혁자들은 로마 교회를 자기 발로 걷어차고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개혁자들은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말하면서도 로마 교회를 발로 걷어차고 새로운 교회를 세운 것이 아니다. 교회가 쫓아낼 때까지 기다렸다. 물론 과격한 이들은 로마 교회를 거짓 교회라고 말하면서 그 교회를 파괴하는 일에 앞장섰다.

우리는 교회의 표지(온전한 말씀선포와 바른 성례의 집행과 정당한 권징의 시행)에 근거하여 참 교회와 거짓 교회를 구분해야 한다. 그런데 교인들과의 불화라든지, 소위 말하는 교회의 방향성이 자기에게 맞지 않는다든지, 윤리적인 문제들로 인해 교회를 떠나는 것은 잘못이다. 지상의 교회는 늘 부족할 수밖에 없다. 온전할 수 없다. 교회를 좀 더 거룩한 교회, 좀 덜 거룩한 교회와 같은 방식으로 구분하여 ‘교회내의 교회’를 만드는 것도 잘못이요, 자신이 속한 교회가 덜 거룩한 교회라고 정죄하면서 좀 더 거룩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 교회를 분리하고 떠나는 것도 잘못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교인이 아무런 이야기 없이 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곧 교회에 각종 문제가 있다고 해서 아무런 통보 없이 교회를 훌쩍 떠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교리나 성례의 문제가 아니라 각종 이유들로 인해 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많다. 교인이 소속 교회를 떠나고자 하면 반드시 당회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교회 앞에 알리면 교회가 혼란스러워질 수 있기에 조용히 교회를 떠나는 것이 교회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다. 조금 더 나은 모습이기는 하지만 교회를 옮기겠다고 결정하고는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경우도 많다. 입교할 때 당회의 치리를 받겠다고 약속해 놓고는 그런 모습은 온데 간데 없다. 교회를 옮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데 도대체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교회를 치리하게 하신 당회의 권고와 허락에 자신들을 맡기고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해야 하지는 않겠는가?

당회의 허락을 받아 교인이 소속 교회를 떠날 때에는 이명철자를 밟아야 한다. 먼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하기에 본인이 소속한 교회에서 더 이상 신앙생활하기 힘들 경우에 당회와 면담하여 교회를 옮겨야 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해야 한다. 당회는 이사를 가는 지역을 잘 살펴서 그 성도 가정이 신앙생활하기에 적합한 교회를 추천한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를 보면 많은 경우 교인을 받을 때는 ‘어느 누구나 오라’고 해 놓고는 교인이 교회를 떠날 때에는 ‘어디나 가게’라고 보내어 버린다. 그 교인이 원하는 교회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교인이 교적을 옮기는 것이니 본 교회 당회는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교인이 본 교단을 떠나 다른 교단으로, 신앙고백을 달리하는 교회로 가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당회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교인이 당회가 추천한 교회로 가서 예배를 포함한 교회생활을 해 본 후에 그 교회 회원이 되기로 결정하면 본인이 소속했던 교회의 당회에 이명증을 떼어 줄 것을 요청한다. 당회는 즉시로 이명증을 발송하고, 발송 받은 교회는 이명증을 접수했다는 것을 해당 당회에 통보한다. 이 이명증에는 가게 되는 교회를 명시한 후에 신상과 신앙생활의 간단한 기록뿐만 아니라 책벌사항을 기록해야 한다. 그래야 그 신자 가족을 받는 교회가 성찬에 참여하는 문제를 포함하여 그 신자 가족을 영적으로 돌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소속 교회를 옮기려고 하는 경우에는 교회간에 이명증을 주고 받음으로 교회 회원됨이 정리된다.

이명이 아니라도 소속 교회 교인이 출타를 해서 타 교회 예배에 출석하고, 성찬에 참여하기를 원한다면 당회는 그 사실을 그 교회에 알려야 한다. 예배에 참석하기를 허락해 달라고 부탁하고, 성찬에 참여하기에 문제가 없는 교인이라는 것을 통보하거나 확인서를 떼어주어야 한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예배출석허락청원서’가 그 예이다. ‘상기인(및 가족)은 지난 몇 년, 몇 월, 몇 일부터 현재까지 본 교회 출석하였던 바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고백 앞에 무흠한 세례교인으로서, 병원진료관계로 서울에 출타하게 되어 몇 월, 몇 일 주일예배를 귀 교회에 출석을 하고자 합니다. 청원하는 바는 본 교회 세례교인인 상기 청원자(및 가족)가 해당 주일에 귀 교회의 공적예배 참석과 입교인의 성찬 참여를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귀 교회 당회의 현명한 논의를 통하여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명이 없이 다른 교회로 가서 신앙생활을 하고 그 교회에 입회하는 것은 무질서한 일이다. 다른 교회에 입회했다고 할지라도 이명하지 않았다면 그 교인의 교적은 이전 교회의 당회 관할 하에 있기 때문에 마땅히 벌해야 한다. 어떤 교인을 받은 교회가 그 교인이 원 소속 교회를 무단으로 이탈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 교인을 불러 타이르고 교회 명부에서 삭제하고 원 소속 교회로 돌려 보내야 한다. 이 사실을 원 당회에 통보하여 치리하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교인이 무단으로 교회를 이탈했기 때문이다.

