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예수님께서는 성전 뜰을 걸어 다니셨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성전 경내 가운데 가장 넓은 지역인 이방인의 뜰이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같은 시점을 기록하고 있는 누가복음 19 47~48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두목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침을 찾지 못하였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게 되는 마지막 시점이 임박한 가운데서도 힘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전은 곧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상징적인 거룩한 장소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전혀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사랑하지도 않으며 무지와 어리석음 가운데서 자기들 마음대로 하나님을 신앙하며 거짓된 예배로 신성모독을 저지르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보시던 주님께서는 성전을 거니시면서 어떤 마음을 가지셨을까요.. 주님은 심히 안타까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그들을 어리석은 율법주의 신앙으로부터 건져 내시기 위해 복음을 전하시며 마지막까지 모든 노력을 다하셨습니다.

 

누구나 교회에 나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든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을 믿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명백한 불신앙이며 하나님과 무관한 믿음입니다. 예수를 믿고자 하는 모든 자들은 반드시 진리의 말씀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깨닫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성경의 진리 속에 참 생명의 길이, 진정한 구원의 길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신앙고백서들과 교리들은 예배를 논하면서 우리에게 한 가지를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1장 예배와 안식일 1항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빛은 만물을 다스리는 주권자요 주님이신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만물에게 선을 행하시기 때문에 마음과 영혼과 힘을 다해 경외하고 사랑하고 찬양하고 사모하고 신뢰하고 섬겨야 한다. 그러나 참 하나님을 예배하는 합당한 방법은 하나님이 친히 제정하셨고 그분의 계시된 뜻에 의해 제한된다. 따라서 인간의 상상과 의향이나 사탄의 암시에 따라 보이는 형태로나 성경이 규정하지 않는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서는 안 된다.’

 

미사로 예배를 변질시킨 로마 카톨릭을 염두에 두고 작성된 이 신앙고백서는 오늘 이 시대에 사람들의 기호와 편리를 위해 마음대로 예배를 변형시킨 모든 교회들을 향해서도 엄중한 경고가 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예배가 무너짐은 곧 하나님의 지엄한 심판과 징계를 불러오게 되는 중대한 죄와 타락이 됨을 이스라엘은 우리들에게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진리의 도에 복종하며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자신을 부인하면서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고 지체들을 진실되게 사랑하며 믿음의 대가를 지불하는 치열한 삶을 이 세상에서 감당하기 위해 매일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야 말로 성도가 이 땅에서 걸어가야 할 참된 믿음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도를 지키지 않고 따르지 않을 때 교회는 바른 진리를 선포하여 그릇된 신앙을 교정하며 권징과 치리를 통해서라도 돌이켜 회개케 하고 무엇이 구원에 이르는 바른 믿음인지를 가르쳐 지도하며 그 길을 가게 하는 사명을 감당해 나아가야 하는 곳입니다. 성도는 오직 복음의 진리를 따라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랑하고 성경이 말씀하는 바 그 구원의 좁은 길을 걸어가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주님은 성전에서 마지막으로 그곳에 있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유대교의 신앙은 거짓된 것임을 알리시며 참 구원의 길이 무엇인지 가르치시고 선포하셨습니다. 타락한 유대교 권력의 심장부였던 그들이 더럽힌 하나님의 성전을 개혁하시며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셨다는 것은 유대주의자들에 대한 정면의 도전이었고 그들이 예수를 죽이고자 하는 마음에 더욱 불을 지르는 행위이셨습니다.

 

