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8.13 21:31
1. 신앙 감정이 매우 크게 발휘되거나 아주 높이 고양되는 것 자체
에드워즈가 첫 번째 소극적 표지로 제시한 것은 ‘신앙적 감정이 매우 크게 발휘되거나 아주 높이 고양되는 것 자체’를 두고서 무조건적으로 정죄하거나 아니면 무조건적으로 다 긍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에드워즈는 이러한 감정이 고양된다고 해서 반드시 그 감정이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안전하게 판단내릴 수 없음을 역살한다. ‘확실하고도 무오한 기준인 성경’에 따라 판단해 볼 때, 매우 높이 고양되긴 했지만 영적이지도 않고, 구원에 이르게 하지도 못하는 신앙감정이 있음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2. 감정이 몸에 큰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
에드워즈는 인간의 어떤 감정도 몸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궁극적으로 다룬다. 인간은 몸과 영혼의 연합체이기 때문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감정은 사람의 몸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보편적인데, 특히 감정이 크면 클수록, 활력있게 발휘되면 될수록 몸에 더 큰 영향을 준다.
하지만 문제는 영적인 감정도 그렇지만 일반적인 감정도 그럴 수 있다는 점이다. 성령의 역사가 아닌 세속적인 일로 느끼는 감정도 몸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에드워즈는 몸에 미쳐진 영향이 아니라 그런 영향을 느끼게 만든 감정의 본질을 잘 분별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3. 신앙 감정이 있는 사람들이 신앙적인 일들을 매우 유창하고 열정적으로, 그리고 풍부하게 말한다는 사실 자체
사람들은 말이 많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는 점을 에드워즈는 인정한다. 또한 다른 이들은 누군가 갑자기 신앙적인 일들에 대해 유창하고 열정적으로 그리고 풍부하게 말하는 것을 보면 ‘성령의 구원하시는 능력의 지배를 받고 있다’라고 성급하게 단정하는 오류를 범한다.
그러나 에드워즈는 성경에는 그러한 유창한 말을 갖고 참된 신앙의 여부를 평가하는 기준을 주신 적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그것은 단지 입과 혀에 달린 믿음이며, 나뭇잎들에 불과한 것이라고 한다.
감정이 강하면 강할수록, 열정적으로 이야기하게 되는 것은 ‘감정의 본질에 속한 것’이지만 성경의 예들을 살펴보면 도리어 그런 현상만 갖고 판단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스러운 일이라고 에드워즈는 경고한다.
4. 사람들이 스스로가 그런 감정들을 만들지 않았다거나 그들의 고안에 의해서, 그리고 그들 자신의 힘에 의해서 흥분시킨 것이 아니라는 것
에드워즈가 제시하는 네 번째 소극적 표지는 감정들의 자가 생산 여부와 관련이 있다. 즉, 어떤 이들은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적이 없는 감정을 체험하게 되면 ‘어떤 외부적이고 초자연적인 힘이 그들의 마음에 영향을 준 결과’라고 쉽게 판단한다는 것이다.
에드워즈는 감정의 주체가 되는 사람이 자가 생산한 감정이 아니고 외부에서 온 영향이나 역사에 의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무조건 성령의 구원하시는 역사의 결과라고 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설명한다. 성령 외에도 사람의 영혼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영적 존재들, 즉 마귀가 있기 때문이다.
5. 신앙 감정들이 성경 본문을 마음 속에 기억나게 한다는 것
성경 말씀이 갑자기 떠오르면서 감정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는 역시 거룩하고 영적인 감정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다고 에드워즈는 말한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순전하고 완전하다는 사실에 기초해서 주장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 체험은 옳고 또 옳지 않을 수 없다는 것 뿐이지, 체험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 속에 생각난다고 해서 그 때 일어나는 감정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6. 사람들이 체험하는 감정에서 사랑이 (현상적으로) 나타난다는 것 자체
참된 사랑은 탁월하고, 천상적이며, 신적인 것이기 때문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다만 에드워즈는 참된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모조품에 대한 것을 언급한다. 어떤 것이 탁월하면 탁월할수록 그것의 모조품들은 더욱 많다는 것이다. 그는 일반적인 이치를 들어 사랑에 모조품이 많음을 지적한다.