5. 이명 이외에 다른 방법으로 교회를 떠날 수 있는가?

교인이 이명 이외에 자신이 속한 교회를 떠날 수 있을까? 다른 교회 교인이 이명증이 없이 본 교회에 출석하다가 교인이 되고자 하는 경우에는 6개월 이상이 경과한 후에 당회(본 교회는 미조직 교회기 때문에 제직회가 당회의 기능을 대신함)의 결의로 회원으로 받을 수 있다. 신자가 교적을 옮기려고 할 때는 반드시 이명증을 떼어서 와야 하지만 그 교회가 이명증을 떼어주지 않겠다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위와 같이 이명증이 없는 경우에 6개월 이상의 유예 기간을 두고 부득이한 경우에 그 신자를 회원으로 받을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신자가 이명 외에 두 가지 경우에 한해서 교회를 떠날 수 있다. 첫째가 ‘사망’의 경우요, 다른 하나는 ‘출교’의 경우다. 사망의 경우는 당연히 지상 교회의 회원됨에서 제외된다. 우리가 종종 지상의 교회와 천상의 교회, 보편 교회와 지역 교회를 구분하곤 하지만 이런 구분은 합당하지 않다. 지상의 교회에 소속되는 것이 천상의 교회에 소속되는 것이요, 지역 교회에서 성도들과 교제하는 것이 보편 교회에 소속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하지만 성도가 죽게 되면 그 순간 지상의 교회로부터 천상의 교회로 옮겨진다. 그리하여 지상을 살다간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과의 교제에 합류하여 마지날 날의 최종적인 교제를 기다리게 된다.

교인이 소속 교회를 떠날 수 있는 또 하나의 경우는 ‘출교’의 경우다. 출교는 교회가 그 신자를 향해 교인이 아니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매고 푸는 권세를 부여 받았다(마 16:19). 교회가 천국의 열쇠를 갖고 있다. 교회가 정당하게 어떤 신자를 향해 출교를 선언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신자를 하나님의 백성에서 내친다. 물론 이 출교는 겁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교회를 어지럽히니 교회질서를 위해서 취하는 고육지책인 것도 아니다. 신자를 출교하므로 천국에서 제외되었다고 선언하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문제는 요즘 교회가 출교하는 경우가 아예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권징들도 거의 시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자가 소속 교회에서 권징을 받으면 부끄럽다고 그 교회를 떠난다. 부끄럽다고 떠나는 것뿐만 아니라 화가 나서 떠나버리는 경우도 있다. ‘교회가 감히 뭐라고 나에게 벌을 주느냐?’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요, 공교회이기 때문에 한 교회에서 권징을 받으면 다른 교회에서도 동시에 권징을 받은 것이 된다. 그러므로 권징을 받지 않겠다고 다른 교회로 훌쩍 떠나게 되면 권징을 무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교회를 세우신 주님을 조롱하는 것에 다를 바가 아니다. 사실 교인이 스스로 자기가 속한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로 가면 이것은 자신이 스스로를 교회로부터 출교시키는 것이나 다를 바가 아니다. 

신자로서, 심지어 직분자로서 평생을 신앙생활을 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자기를 어떻게 다스리시는지 경험하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은 막연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자기 백성을 다스리신다. 하나님은 교회의 치리자들(목사와 장로의 회인 당회)을 통해 교회와 자기 백성을 다스리신다. 말씀의 사역자인 목사의 설교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찾아와 주셔서 공적으로 말씀하시는 시간이다(살전 2:13). 그렇다면 우리는 예배가 끝난 후에 산기도하는 가운데 개인적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로 들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 장로의 심방을 통해 우리를 심방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찾아오심을 경험한다(행 20:28). 장로의 심방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책망과 위로를 들을 수 있다. 이렇게 교회에 속해서 교회의 치리를 받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치리를 받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교회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우리를 마지막 날까지 영적으로 보호하고 양육해줄 거룩한 공교회에 꼭 붙어있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구원을 진지하게 받는 것이다. 우리가 평생 교회를 떠나지 않는 복이 있기를 바란다. 신자가 교회에 속해서 성도의 교제를 누리는 것이야말로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든든하면서도 영광스러운 일이다. 이런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