하나님을 버릴 때 가장 먼저 더럽혀진 곳이 성전이듯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잘못되면 가장 먼저 부패하는 곳도 교회가 됨을 잊지 마십시오. 예배가 개혁되지 않으면 그것은 온전한 개혁이 아닙니다. 주께서는 목숨을 걸고 성전을 개혁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힘써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부패한 이 땅의 교회들이 개혁되는 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올바른 예배가 회복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거룩한 예배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이 겸비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중생과 회심을 경험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시는 그리스도를 유대주의자들이 가장 미워하고 증오했습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이후 활동했던 사도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은 유대주의자들이 고집하는 율법주의와 전혀 다른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결국 인간의 인간 자신만을 위하고자 하는 타락한 이성과 반드시 충돌하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가진 모든 부패한 지식과 사상은 복음과 정면으로 대치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불신자들이 그토록 진리를 거부하는 이유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두에게 듣기 좋은 축복의 메시지가 아닙니다. 그것은 갈등과 저항과 분열을 불러오는 목숨을 건 메시지입니다. 누구나 들어도 좋아하는 메시지가 결코 아닙니다. 그 복음을 전하다가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음을 교회의 역사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부부 사이가 금이 가기도 하고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어색해질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오랜 우정이 깨어질 수 있고 복음 때문에 결국 우리는 많은 불이익과 핍박을 받게 되는 순간이 찾아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어떠한 낭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의 종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복음을 전하다가 잔인한 박해를 받아 죽어갔던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있는 곳에서 뜻을 세우고 분명한 복음을 전한다면, 복음을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극적인 영혼의 변화를 보며 감격을 하게 되는 일도 일어나게 되겠지만 반대로 배척과 거절과 생각지 못한 핍박과 반대와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에 올라와 있는 수많은 유대인들에게 이미 왕과 같은 대우를 받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의 입성 장면에서 보았듯이 그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 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유대주의 종교 권력가들에게 엄청난 압박이 되고 있었을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예수에게서 흠을 잡을 결정적인 문제를 만들어 그것을 공론화 함으로 속히 그를 제거하지 않으면 그들의 위치가 흔들릴 수 있음을 그들은 심히 우려하며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주님께서는 추악한 종교적 권력가들의 이권이 집중되어 있는 성전을 개혁하셨습니다. 장사꾼들과 환전해 주는 자들을 모두 내어 쫓으시면서 하루 종일 성전 정화작업을 하셨습니다. 이 일을 행하신 후 다음날 다시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가 주님은 성전 경내를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셨는데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장로들의 무리가 예수님께로 나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일을 행하시는 주님께 대체 누가 당신에게 이렇게 할 권세를 주었느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대중들에게 위대한 선지자로 여겨지고 있더라도 합법적인 권위를 가진 자가 아니라는 것을 드러낼 수만 있다면 백성들은 그에게서 등을 돌리게 될 것이라고 그들은 믿었던 것입니다. 어떻게든 결정적인 흠을 잡아서 그들은 예수를 대중들과 분리시키고 그를 죽일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본문에서 시작해서 12장까지는 예수님과 유대주의 지도자들과의 논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타락한 유대주의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셨습니다. 유대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공생애 기간 내내 주님과 논쟁했습니다. 극소수를 제외하곤 그들의 중에 대부분은 주님의 말씀을 결코 수긍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거짓 종교의 모습입니다. 영원히 하나님께로부터 버려진 자들의 특징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원의 길을 말씀하셔도 그들은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며 메시야를 대적했고 그를 경멸하며 죽이고자 했습니다. 거짓 진리와 거짓 믿음에 속한 자들의 증거는 그들에게 참된 복음, 참된 구원과 믿음에 대해서 말할 때 한결같이 그것을 거절하고 거부하는 것입니다. 불신하는 것입니다. 유대주의 종교 권력가들은 오로지 예수를 죽일 구실을 찾기에 급급했으며 오만과 위선, 아집으로 가득 차 있었던 자들이었습니다. 진리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들은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예수에게 쏠리고 있는 대중적 관심과 지지에 대해서 매우 불편해하고 있었으며 그리스도의 존재를 눈에 가시처럼 여기고 있었던 자들이었습니다. 메시야를 부정한 자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구약의 성경에 대해서 무지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지식은 너무도 편협했으며 인간의 생각으로 오염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신앙하려 한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하려 한 자들이었을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알 리가 만무했고 그들은 영혼은 무지와 어리석음 가운데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누가 이런 일할 권세를 주었느뇨그들은 이 같은 유도질문을 통해서 예수를 신성모독으로 규정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이같이 행했다그들은 아마도 이러한 답변을 유도하고 기대했는지 모릅니다. 주님은 그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셨고 그들의 계략에 말려들지 않으셨습니다. 그럴 가치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끊임없이 공격하던 이 유대주의자들처럼 진리의 관심이 없는 자들이 오늘날의 교회 안에도 존재합니다. 구원의 복음, 그 본질은 보지 못하고 항상 사람의 생각과 판단으로 비판적으로 교회와 성도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항상 트집을 잡는 일에만 몰두합니다. 자신의 영혼의 헐벗음을 보는 자에게 다른 사람의 허물은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오늘도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올바로 보지 못하는 사람이 교회 안에 있는 가장 불쌍한 사람임을 잊지 마십시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998 주일 설교 리뷰 372 (마가복음 11장 27~33절) hc 2025.07.23 21
» 주일 설교 리뷰 371 (마가복음 11장 27~33절) hc 2025.07.22 25
1996 주일 설교 리뷰 370 (마가복음 11장 27~33절) hc 2025.07.21 30
1995 주일 설교 리뷰 369 (마가복음 11장 19~25절) hc 2025.07.18 41
1994 주일 설교 리뷰 368 (마가복음 11장 19~25절) hc 2025.07.16 50
1993 주일 설교 리뷰 367 (마가복음 11장 19~25절) hc 2025.07.15 51
1992 주일 설교 리뷰 366 (마가복음 11장 19~25절) hc 2025.07.14 266
1991 주일 설교 리뷰 365 (마가복음 11장 11~18절) hc 2025.07.11 65
1990 주일 설교 리뷰 364 (마가복음 11장 11~18절) hc 2025.07.10 83
1989 주일 설교 리뷰 363 (마가복음 11장 11~18절) hc 2025.07.09 88
1988 주일 설교 리뷰 362 (마가복음 11장 11~18절) hc 2025.07.08 75
1987 주일 설교 리뷰 361 (마가복음 11장 11~18절) hc 2025.07.07 79
1986 주일 설교 리뷰 360 (이사야 42장 3절) hc 2025.07.03 77
1985 주일 설교 리뷰 359 (이사야 42장 3절) hc 2025.07.02 83
1984 주일 설교 리뷰 358 (이사야 42장 3절) hc 2025.07.01 70
1983 주일 설교 리뷰 357 (이사야 42장 3절) hc 2025.06.30 77
1982 주일 설교 리뷰 356 (마가복음 11장 1~10절) hc 2025.06.27 83
1981 주일 설교 리뷰 355 (마가복음 11장 1~10절) hc 2025.06.26 79
1980 주일 설교 리뷰 354 (마가복음 11장 1~10절) hc 2025.06.25 116
1979 주일 설교 리뷰 353 (마가복음 11장 1~10절) hc 2025.06.24 121