성경에 보면 종교적인 열정을 일시적으로 보이고 나서 때가 되면 변질되거나 부패해버리는 여러 예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사랑의 현상 혹은 모조품에 속아서는 안된다고 당부한다.
7. 사람들이 여러 신앙 감정들을 동시에 체험했다는 사실
에드워즈는 거짓된 믿음은 왜곡되고 비정상적인 것이 되기 쉬우며, 참된 믿음 안에 있는 온전함과 조화가 없지만 매우 다양한 거짓 감정들을 합치면 은혜로운 감정과 닮은 것이 될 수도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사랑과 겸손에도 모조품이 있듯이 나머지 모든 감정들에 대한 모조품이 존재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참된 사랑에서 모든 참된 감정이 흘러나오듯이 사랑의 모조품이 있다면 그것으로부터 각양 거짓된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8. 양심의 각성과 죄에 대한 깨달음이 있은 후에 어떤 일정한 순서를 따라 위로의 기쁨이 뒤따른다는 사실
에드워즈는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이라는 점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에드워즈는 이러한 순서를 따라 경험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기쁨’이 바라드는 근거가 안된다고 말한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마귀의 역사에 의해서도 사람은 공포에 빠지곤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에드워즈는 마귀는 하나님의 성령의 구원하시는 모든 사역과 은혜의 모조품을 만들 수 있는 것 같이 은혜를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키는 사역의 모조품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9. 사람들이 갖고 있는 신앙 감정이 그들로 하여금 신앙적인 일에 시간을 많이 사용하게 하고, 예배의 외부적인 의무들에 열심히 헌신하게 한다는 사실
에드워즈는 성경을 살펴보면 성령의 역사로 참된 은혜를 경험하게 된 성도들이 그런 일들에 열심을 내게 만든다는 점을 풍부하게 증거하고 있다는 점을 열거하고, 이것이 ‘참된 은혜의 본질’이라고 긍정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런 일들에 열심을 다하고 시간을 많이 투자한다는 것만으로는 확실하게 은혜가 임했다는 증거는 못된다는 점을 역설한다.
왜냐하면 이런 일들은 전혀 구원하시는 은혜 혹은 참된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서도 번번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10. 사람들이 가진 신앙 감정이 그들로 하여금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게 한다는 사실
에드워즈는 성경 속에 거짓된 신앙고백자들이나 불신자들이 하나님의 자비나 친절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지만 결국 참된 믿음에 이르지 못하는 수많은 사례들을 든다. 따라서 오늘날 찬양집회에 열을 올리는 세대들은 주의해서 읽어야 할 표지다.
11. 어떤 감정이 생긴 사람들 스스로 자신들의 체험이 신령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영적으로 건전한 상태에 있다고 크게 확신한다는 사실
에드워즈는 자신의 구원이나 영적 상태에 대해 ‘넘치게 확신한다는 사실’만으로 안전하고 충분한 표지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주장한다. 에드워즈는 특히 고자세로 과도하고 격렬하게 확신하는 바리새인 유형의 자기 확신자들을 주목한다. 이런 위선자들이 가질 수 있는 확신이 얼마나 강렬하고, 견고하며, 요지부동일 수 있는지 세세하게 살핀다. 그리고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가질 수 있는 확신과 다른 점들을 대비적으로 밝힌다.
12. 타인에 의한 구원의 확신 여부
에드워즈가 마지막 소극적 표지로 제시한 것은 사람들이 밖으로 표현한 감정이 참된 성도들의 마음에 들고 호응을 얻을 만큼 크게 감화력이 있고 기쁨을 준다는 사실 등만으로는 그 신앙 감정의 본질이 어떠한지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에드워즈는 기본적으로 참된 성도들에게는 누가 참되게 믿는 자들이고, 누가 아닌지를 확실하게 분별할 수 있는 영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아무도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느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에드워즈는 우리들의 눈에는 위선자와 참된 성도가 너무나 유사해 보이기 때문에 판단의 실수를 범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따라서 화려하고 무성하게 핀 꽃이 아니라 열매에 의해 판단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역설한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감정론’(A Treatise concerning Religious Affections
이상웅 교수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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